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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성범죄 피해자 변호사는 없나요?
어떤 선배 변호사님이 같은 제목으로 쓰신 감명 깊은 글이 하나 있었다. 처음 밝히는 비밀인데, 사실 심앤이 법률사무소는 이 글에서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한 심앤이 법률사무소가 벌써 3년을 훌쩍 넘겼다. 같은 주제로 심앤이 법률사무소에 대해, 그리고 변호사로서 내가 느끼는 업계 현실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어서 제목을 빌렸다. 그 글을 보고 우리나라에 피해자 전문 변호사가 없다는 걸 처음 알았다. 시장조사 한다고 그렇게 이것저것 검색하고, 다른 변호사들 광고를 참 많이 봤는데도 몰랐다. 생각하고 보니까 그때부터 보이더라. 성범죄 비스무리한 키워드로 검색만 하면 무죄 만들어 주겠다는 로펌들 광고가 그득그득한데, 피해자 도와주겠다는 광고는 정말 하나가 없었다. 뭐 '고소, 신고' 이런 키워드도 광고가 뜨긴 하는데, 눌러보면 어차피 가해자 무죄 만들어주는 로펌 홈페이지다. 첫 페이지부터 무죄, 기소유예, 집행유예 만들었다는 자랑이 덕지덕지다. 처음으로 성범죄 피해자가 된 사람들의 마음을 진지하게 생각해봤다. 난생 처음 겪는 고통, 무엇을 어디서부터 해야 할지 모르는 막막함, 가족에게도 말하기 힘든 외로움. 나도 겪을 수 있는 일, 나는 변호사라고 다를 수 있을까. 뭐라도 도움 받으려고 인터넷 검색했는데, 무섭게 생긴 남자 변호사들 수십 명이 팔짱 끼고 줄줄이 서서 가해자 무죄 만들어주겠다고 대기하는 모습. 여기에 찾아갈 용기가 날까. 공정하지 않아 보였다. 가해자들이 비싼 돈 써서 변호사 선임하는 건 자유지만, 그럼 피해자도 똑같이 돈 쓰고 싸워볼 기회를 줘야지. 무죄 만들어 준다는 로펌에 갑자기 피해자가 가면 유죄도 잘 만들어 주나. 우리나라 성범죄 피해자에게 선택지는 없어 보였다. 희망을 주고 싶었다. 변호사들이 가해자 변호를 좋아하긴 하는데요, 가끔 소신 있게 피해자 편인 변호사도 있어요 정도는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날부터 심앤이 홈페이지에 "성범죄 피해자만을 변호합니다."라고 올리고, 다짐했다. 그래서 피해자 변호사는 왜 없나? 슬프지만 돈이 안 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성범죄 법률 시장이 얼마나 큰지 안 알려져 있는데, 대형로펌의 무대인 기업 법률 시장을 제외하면 전체 법률 시장의 절반은 성범죄라고 봐도 될 정도다. 요즘 거의 대형로펌 규모로 커진 서초동 유명 로펌들은 전부 성범죄를 이용해서 성장했고, 지금도 성범죄가 주요 수입원이다. 그런데 전체 성범죄 중에서 피해자 변호는 아무리 많이 쳐줘도 10%가 한참 안 된다. 나머지는 전부 가해자 변호다. 그러니까 변호사가 성범죄 가해자를 변호하지 않는다는 건, 잠재 고객의 90%는 날리고 시작한다는 뜻이다. 성범죄 피해자 변호로 유명한 변호사님들도, 막상 뉴스기사나 본인 업무사례를 찾아보면 가해자 변호 사건이 꼭 끼어 있다. 사실 변호사 입장에서 이게 잘못된 일도 아니고 그 변호사님들도 먹고 사셔야 하는 문제인데, 그래도 무조건적인 내 편을 기대했던 피해자들에게는 상처로 다가오는 것 같다. 내가 피해자 변호만 하겠다고 선언했을 때, 주변 선배 동기들이 다 말렸다. 그게 돈이 되냐, 돈 절대 못 번다, 굶어 죽는다. 잘해왔고, 앞으로도 잘할 계획이다 그런데 해내버렸다. 생존을 넘어서 성장했다. 강남 한복판 대로변 건물 사무실에 직원과 변호사가 바글바글하다. 가해자 전문 유명 로펌들과 대등하게 맞서 싸우고 있고, 이들과 늘상 마주치는 단골 파트너가 됐다. 업계에서 나름 악명도 높아졌다. 사무실에는 자백할테니 합의해달라는 가해자 변호사님들의 전화가 빗발친다. 10%도 안 되던 시장을 심앤이가 직접 개척하고 있다. 