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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의금, 위로금 함부로 받으면 안 돼요
"성범죄 가해자가 주는 돈은 거부하세요"
합의금이라고 하면 잘못을 저지른 가해자가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피해자에게 돈으로 피해보상을 해주는 상황을 떠올리는 것이 상식입니다. 그런데 가해자 변호사님들한테 합의를 해달라고 연락이 오면, 제가 제일 먼저 하는 말은 "자백하실 건가요?" 입니다. 이 당연한 걸 왜 물어보나 싶겠지만, 성범죄에서는 상식이 통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가해자 변호사님이 위로금을 주겠다고 하는데 자기가 받아도 되는지 모르겠다며 상담을 온 성폭행 피해자분이 있었습니다. 가해자는 경찰단계부터 합의 하에 한 관계라고 계속 무죄 주장 중이었는데, 갑자기 가해자 변호사님한테 전화가 와서 합의서는 안 써줘도 되니까 그냥 위로금을 1,000만 원 주겠다고 했다는 겁니다. 피해자분이 그 돈을 나한테 왜 주냐고 물어보니까, 가해자 변호사님이 범행을 인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본의 아니게 피해를 입히게 되어 죄송한 마음에 도와드리고 싶다면서 힘드실 텐데 상담치료 비용에 보태라고 했다는 거예요.
피해자분은 어차피 내가 합의서를 써주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나중에 피해보상은 받아야 하니까 그냥 지금 일부 금액을 받아두는 것도 괜찮지 않나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가해자 본인도 범행을 인정하니까 돈을 쓰는 것이구요. 그런데 뭔가 이상하고 꺼림칙하죠. 제 대답은 당연히 "절대 받으면 안 돼요." 였습니다.
"위로금 받으면, 사건이 무혐의로 끝나버려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꽃뱀 공포증이 있는 것 같아요. 성범죄 피해자가 돈을 받았다는 말을 들으면 난리가 납니다. 처음부터 돈을 노리고 고소했다고 욕을 하고 난리가 나요. 사회적 분위기입니다. 그런데 사회적 분위기만 그럴까요? 사실 우리나라 수사기관이 더 난리입니다.
경찰과 검찰은 성범죄 피해자가 돈을 받는 것을 가장 싫어합니다. 수사기관은 말 그대로 가해자의 범죄를 밝혀내는 역할을 하는 곳이지, 피해자가 돈으로 피해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수사기관은 피해자가 가해자를 엄벌해달라고 탄원하면 좋아하고, 가해자에게 돈을 받았다고 하면 싫어합니다.
그래도 정식 합의까지는 괜찮아요. 가해자가 자백을 하고, 피해자는 정당하게 피해보상을 받고, 합의서를 써서 제출하는 것은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가해자가 자기는 범죄를 저지른 적이 없다면서 무죄를 주장하고 있는데, 갑자기 피해자가 가해자에게서 이유 없이 돈을 받았다? 수사기관은 곧바로 돌변합니다. 마치 피해자가 처음부터 돈을 노리고 허위로 고소한 것처럼, 꽃뱀이라고 취급해요. 그동안 열심히 싸워 온 것도 다 물거품이 됩니다. 아마도 가해자는 돈으로 손해를 봤고, 반대로 피해자는 이익을 얻었으니까 가해자에게 유리한 처분을 해주는 것이 정당하다는 생각이겠지요.
"그래서, 자백하실 건가요?"
합의금이든, 위로금이든, 뭐라고 부르든 가해자 변호사님이 주는 돈은 절대로 받으면 안 됩니다. 돈을 그냥 주는 게 아니에요. 다 목적이 있는 겁니다. 피해자를 꽃뱀으로 만들어서 공격하고 무혐의를 받아내려는 속셈이에요. 요즘 성범죄자들, 그리고 가해자 변호사님들 똑똑합니다. 피해자가 걱정돼서 그런다, 미안해서 그런다 다 거짓말이에요.
그래서 합의 제안이 오면 제가 제일 먼저 묻는 말은 "자백하실 건가요?" 입니다. 자백을 하면 합의를 생각해볼 수 있지만, 끝까지 무죄라고 우기면서 돈만 받아달라는 황당한 요구는 받아줄 수가 없기 때문이에요. 합의를 하고 용서를 받고, 그래서 선처를 받고 싶으면 자기 범행부터 솔직하게 인정하는 것이 당연한 상식 아니겠어요?
아무튼 이렇게 피해자 변호사도 속이려는 판국에, 얼마나 많은 피해자분들이 가해자 변호사님들에게 속아서 무심코 돈을 받을지 아찔합니다. 사실 안 그래도 피해자로서 힘든데, 당장 나한테 몇 백만 원, 천만 원 목돈 주겠다고 하면 거부하기 힘든 것 압니다. 그렇지만 피해자분들 이거 하나는 꼭 기억했으면 좋겠어요. 내가 끝까지 싸워서 유죄 인정되면 정당하게 피해보상 받을 수 있고, 지금 가해자가 주겠다는 푼돈보다 훨씬 많은 돈 받아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당장 급한 마음에 속아서 손해보고, 성범죄자에게 면죄부를 주지는 않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