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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범죄 가해자의 사과는 자백이 아니에요
"왜 그랬냐고 따졌더니 가해자가 사과해서 녹음했어요, 증거가 되나요?
가해자가 잘못했다고 인정한 카톡이 있는데 이길 수 있겠죠?"
내가 따졌더니 가해자가 사과를 했습니다. 그럼 잘못을 인정한 거고, 자백한 거잖아요. 녹취나 카톡을 가지고 경찰서에 갑니다. 당연히 가해자가 자백하고 내가 이길 줄 알았어요. 그런데 가해자가 무죄를 주장한답니다. 경찰 수사관도 증거를 더 가지고 오래요. 왜 자백을 인정해주지 않을까요.
법적으로 자백이 인정되려면, 가해자가 자신의 행동을 구체적으로 인정하고 사과한 내용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요즘 성범죄 가해자들, 바보가 아닙니다. 인터넷 조금만 찾아봐도 대처 방법 쉽게 배울 수 있어요. 변명하고 빠져나가는 건 인간의 본능이기도 하구요. 피해자는 보통 '네가 어제 강제로 했잖아'라는 식으로 따지는데, 가해자는 그런 부분만 대답 안 하고 은근슬쩍 넘어가면서 미안하다는 말만 반복합니다.
그래서 피해자분들이 가해자가 자백했다면서 가져오는 증거들을 자세히 보면, 대부분 가해자가 교묘하게 행동은 인정을 안 하면서 무작정 미안하다고 사과만 하는 내용입니다. 내가 생각이 짧았다, 너를 배려하지 못했다, 네가 그렇게 생각하는 줄 몰랐다, 내 실수다, 반성하고 있다, 기억은 안 나지만 미안하다, 내가 정신이 어떻게 됐던 것 같다. 가해자들의 단골 멘트입니다.
그러니까 가해자들은 사과만 했을 뿐, 자기 행동을 솔직하게 인정한 적은 없는 겁니다. 가해자들도 다 이걸 알고 이용하는 것이고, 실제로 이런 방어 방법을 가르쳐주는 가해자 변호사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런 사과는 자백이 아니기 때문에 효력도 없습니다.
"이 정도 증거로 고소하면 패소하기 십상이에요"
아무리 그래도 잘못했다고 사과를 했는데 가해자가 이걸 어떻게 빠져나갈까요. 사실 말 한 마디면 가해자는 아주 쉽게 빠져나갈 수 있습니다. "그때는 피해자가 너무 흥분해서 따지니까, 진짜로 신고할까봐 무서워서 진정시키고 달래주려고 사과한 것이다, 사실 서로 동의한 관계였다."라고 주장하면 끝입니다. 성범죄는 기본적으로 가해자에게 유리한 싸움이기 때문에, 가해자가 대충 말이 되는 변명을 하면 다 받아주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가해자가 애매하게 사과한 증거 하나 가지고 쉽게 생각해서 고소를 들어가면 절대 안 됩니다. 정말 아무 것도 못 해보고 패소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나는 결정적인 증거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아니면, 처음부터 다 새로 시작해야 합니다. 전략 자체를 새로 짜야 하고, 증거도 새로 찾아야 하고, 심하면 죄명과 피해진술 자체를 바꿔야 될 수도 있습니다. 그만큼 심각한 일입니다.
"확실하게 증거로 남기려면, 아주 자세히 이야기하세요"
그럼 어떤 내용이 있어야 피해자에게 유리한 증거로 쓸 수 있을까요. 정답은 사건을 일부러 자세히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피해자분들이 보통 '네가 잘못했잖아, 네가 강제로 했잖아' 이 정도 말만 하면서 싸우는 경우가 많은데 그럼 의미가 없습니다. 실제로 있었던 일을 아주 자세하게 이야기해야 합니다. "어제 내가 하지 말라고 계속 말했는데, 오늘만 봐달라면서 힘으로 내 팔을 잡았잖아. 어제 내가 술 취해가지고 침대에 누워 있었는데, 네가 갑자기 와서 억지로 옷 벗겼잖아." 이런 식으로 가해자의 행동과 상황을 아주 자세하게 언급해야 합니다.
피해자가 이렇게 자세히 이야기를 하면서 따지면, 가해자가 인정하지 않고 똑같이 사과만 하더라도 유리한 증거로 쓸 수 있습니다. 정말로 억울했으면 가해자가 반박을 했을 텐데, 반박하지 않은 것 자체가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있다는 뜻이 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