우리를 따라하는 후배 변호사님들까지 생겼다. 심앤이 법률사무소는 성범죄 피해자 전문 로펌이다. 상담 온 피해자 의뢰인들이 '가해자가 어디 로펌을 선임했다더라, 변호사가 몇 명이 붙었다더라, 이길 수 있을까요 변호사님' 하면서 겁먹고 좌절하면 그게 그렇게 마음이 아팠다. 그때 결심했다. 개인변호사 혼자 약자 편에서 외롭게 분투하는 그런 피해자 변호사 말고, 내가 강해서 나를 믿고 함께하는 피해자 의뢰인을 강자로 만들어주는 변호사, 사건마다 그런 변호사들 여러 명씩 붙어서 머리 짜내고, 체계적으로 돌아가는 시스템 잘 갖춰진 큰 로펌. ‘유죄’ 만들고 ‘구속’시켜주겠다고 팔짱 끼고 당당하게 광고하는 로펌. 피해자가 심앤이 선임했다고 하면 가해자가 무서워서 벌벌 떠는 그런 그림. 그래서 더 당당하게 가해자 구속시켰다고, 징역 몇 년 나왔다고, 합의금 얼마 받아냈다고 덕지덕지 자랑하고 있다. 더 자랑좀 하면 작년 심앤이의 성범죄 수사단계 승소율이 81%를 찍었다. 검찰 평균 기소율의 2배가 넘는 수치다. 성범죄 피해자 변호사 여기 있다. 지금까지 잘해왔고, 앞으로도 잘할 계획이다.
2023.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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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변호사가 알려주는 성폭행 합의금
"가해자 변호사가 다들 1천만 원에 합의한다는데 정말인가요? 다른 피해자들은 얼마에 합의해요? 합의금은 피해자가 결정하는 거라던데 얼마가 적당한지 모르겠어요" 합의금은 피해자의 가장 큰 관심사가 아닐까 싶은데, 막상 인터넷을 찾아봐도 얼마가 적당한 합의금인지는 찾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변호사들의 직접 답변도 합의금은 피해자가 원하는 만큼 결정하면 된다는 식의 애매한 답변이 많은데, 변호사인 제가 봐도 답답합니다. 그래서 대놓고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피해자 변호사로서 제가 직접 경험한, 지금 업계에서 실제로 쓰이고 있는 성폭행 합의금 기준입니다. 최소 5천만 원, 1억 이상도 가능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성폭행 합의금은 최소 5천만 원이 시작입니다. 그리고 다른 조건이 더 붙으면 1억 이상 훨씬 더 높은 금액까지 올라갈 수 있습니다. 일단 가장 일반적인 경우를 기준으로 잡아야 합니다. 이전까지 전과 없이 초범인 20~50대 남성 가해자가 술에 취한 여성 피해자를 1번 성폭행한 경우입니다. 2023년 기준, 우리나라 법원이 이런 가해자에게 내리는 형량은 징역 2~3년입니다. 집행유예 없이 구속되는 실형입니다. 그리고 피해자가 민사소송을 하면 가해자에게 3~5천만 원의 위자료를 청구할 수 있습니다. 이때 피해자가 합의를 해주면 가해자는 집행유예를 받습니다. 집행유예는 구속시키지 않고 가해자에게 사회에서 반성할 기회를 주는 제도입니다. 2~3년을 감옥에 갇힐 위기를 벗어나는 것이니까, 가해자에게는 정말 큰 혜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렇게 큰 혜택을 받으려면 당연히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피해자 입장에서는 합의해주지 않고 가해자가 실형 2~3년을 다 살게 하고 민사소송을 하더라도 3~5천만 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합의를 해준다면, 합의를 안 해줘도 당연히 받을 수 있는 돈보다는 훨씬 큰 금액을 받아야 합니다. 변호사 업계에서는 이걸 '형사 프리미엄'이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성폭행 합의금이 5천만 원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 미만 금액에서는 피해자가 굳이 합의를 해줄 이유가 없습니다. 