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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성범죄 피해자 변호사는 없나요?
어떤 선배 변호사님이 같은 제목으로 쓰신 감명 깊은 글이 하나 있었다. 처음 밝히는 비밀인데, 사실 심앤이 법률사무소는 이 글에서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한 심앤이 법률사무소가 벌써 3년을 훌쩍 넘겼다. 같은 주제로 심앤이 법률사무소에 대해, 그리고 변호사로서 내가 느끼는 업계 현실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어서 제목을 빌렸다.
그 글을 보고 우리나라에 피해자 전문 변호사가 없다는 걸 처음 알았다. 시장조사 한다고 그렇게 이것저것 검색하고, 다른 변호사들 광고를 참 많이 봤는데도 몰랐다. 생각하고 보니까 그때부터 보이더라. 성범죄 비스무리한 키워드로 검색만 하면 무죄 만들어 주겠다는 로펌들 광고가 그득그득한데, 피해자 도와주겠다는 광고는 정말 하나가 없었다. 뭐 '고소, 신고' 이런 키워드도 광고가 뜨긴 하는데, 눌러보면 어차피 가해자 무죄 만들어주는 로펌 홈페이지다. 첫 페이지부터 무죄, 기소유예, 집행유예 만들었다는 자랑이 덕지덕지다.
처음으로 성범죄 피해자가 된 사람들의 마음을 진지하게 생각해봤다. 난생 처음 겪는 고통, 무엇을 어디서부터 해야 할지 모르는 막막함, 가족에게도 말하기 힘든 외로움. 나도 겪을 수 있는 일, 나는 변호사라고 다를 수 있을까. 뭐라도 도움 받으려고 인터넷 검색했는데, 무섭게 생긴 남자 변호사들 수십 명이 팔짱 끼고 줄줄이 서서 가해자 무죄 만들어주겠다고 대기하는 모습. 여기에 찾아갈 용기가 날까.
공정하지 않아 보였다. 가해자들이 비싼 돈 써서 변호사 선임하는 건 자유지만, 그럼 피해자도 똑같이 돈 쓰고 싸워볼 기회를 줘야지. 무죄 만들어 준다는 로펌에 갑자기 피해자가 가면 유죄도 잘 만들어 주나. 우리나라 성범죄 피해자에게 선택지는 없어 보였다.
희망을 주고 싶었다. 변호사들이 가해자 변호를 좋아하긴 하는데요, 가끔 소신 있게 피해자 편인 변호사도 있어요 정도는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날부터 심앤이 홈페이지에 "성범죄 피해자만을 변호합니다."라고 올리고, 다짐했다.
그래서 피해자 변호사는 왜 없나?
슬프지만 돈이 안 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성범죄 법률 시장이 얼마나 큰지 안 알려져 있는데, 대형로펌의 무대인 기업 법률 시장을 제외하면 전체 법률 시장의 절반은 성범죄라고 봐도 될 정도다. 요즘 거의 대형로펌 규모로 커진 서초동 유명 로펌들은 전부 성범죄를 이용해서 성장했고, 지금도 성범죄가 주요 수입원이다. 그런데 전체 성범죄 중에서 피해자 변호는 아무리 많이 쳐줘도 10%가 한참 안 된다. 나머지는 전부 가해자 변호다. 그러니까 변호사가 성범죄 가해자를 변호하지 않는다는 건, 잠재 고객의 90%는 날리고 시작한다는 뜻이다.
성범죄 피해자 변호로 유명한 변호사님들도, 막상 뉴스기사나 본인 업무사례를 찾아보면 가해자 변호 사건이 꼭 끼어 있다. 사실 변호사 입장에서 이게 잘못된 일도 아니고 그 변호사님들도 먹고 사셔야 하는 문제인데, 그래도 무조건적인 내 편을 기대했던 피해자들에게는 상처로 다가오는 것 같다.
내가 피해자 변호만 하겠다고 선언했을 때, 주변 선배 동기들이 다 말렸다. 그게 돈이 되냐, 돈 절대 못 번다, 굶어 죽는다.
잘해왔고, 앞으로도 잘할 계획이다
그런데 해내버렸다. 생존을 넘어서 성장했다. 강남 한복판 대로변 건물 사무실에 직원과 변호사가 바글바글하다. 가해자 전문 유명 로펌들과 대등하게 맞서 싸우고 있고, 이들과 늘상 마주치는 단골 파트너가 됐다. 업계에서 나름 악명도 높아졌다. 사무실에는 자백할테니 합의해달라는 가해자 변호사님들의 전화가 빗발친다. 10%도 안 되던 시장을 심앤이가 직접 개척하고 있다. 우리를 따라하는 후배 변호사님들까지 생겼다.
심앤이 법률사무소는 성범죄 피해자 전문 로펌이다. 상담 온 피해자 의뢰인들이 '가해자가 어디 로펌을 선임했다더라, 변호사가 몇 명이 붙었다더라, 이길 수 있을까요 변호사님' 하면서 겁먹고 좌절하면 그게 그렇게 마음이 아팠다. 그때 결심했다. 개인변호사 혼자 약자 편에서 외롭게 분투하는 그런 피해자 변호사 말고, 내가 강해서 나를 믿고 함께하는 피해자 의뢰인을 강자로 만들어주는 변호사, 사건마다 그런 변호사들 여러 명씩 붙어서 머리 짜내고, 체계적으로 돌아가는 시스템 잘 갖춰진 큰 로펌. ‘유죄’ 만들고 ‘구속’시켜주겠다고 팔짱 끼고 당당하게 광고하는 로펌. 피해자가 심앤이 선임했다고 하면 가해자가 무서워서 벌벌 떠는 그런 그림.
그래서 더 당당하게 가해자 구속시켰다고, 징역 몇 년 나왔다고, 합의금 얼마 받아냈다고 덕지덕지 자랑하고 있다. 더 자랑좀 하면 작년 심앤이의 성범죄 수사단계 승소율이 81%를 찍었다. 검찰 평균 기소율의 2배가 넘는 수치다.
성범죄 피해자 변호사 여기 있다. 지금까지 잘해왔고, 앞으로도 잘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