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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변호사가 알려주는 성폭행 합의금
"가해자 변호사가 다들 1천만 원에 합의한다는데 정말인가요?
다른 피해자들은 얼마에 합의해요?
합의금은 피해자가 결정하는 거라던데 얼마가 적당한지 모르겠어요"
합의금은 피해자의 가장 큰 관심사가 아닐까 싶은데, 막상 인터넷을 찾아봐도 얼마가 적당한 합의금인지는 찾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변호사들의 직접 답변도 합의금은 피해자가 원하는 만큼 결정하면 된다는 식의 애매한 답변이 많은데, 변호사인 제가 봐도 답답합니다.
그래서 대놓고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피해자 변호사로서 제가 직접 경험한, 지금 업계에서 실제로 쓰이고 있는 성폭행 합의금 기준입니다.
최소 5천만 원, 1억 이상도 가능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성폭행 합의금은 최소 5천만 원이 시작입니다. 그리고 다른 조건이 더 붙으면 1억 이상 훨씬 더 높은 금액까지 올라갈 수 있습니다.
일단 가장 일반적인 경우를 기준으로 잡아야 합니다. 이전까지 전과 없이 초범인 20~50대 남성 가해자가 술에 취한 여성 피해자를 1번 성폭행한 경우입니다. 2023년 기준, 우리나라 법원이 이런 가해자에게 내리는 형량은 징역 2~3년입니다. 집행유예 없이 구속되는 실형입니다. 그리고 피해자가 민사소송을 하면 가해자에게 3~5천만 원의 위자료를 청구할 수 있습니다.
이때 피해자가 합의를 해주면 가해자는 집행유예를 받습니다. 집행유예는 구속시키지 않고 가해자에게 사회에서 반성할 기회를 주는 제도입니다. 2~3년을 감옥에 갇힐 위기를 벗어나는 것이니까, 가해자에게는 정말 큰 혜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렇게 큰 혜택을 받으려면 당연히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피해자 입장에서는 합의해주지 않고 가해자가 실형 2~3년을 다 살게 하고 민사소송을 하더라도 3~5천만 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합의를 해준다면, 합의를 안 해줘도 당연히 받을 수 있는 돈보다는 훨씬 큰 금액을 받아야 합니다. 변호사 업계에서는 이걸 '형사 프리미엄'이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성폭행 합의금이 5천만 원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 미만 금액에서는 피해자가 굳이 합의를 해줄 이유가 없습니다. 최소한 민사소송 없이 5천만 원을 바로 준다는 정도는 되어야 피해자가 고민해볼 만합니다.
유리한 조건일수록 합의금을 높여야 한다
5천만 원은 말 그대로 최소고, 이제 이 이상부터가 진짜 피해자의 선택입니다. 정확히는 피해자 변호사의 협상력에 달린 문제입니다. 가해자도 바보가 아닌 이상 합의금을 알아서 갖다 바치지는 않기 때문에 협상을 잘 해서 받아내야 합니다.
합의금이 높이는 조건은 아주 다양합니다. 집안이 좋아서, 전문직이어서, 파면되는 공무원이나 교사여서, 유명 연예인이어서 등등 가해자의 배경은 가장 기본입니다. 그리고 가해자가 뻔뻔하게도 끝까지 무죄 주장을 하다가 구속된 다음 2심에서 합의를 해주는 경우, 훨씬 심각한 케이스여서 형량이 5년 이상 아주 높게 나온 경우처럼 사건 진행 상황에 따라서 달라지기도 합니다.
실제로 심앤이에서 진행한 사건들을 가지고 말씀드리면, 합의금 최고액은 4억 원이었고 가해자의 직업이 의사인 케이스였습니다. 1억 이상 고액 합의 케이스도 꽤 많이 있는 편이고, 평균적으로는 7~8천만 원 정도에서 합의가 성사되는 경우가 가장 많은 것 같습니다.
금액이 안 맞으면 합의 안 해주면 그만
어디까지나 참고하는 기준점으로만 생각해야 합니다. 내 사건의 합의금은 피해자인 내가 결정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남들이 과하다고 해도 내가 10억 100억은 받아야 용서가 되겠으면 그렇게 받는 것입니다. 평균은 평균이고 나는 달라도 됩니다. 금액이 부족하면 합의 안 하면 그만입니다. 합의 안 해도 민사소송으로 피해보상 받을 수 있습니다.
금액만 가지고 이야기했지만, 어떻게 보면 성범죄 합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가해자의 태도인 것 같습니다. 합의도 결국은 용서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가해자의 태도가 나쁘면 변호사인 저도 합의를 해주기가 싫고, 어떻게든 더 많은 금액을 받아내고 싶습니다. 반대로 가해자가 진심으로 반성하고 사과하는 것이 보이면 조금 더 관대하게 받아줄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고민이 되면 가해자 변호사에게 가해자가 뭐라고 말하면서 사과를 하는지 직접 물어보기도 하고, 가해자에게 사과편지부터 요구해서 읽어보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가장 중요한 건 피해자인 나의 마음입니다. 하나하나 지켜보면서 내 마음의 소리를 들어보면 거기에 답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