최소한 민사소송 없이 5천만 원을 바로 준다는 정도는 되어야 피해자가 고민해볼 만합니다. 유리한 조건일수록 합의금을 높여야 한다 5천만 원은 말 그대로 최소고, 이제 이 이상부터가 진짜 피해자의 선택입니다. 정확히는 피해자 변호사의 협상력에 달린 문제입니다. 가해자도 바보가 아닌 이상 합의금을 알아서 갖다 바치지는 않기 때문에 협상을 잘 해서 받아내야 합니다. 합의금이 높이는 조건은 아주 다양합니다. 집안이 좋아서, 전문직이어서, 파면되는 공무원이나 교사여서, 유명 연예인이어서 등등 가해자의 배경은 가장 기본입니다. 그리고 가해자가 뻔뻔하게도 끝까지 무죄 주장을 하다가 구속된 다음 2심에서 합의를 해주는 경우, 훨씬 심각한 케이스여서 형량이 5년 이상 아주 높게 나온 경우처럼 사건 진행 상황에 따라서 달라지기도 합니다. 실제로 심앤이에서 진행한 사건들을 가지고 말씀드리면, 합의금 최고액은 4억 원이었고 가해자의 직업이 의사인 케이스였습니다. 1억 이상 고액 합의 케이스도 꽤 많이 있는 편이고, 평균적으로는 7~8천만 원 정도에서 합의가 성사되는 경우가 가장 많은 것 같습니다. 금액이 안 맞으면 합의 안 해주면 그만 어디까지나 참고하는 기준점으로만 생각해야 합니다. 내 사건의 합의금은 피해자인 내가 결정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남들이 과하다고 해도 내가 10억 100억은 받아야 용서가 되겠으면 그렇게 받는 것입니다. 평균은 평균이고 나는 달라도 됩니다. 금액이 부족하면 합의 안 하면 그만입니다. 합의 안 해도 민사소송으로 피해보상 받을 수 있습니다. 금액만 가지고 이야기했지만, 어떻게 보면 성범죄 합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가해자의 태도인 것 같습니다. 합의도 결국은 용서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가해자의 태도가 나쁘면 변호사인 저도 합의를 해주기가 싫고, 어떻게든 더 많은 금액을 받아내고 싶습니다. 반대로 가해자가 진심으로 반성하고 사과하는 것이 보이면 조금 더 관대하게 받아줄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고민이 되면 가해자 변호사에게 가해자가 뭐라고 말하면서 사과를 하는지 직접 물어보기도 하고, 가해자에게 사과편지부터 요구해서 읽어보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가장 중요한 건 피해자인 나의 마음입니다. 하나하나 지켜보면서 내 마음의 소리를 들어보면 거기에 답이 있습니다.
2023.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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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의와 민사소송] 성범죄 피해보상 받는 방법
"성범죄 피해자는 돈으로 피해보상을 받을 권리가 있어요" 성범죄 피해자에게 피해보상은 정말 중요한 문제입니다. 가해자가 처벌을 받는 것도 물론 중요하고 속이 시원한 일이지만, 정작 나에게 금전적으로 돌아오는 것이 없으면 내 피해는 제대로 회복된 것이 아니니까요. 성범죄 피해자가 돈으로 피해보상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래서 가해자에게 형사처벌을 내리는 것과는 별개로,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도록 법적인 절차가 다 마련되어 있습니다. 그렇다고 마냥 간단한 일은 아닙니다. 내가 가해자를 신고하면 처벌도 되고, 피해보상도 받을 수 있고 알아서 절차가 다 진행될 것이라고 착각하는 피해자분들이 많은데, 현실은 전혀 그렇지가 않아요. 형사처벌과 피해보상은 완전히 다른 문제입니다. 형사처벌은 경찰과 검찰같은 수사기관이 직접 진행해 주지만, 피해보상은 전혀 도와주지 않습니다. 