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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범죄 합의 언제 해야 피해자가 유리할까요?
"성폭행 합의는 판결 선고 직전"
성폭행(강간, 유사강간 등)이나 불법촬영물 유포 및 유포협박, 아청법위반처럼 집행유예 없이 실형이 나오는 성범죄는 법원에서 1심 판결을 선고할 때 가해자를 법정에서 구속시키는 것이 원칙입니다. 가해자는 전날까지는 집에서 잠을 자고 법원까지 자기 발로 걸어왔는데, 귀가하지 못하고 구치소로 끌려가는 것이지요. 구속은 성범죄자에게 가장 공포스러운 일입니다. 제가 법정에서 구속되는 성범죄자들을 많이 봤는데, 다들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판사님께 살려달라고 빕니다. 덩치가 산만하든, 무섭게 생겼든 예외가 없습니다. 그 전까지 피해자가 꽃뱀이라고 욕하고, 자기 돈 없다고 건방지게 굴었으면서, 막상 구속되는 순간만 되면 그렇게 울어요. 그런 걸 볼 때마다 구속이 이렇게 무섭구나 싶습니다. 그래서 가해자들은 어떻게든 구속을 피하려고 합니다. 성범죄에서 구속을 피할 유일한 방법은 피해자와 합의를 하는 것이고, 이게 가해자들이 합의에 매달리는 이유입니다.
그런데 사람 심리가, 막상 눈 앞에 닥치지 않으면 실감이 안 납니다. 경찰 조사를 받을 때도, 검사와 마주보고 있을 때도, 재판을 받을 때까지도 실감이 안 납니다. 결국 구속될 걸 알면서도요. 언제 실감이 나냐면, 판결 선고기일이 잡혔을 때부터 실감이 납니다. 흔히 남자분들 군대 갈 때 입대 날짜 잡혀도 딱히 신경 안 쓰고 놀다가 입대 전날 돼야 실감 나면서 우울해진다고 하잖아요. 구속도 똑같습니다. 재판을 받을 때까지도, 왠지 그냥 판사님이 봐줄 것 같은 기분이 들고 내 일이 아닌 것 같아요. 그런데 마지막 재판에서 판사님이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해보라고 하고, 한 달 후에 판결 선고하겠다고 날짜를 잡으면 그때부터 슬슬 실감이 나기 시작합니다. 구속되는 날이거든요.
이때부터 가해자들은 돈을 모으기 시작합니다. 대출 알아보고, 주식 있으면 팔고, 차도 팔고, 부모님한테 빌리고, 친구한테 빌리고, 여기저기서 돈을 끌어옵니다. 그 전까지는 나 돈 이 정도밖에 없으니까 피해자에게 그냥 받으라는 식인데, 막상 내일모레가 판결 선고면 자기가 알아서 돈을 마련하고 피해자에게 사정사정 합니다. 지금부터는 정말 장난이 아니거든요. 합의 못 하면 구속되는 거니까요.
높은 합의금은 대부분 판결 선고 직전에 나옵니다. 피해자가 원하는 합의금이 있는데 돈이 부족하면, 가해자가 알아서 법원에 판결 선고 미뤄달라고 부탁도 하고, 집을 팔았다 차를 팔았다 아주 열심입니다. 이건 실제 제 경험인데, 제 의뢰인이 원하는 합의금 액수가 정말 높아서 가해자가 선고기일을 5번이나 연기하면서 결국은 금액을 맞춰왔던 적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가해자가 합의해달라고 하는데 여기서 끝내주는 것이 맞는지 모르겠다, 이 정도 합의금이 적당한 것인지 모르겠다, 가해자는 정말로 돈이 없다고 하는데 못 믿겠다, 그럼 일단은 시간을 끌어보는 것이 정답입니다. 사실 가해자 입장에서도 큰 돈을 마련하려면 시간이 걸리는 것은 당연합니다. 대출도 받고 차도 팔고 주식도 팔아야 하니까요. 그러니까 가해자가 최대한 돈을 모아올 때까지 여유 있게 기다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시간은 항상 성범죄 피해자의 편입니다.
"성추행 합의는 검찰 처분 직전"
성범죄 형사사건은 경찰단계 - 검찰단계 - 재판단계 순서로 진행됩니다. 일단 경찰이 먼저 수사를 하고, 유죄가 인정된다 싶으면 검찰로 사건을 보냅니다. 그럼 검사가 사건을 직접 검토하고, 수사기관의 대표자로서 유죄인지 무죄인지 판단하고 결정을 내리는데, 이걸 '처분'이라고 합니다. 구약식 처분(벌금형 약식명령청구), 구공판 처분(정식기소 재판청구)이 대표적인 유죄 처분입니다.
그런데 예외적인 유죄 처분이 하나가 더 있어요. 바로 '기소유예' 처분입니다. 기소유예는 검사가 유죄는 인정하지만, 처벌까지는 안 하고 봐주겠다는 의미의 선처입니다. 기소유예도 전과에 해당되기는 하지만, 직업적인 불이익이 전혀 없기 때문에 사실상 무의미한 전과입니다. 가해자들은 이 기소유예를 가장 받고 싶어합니다. 성폭행급 사건에서는 합의를 하더라도 기소유예가 거의 나오지 않고 재판까지 갑니다. 반면에 성추행(강제추행, 업무상 위력 추행 등)이나 몰카 불법촬영(카메라등이용촬영)같은 성범죄들은 합의를 하면 가해자가 기소유예를 받을 가능성이 아주 높아집니다. 그래서 가해자들이 수사단계에서 빠르게 합의를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럼 성추행 피해자 입장에서는 언제 합의를 해야 유리할까요? 성폭행이랑 비슷하게 생각하면 되는데, 바로 검찰 처분 직전입니다. 검사님이 한 번 처분을 해버리면 끝이고 기소유예를 받을 기회가 사라지기 때문에, 가해자들은 검찰 처분 전에 최대한 돈을 모아서 합의를 시도합니다. 특히 성범죄로 벌금형만 받아도 퇴직당하는 공무원들은 무조건 기소유예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이때 합의에 가장 간절해집니다.
요즘 성추행이나 불법촬영 가해자들은 초반에 자백하게 되면 대부분 검찰단계에서 형사조정을 신청합니다. 빨리 합의를 할 테니까 봐달라고 검사님께 부탁하는 것이지요. 형사조정이 끝나면 검사는 거의 바로 처분을 해버리니까, 시기상으로 형사조정에서 합의를 하는 것도 피해자 입장에서 괜찮은 방법입니다.
가해자 변호사님들이 합의할 때 제일 많이 쓰시는 수법이 "지금 아니면 이 금액 안 준다"라는 말입니다. 피해자의 조급함을 이용하는 것이지요. 아주 고전적인 상술인데, 여기에 넘어가는 피해자분들이 실제로 굉장히 많아서 안타깝습니다.
성범죄 합의는 똑똑하게 해야 합니다. 가해자의 심리와 형사소송절차를 잘 이용해야 하구요. '시간은 항상 성범죄 피해자의 편이다' 이 말 꼭 기억하시고 우리 피해자분들 피해보상 최대한 많이 받으시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