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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변호사가 알려주는 성범죄 증거수집 (1) - 녹음(녹취)편
"가해자 몰래 녹음하세요, 합법이에요"
"녹음하셨어요?" 아마 상담에서 제가 빼놓지 않고 물어보는 질문일 겁니다. 그런데 "몰래 녹음하면 불법 아니에요?" 이렇게 답하시는 피해자분들이 많아요. 그때마다 아 이미 중요한 증거를 많이 놓쳤겠구나 싶어서 너무 안타깝습니다. 분명하게 말씀드릴게요. 불법 아닙니다. 상대방 동의 안 받아도 됩니다. 말 안 하고 몰래 녹음해도 됩니다.
녹취에 관해 규정하고 있는 법령은 통신비밀보호법입니다. 우리나라 통신비밀보호법은 제3자가 몰래 녹취하는 행위만 불법으로 규정하고 처벌하고 있습니다. 몰래 녹음기나 카메라를 숨겨놓는 도청만 처벌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반대로 해석하면, 내가 직접 말을 하는 당사자 본인(대화 참여자)이면, 마음대로 녹취를 하더라도 불법이 아니라는 겁니다. 상대방에게 나 지금부터 녹음한다고 알려줄 필요도 없습니다. 핸드폰을 주머니나 가방에 넣어놓고 몰래 녹음해도 되고, 당연히 통화녹음도 몰래 해도 됩니다. 이렇게 녹음을 해놓으면, 형사든 민사든 소송에서 얼마든지 증거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정상적으로 증거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미국은 통화녹음이 불법이고 그래서 아이폰에 통화녹음 기능이 없다고 잘못 알려져 있는데, 제가 직접 조사해본 결과 미국도 합법인 주가 훨씬 많고 일부 주에서만 불법으로 규정돼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통화녹음이 전면적으로 합법이기 때문에 갤럭시에는 통화녹음 기능이 있습니다.
"무작정 녹음부터 하세요"
성범죄 피해를 입었을 때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또 증거수집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질문을 받으면, 저는 항상 "일단 경찰에 신고부터 하세요."라고 답변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답변을 바꿨습니다. "무작정 녹음부터 하세요."라고요. 제가 아무리 경찰에 신고하라고 이야기해도, 사실 피해자 입장에서 신고를 한다는 건 너무 어려운 일입니다. '112' 번호를 누른다는 게 말이 쉽지 막상 내가 되면 정말 어려운 것 같아요.
그래서 녹음을 하자는 겁니다. 핸드폰으로 몰래 녹음기 켜고 녹취하는 것은 신고보다는 훨씬 쉬운 일이니까요. 지금 막 사건이 일어난 현장이면 더더욱 중요하고, 가해자를 찾아가서 따지거나 전화로 따질 때 모든 대화 내용을 녹음해야 합니다. 가해자들이 처음에 실수를 하는 경우가 은근히 많습니다. 피해자가 와서 따지면 본인도 당황스러우니까 어쩔 수가 없어요. 이때 가해자가 범행 내용을 구체적으로 인정하거나 피해자에게 빌고 사과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걸 증거로 남겨야 합니다. 가해자들은 나중에 가서 그런 적이 없다고 말을 바꿔요. 그럼 피해자가 증거를 들이밀어야 하는데, 막상 제가 피해자분들을 만나보면 녹음을 해오시는 분들이 정말 드뭅니다. 결국 증거가 없으면, '가해자가 나랑 둘이 있을 때 자백했다'라고 말만 하는 건 의미가 없습니다.
녹취는 성범죄에서 가장 확실하고, 그만큼 효과도 좋은 증거수집 방법입니다. 다른 증거 없이 녹취만 잘 해놨어도 사건을 피해자에게 훨씬 유리하게 이끌고 갈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피해자분들 이것만 기억해 주세요. 내가 지금 어떤 상황이든 일단 녹음을 하세요. 가해자하고 직접 이야기할 때는 특히요. 여성분들은 핸드폰 초기화면 손 잘 닿는 곳에 녹음기 어플 넣어 놓으시면 좋겠습니다. 나 지금 위험한 것 같다, 가해자하고 뭔가 중요한 이야기를 하게 될 것 같다 싶으면 일단 녹음기부터 켜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