피해보상은 피해자가 알아서 받아야 한다는 거죠. 흔히 경찰 수사관에게 합의는 어떻게 하냐고 물어보는 피해자분들이 있는데, 그럼 '경찰은 합의에 관여하지 않는다, 합의는 당사자들끼리 알아서 하는 거다' 이런 답이 돌아옵니다. 그러니까 피해자는 공부를 많이 해야 합니다. 피해자가 스스로 자기 권리를 찾지 않으면 손해를 볼 수밖에 없어요. 기억하세요 '합의'와 '민사소송' 성범죄 피해자가 돈으로 피해보상을 받는 방법은 크게 '형사합의'와 '민사소송' 2가지로 나뉩니다. 둘 다 가해자의 돈으로 피해보상을 받는다는 건 똑같지만, 절차와 효과가 완전히 다르니까 잘 보셔야 합니다. 먼저 형사합의는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합의금'을 받고 선처해주는 절차입니다. 우리 흔히 간단한 폭행이나 교통사고 이런 사건에서 합의본다고 하잖아요. 그 합의가 바로 이 형사합의를 말하는 겁니다. 간단하게 말해서 돈(합의금)을 받고 대신에 가해자를 봐주는 거죠. 피해자 입장에서는 가장 중요한 피해보상 문제가 빠르게 해결된다는 것이 장점입니다. 그래서 사건을 빨리 끝내고 싶은 피해자분들이 합의를 선호합니다. 가해자를 고소(신고)하고 실제로 유죄판결 형사처벌까지 받게 하려면 보통 1년 정도가 걸리는데, 이렇게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이 싫을 때 합의를 해주고 사건을 끝내는 피해자분들이 많습니다. 합의를 해주면 가해자는 아주 큰 혜택, 감형을 받습니다. 합의는 성범죄에서 감형 효과가 가장 큽니다. 강간(성폭행)처럼 아주 심각한 성범죄여도 피해자가 합의를 해주면 가해자는 구속을 피할 수 있습니다. 성폭행보다는 약한 성추행 종류는 대부분 벌금형 정도까지 감형이 되고, 심지어 검사가 아무 처벌도 안 하고 기소유예로 가해자를 봐주는 경우도 많습니다. 내가 합의를 해준다고 사건이 바로 끝나지는 않습니다. 성범죄는 피해자가 합의를 해주더라도 가해자를 유죄로 처벌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그러나 감형 효과가 정말 크니까, 그만큼 신중하게 결정해야 합니다. '내가 합의금으로 얼마를 받으면 가해자를 용서해줄 수 있을까' 잘 생각해보셔야 합니다. 합의해줄 생각 없으면, 민사소송 하면 됩니다 합의는 쉽지가 않습니다. 일단 가해자가 범행을 다 인정하고 자백해야 합의가 가능한데, 가해자가 억울하다고 무죄를 주장하면서 싸우고 있으면 당연히 합의 자체가 불가능해요. 금액도 맞아야 합니다. 나는 합의금을 최대한 많이 받아야겠는데, 반대로 가해자는 조금만 주고 싶겠죠. 결국 협상의 문제입니다. 잘못은 자기가 해놓고 어떻게든 합의금 액수를 낮추려고 하는 가해자를 보면 너무 괘씸하고 정이 떨어질 때도 많아요. 그냥 처벌 받겠다, 배째라는 식으로 나오는 가해자들도 있습니다. 합의를 해주려고 했다가도, 협상 도중에 뻔뻔한 가해자의 태도를 보고 마음이 변해서 합의를 거부하는 피해자분들도 많습니다. 이럴 때 하는 것이 민사소송입니다. 조건이 안 맞아서 합의를 못 했거나, 합의를 해주기가 싫고 가해자가 최대한 센 처벌을 받았으면 좋겠다 그럴 때 민사소송을 하는 겁니다. 가끔 합의를 못 하면 피해보상 없는 것 아니냐 하는 피해자분들이 있는데, 민사소송 하면 됩니다. 꼭 기억하세요. 범죄를 저지른 가해자는 본인이 받는 형사처벌과는 별개로, 피해자에게 돈으로도 피해보상을 해줄 의무가 있습니다. 그래서 피해자가 민사소송을 통해서 가해자에게 손해배상청구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몸으로 때우면 된다? 착각입니다. 형사처벌은 형사처벌이고, 돈은 돈대로 나갑니다. 교도소 다녀왔으면, 피해자에게 돈도 줘야 하는 겁니다. 그래서 성범죄 민사소송은 가해자에 대한 2차 처벌, 경제적 처벌의 의미가 있습니다. 나는 가해자가 감형받는 것이 싫다, 최대한 고통스럽게 만들어주고 싶다 하면 검찰에, 법원에 엄벌탄원서 열심히 내고, 민사소송까지 하면 됩니다.
