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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 악마로 돌변한 사촌 오빠…그녀는 겨우 중3이었다
[헤럴드경제=안세연 기자] 불과 중학교 3학년이었다. 6살 더 많은 사촌 오빠가 3차례에 걸쳐 성폭력을 저질렀다.
하지만 A(28)씨는 8년 동안 가족에게 피해 사실을 털어놓지 못했다. 어머니가 걱정됐기 때문이다.
어머니와 이모는 삼촌에게 성폭행을 당한 경험이 있었다. 우울증 치료를 받고 있었다.
상처는 아물지 않았다. 트라우마가 남았다. 우울증, 수면장애에 시달렸다. 자해를 했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시도한 적도 있었다. A씨는 모두를 위해 잊고 살려고 했던 마음을 바꿨다.
A씨는 8년 만에 가해자를 고소했지만 돌아온 건 상처였다. 경찰은 2차례나 무혐의 처분을 결정했다.
객관적인 증거가 없다는 이유였다. 오랜 세월이 지난 탓에 CCTV, DNA 등의 증거가 없는 게 당연했지만 경찰은 불송치를 결정했다.
반전은 검찰의 보완수사 덕분에 생겼다. 검찰은 재수사를 지휘하며 가해자를 재판에 넘겼다.
그 결과, 유죄가 인정됐다. 1·2심을 거쳐 대법원에서 징역 3년 실형이 확정됐다.
범행 점차 대담해져
가해자 B(33)씨는 피해자와 친밀한 사이는 아니었다. 사는 지역이 달랐다.
B씨는 서울에서 라섹 수술을 받게 된 것을 계기로 피해자의 집에서 한 달 정도 함께 지냈다. 피해자의 어머니가 적극 권유했다.
사건의 시작이었다.
B(당시 21)씨는 2013년 1월, A(당시 16)씨의 방에서 침대에 앉아있던 A씨의 발목을 만졌다. A씨는 자세를 고쳐 앉은 뒤 방을 나갔을 뿐 거부 의사를 밝히거나 저항하지 않았다.
B씨의 범행은 대담해졌다. 수차례에 걸쳐 A씨의 내밀한 신체 부위를 추행하거나, 유사 성폭행했다.
8년 뒤 고소…일관·구체적 진술에도 불구하고
A씨는 피해 사실을 가족에겐 말하지 못했다. 내성적인 성격이었고, 어머니가 B씨를 아들처럼 각별히 여겼다. 대신 친구 등 가까운 지인들에겐 당시 피해 사실을 털어놓고, 위로를 받았다.
성당에서 만난 친구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말했고, 이후 교제한 남자친구들에게도 피해사실을 말했다.
8년 뒤 A씨는 경찰에 B씨를 고소했다. 꾸준한 정신과 진료에도 트라우마가 없어지지 않았다. 조사 과정에서 A씨는 당시 상황을 구체적이고 일관되게 진술했다. 피해 당시 감정과 생각, 입고 있던 옷과 특징, 가구 배치, 대처 방법, 정확한 자세 등에 대해 진술했다. 세부적인 부분을 과장하지도 않았다.
진술분석 전문가도 A씨의 진술에 대해 “실제 경험을 통한 신빙성 있는 진술로 생각된다”고 평가했다. 상담심리를 전공한 아동·장애인 성폭력 진술분석 전문가가 A씨의 진술 조서·녹화본을 본 뒤 내놓은 분석이었다. 전문가가 30쪽에 달하는 보고서를 통해 도출한 결론이었다.
A씨의 지인들도 참고인 조사를 통해 A씨 진술을 뒷받침했다. A씨는 친구들에게 “몇 년 전 내가 이야기했던 걸 경찰서에서 가서 들었던 그대로 진술해달라”고 부탁했다. 친구들이 경찰서에서 한 진술은 A씨의 진술과 대부분 일치했다.
경찰, 2차례 무혐의 판단
불송치 결정서. [심지연 변호사 제공]
하지만 경찰의 판단은 ‘무혐의’였다.
3개월 동안 사건을 조사한 울산북부경찰서는 “피의자(B씨)가 혐의에 대해 전혀 그러한 사실이 없었다 부인하고 있다”며 “이번 사건의 증거는 피해자 진술이 유일하며 참고인의 진술을 청취했으나 유죄를 인정할 증거라고 판단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보완 수사를 거친 검찰의 판단은 달랐다. 울산지검은 1개월 뒤 “사건 기록을 검토한 결과 재수사의 필요가 있다고 판단된다”며 울산북부경찰서에 재수사를 요청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경찰의 판단은 똑같았다. 4개월 뒤 경찰은 “ 재수사 결과 기존의 불송치 결정을 유지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재수사 요청서. [심지연 변호사 제공]
피해자를 대리한 심지연 변호사(법무법인 심앤이)는 경찰에 136쪽에 달하는 이의신청서를 제출했다.
