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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자의 진술조서는 피해자가 볼 수 없어요
"가해자의 진술조서는 열람이 허락되지 않아요"
성범죄 피해자분들이 수사나 재판 과정에서 가장 궁금해하는 것은 '가해자가 조사받으면서 뭐라고 말했는지'인 것 같아요. 가해자가 뻔뻔하게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어떻게 빠져나갈 궁리를 하는지 피해자 입장에서는 너무 궁금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래서 가해자의 진술조서를 열람하고 싶다고 요청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가해자가 경찰조사를 받을 때 무슨 말을 했는지, 가해자는 어떤 주장을 하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으니까요.
그런데 가해자의 진술조서는 절대로 피해자에게 열람이 허락되지 않아요. 경찰에서 정보공개청구를 하든, 검찰에서 기록 열람복사 신청을 하든 전부 거절당해요. 심지어 재판단계까지 가서 법원에 신청을 하더라도, 1심까지는 가해자의 진술조서 열람복사가 피해자에게 허락되지 않아요.
이유는 '수사 기밀'이기 때문이라는 것인데, 사실 피해자 변호사의 입장에서는 납득하기가 어려워요. 범죄자인 피의자에게 수사 자료를 공개하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수사기관과 같은 편인 피해자에게 공개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잖아요. 피해자에게 가해자의 진술조서를 볼 수 있게 해주면, 피해자가 알아서 가해자의 거짓말을 반박할 수 있는 증거를 찾아서 제출할 수도 있고 오히려 수사에 훨씬 큰 도움이 될 거예요.
아쉽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성범죄를 가해자와 피해자가 서로 자기 주장을 하면서 싸우고 수사기관은 중간에서 공정하게 판단을 해야 한다는 관점에서 보고 있기 때문에 사건 진행 과정에서 최대한 배제하는 경향이 있어요.
"수사단계까지는 가해자도 피해자의 진술조서를 볼 수 없어요"
다행히 수사단계까지는 가해자도 피해자의 진술조서를 볼 수 없어요. 가해자든 피해자든 자신의 경찰조사 진술조서만 열람할 수 있어요. 어떻게 보면 공평한 일이고, 어떻게 보면 당연히 그래야 하는 일이지요. 수사단계에서는 가해자도 피해자가 정확히 뭐라고 진술했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조사를 받아요. 물론 알아서 방어해보라는 취지에서 경찰 수사관님이 피해자의 진술을 언급하면서 가해자에게 질문을 하기는 하지만, 어쨌든 이것도 수사기법의 일환이에요.
따라서 피해자의 입장에서는 왜 가해자의 진술조서를 보여주지 않느냐고 답답해하는 것보다는, 서로 동등한 조건에서 싸운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아요. 가해자도 피해자의 진술을 정확히 알 수 없고, 피해자도 가해자의 진술을 모르는 상태에서 싸우는 것이니까요.
"가해자의 주장은 경찰 수사관님을 통해서 최대한 알아내야 해요"
가해자의 진술조서를 직접 열람할 수는 없지만, 경찰 수사관님에게 물어보면 알려주시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피해자가 해야 하는 일은 경찰 수사관님을 통해서 가해자가 어떤 주장을 하고 있는지, 뭐라고 거짓말을 하는지 알아내는 것이에요. 그래야 가해자의 주장이 왜 거짓말인지 자세히 설명하는 의견서도 제출할 수 있고, 어떤 증거를 보강해야 하는지도 알 수 있어요.
물론 안 알려주려고 하고, 피해자에게 비협조적인 수사관님들도 있어요. 그래도 최대한 부탁을 드리고 잘 이야기해보면 조금씩이라도 알려주세요. 피해자 변호사의 일은 이렇게 수사관님과 소통하면서 정보를 알아내고, 어떤 부분을 어필해야 하는지 전략적으로 파악하는 것이에요. 혼자서 사건을 진행하는 피해자분들도 변호사와 똑같이 수사관님과 소통을 해야 해요. 가해자가 뭐라고 주장하는지 전체적인 내용만 알아도 피해자가 대응할 수 있는 부분이 정말 많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