신청서엔 경찰 판단이 잘못됐음을 지적하는 구체적인 사실관계, 법리적 오류 등이 담겼다. 이의 신청 덕분에 경찰에서 종결하려던 사건이 검찰에 넘어왔다.
검찰의 판단은 경찰과 정반대였다. 검토 끝에 B씨를 재판에 넘겼다.
혐의 부인했지만 1심서 징역 3년
재판 과정에서도 B씨는 혐의를 부인했다.
B씨 측은 다양한 주장을 펼쳤다. 그는 “피해자의 다리 길이에 비해 자신의 팔 길이가 짧아서 물리적으로 유사 성폭행할 수 없었다”, “피해자가 주장한 방의 구조는 사실과 다르다”, “피해자가 호의적인 태도를 보였다”, “가족 간 민사 분쟁 때문에 피해자가 무고한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1심 재판 결과, 혐의가 유죄로 인정됐다. 징역 3년 실형이었다. A씨가 피해자를 고소한 지 2년 7개월 만에 나온 결과였다.
1심을 맡은 울산지법 11형사부(부장 이대로)는 “A씨는 가족들 사이에 발생할까봐 피해 당시 즉시 고소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며 “ 수사기관과 법정에서 일관된 진술을 하고 있으며 피해사실을 전해들은 지인들도 피해자가 어떤 말을 했었는지 일관된 진술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법원은 양형(적정한 처벌의 정도)의 이유에 대해 “친족인 사촌으로서의 신뢰관계를 저버리고 피해자의 내성적이고 소극적인 성격을 이용해 성적 욕망 충족의 대상으로 삼았다”며 “피해자가 10년 가까이 우울증에 시달리며 극단 선택을 시도하는 등 정신적 고통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법원장 출신 변호사 선임해 불복했지만 징역 3년 확정
2심 판결문 중 일부. [대한민국 법원 판결문 인터넷 열람]
B씨는 항소했다. 본인의 2심 재판 관할 지역인 부산고등법원 법원장 출신 변호사를 선임해 거듭 무죄를 주장했지만 2심의 판단도 같았다.
2심을 맡은 부산고등법원 울산 1형사부(부장 반병동)도 징역 3년 실형을 선고했다.
2심 재판부는 “A씨가 범행 전후의 상황, 범행 당시 위치와 자세, B씨의 행동, 당시 반응과 범행이 중단된 경위, 당시 심경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진술했다”며 “직접 경험하지 않으면 꾸며내기 어려운 세부적인 사항을 풍부하게 포함하고 있으며 진술에 모순된 부분을 찾아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어 “B씨가 피해 회복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있을 뿐 아니라 범행사실을 전부 부인하며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며 “피해자와 가족들은 엄벌을 탄원하고 있다”고 밝혔다.
2심 판결문 중 일부. [대한민국 법원 판결문 인터넷 열람]
2심 판결에 대해서도 B씨는 불복했다. 법원장 출신 변호사를 포함해 총 8명의 변호인단을 꾸려 대법원에 상고했지만 판단은 달라지지 않았다. 지난해 9월, 대법원에서도 최종적으로 유죄가 확정됐다.
“검·경 견제할 수 있게 한 시스템 덕분”
이 사건은 1차 수사기관의 판단에 대해 보완수사가 이뤄진 덕분에 가해자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게 됐다.
A씨를 대리한 심지연 변호사는 “경찰과 검찰, 두 기관의 견제가 가능하게 한 시스템이 긍정적인 효과를 발휘한 사례”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이런 사례는 앞으로 찾아보기 어렵게 될 수 있다.
정부가 검찰청 폐지와 함께 수사·기소권 분리를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사건마다 자동으로 부여되던 수사통제 기능이 없어진다. 범죄 피해자가 경찰 판단에 불복할 수 있는 절차가 사라진다.
심지연 변호사는 “실무상 경찰은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세밀하게 검토하는 것 보다는 CCTV, DNA, 피의자의 자백 등 매우 객관적인 자료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이번 사건처럼 재판을 진행하면 충분히 유죄를 입증할 수 있는 사건이 많아 경찰 판단이 아쉬울 때가 많다”며 “수사기관에 대한 견제가 가능한 형사 시스템이 필요한 이유”라고 의견을 밝혔다.
안세연 기자 notstrong@heraldcorp.com
출처 https://biz.heraldcorp.com/article/10579607?ref=naver 2025.09.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