2023.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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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범죄 무고 이야기] 무혐의라고 죄가 없다는 뜻이 아니에요
"증거가 부족했을 뿐" 무혐의, 무죄 나왔다고 기세등등해져서 피해자 무고죄로 고소할 거라고 떠드는 성범죄 가해자들 많이 보셨을 텐데, 이건 정말 법을 몰라서 하는 이야기입니다. 성범죄는 무혐의, 무죄 옆에 꼭 따라오는 말이 있어요. 바로 ‘증거불충분’입니다. 말 그대로 증거가 부족했다는 뜻이지요. 실제로 성범죄 사건에서 수사기관의 결과통지서를 받아보면, 전부 ‘혐의없음(증거불충분)’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바꿔서 말하면, 증거만 있었어도 처벌했을 거라는 이야기예요. 사실 CCTV나 목격자만 있었으면 다 해결됐을 일입니다. 그런데 CCTV나 목격자 있는 사건이 몇이나 되겠어요. 성범죄는 더더욱 없습니다. 실제로 제가 피해자 변호사로서 패소하는 사건도 다 이런 맥락입니다. 결정적인 증거는 없지만 피해자 진술하고 간접증거들 가지고 가해자를 구석까지 몰고 갔는데, 결국 빈틈이 있으니까 빠져나가는 거예요. ‘CCTV만 있었어도‘라는 생각이 정말 매일 듭니다. ‘무혐의다 = 피해자가 거짓말을 했다 무고다’ 이거 아니라는 겁니다. 그냥 가해자가 운이 좋았을 뿐이에요. 증거가 없어서 범인을 놓친 겁니다. 참 웃긴 게, 누가 사기죄로 고소했는데 증거 없어서 무혐의 나왔다고 하면 법이 잘못됐네 어쨌네 하면서, 왜 성범죄는 증거 없어서 무혐의 나오면 갑자기 피해자를 욕하나요? 무혐의 나왔다고 사기 피해자를 무고죄로 처벌할 수 없는 것처럼, 성범죄 피해자를 무고죄로 처벌할 수 없는 것도 똑같은 겁니다. 그러니까 무혐의로 끝났다더라 하면, ‘뭔가 문제가 있었는데 확실한 증거가 있는 건 아니구나’ 이게 중립적인 입장입니다. ‘무혐의니까 피해자가 꽃뱀이네’ 이건 중립적인 게 아니고 그냥 편파적으로 피해자 욕하는 겁니다. "그럼 억울하게 고소당한 사람은요?" 반대로 물어볼게요. 아무 일도 없었는데 억울하게 고소당한 사람이 정말 있을까요? 나와 내 가족들, 친구들, 누구든 억울한 성범죄자가 될 수도 있다는 건 잘못된 생각입니다. 피해자들은 함부로 고소를 하지 않아요. 누군가를 처벌해달라고 경찰에 신고를 하고, 형사랑 검사 앞에서 조사를 받고, 법정에 출석해서 증언하는 건 누구에나 정말 무서운 일입니다. 누구 인생 망쳐보겠다고 장난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에요. 그깟 돈 몇 푼 준다고 할 수 있는 일도 아닙니다. 이런 걸 다 견디고 굳이 고소까지 하는 건, 피해자 본인이 너무 억울하기 때문입니다. 궁금하면 직접 가까운 법원에 가보세요. 법정에 들어가보면, 태연하게 거짓말 할 수 있는 곳이 아니구나 생각이 들 거예요. 성범죄로 고소를 당하는 사람은 그럴 만한 일이 있었던 사람인 겁니다. '그럴 사람이 아니야 내가 알아' 이거 아니라는 거예요. 적법하게, 건실하게 사는 대다수 사람들은 고소당할 일이 없습니다. 아무리 술에 취했어도 이런 실수는 안 합니다. 그리고 아무 근거도 없는 사건은 애초에 경찰이 받아주지도 않습니다. 경찰이 수사를 한다는 건, 가해자에게 조사해볼 만한 혐의가 있다는 뜻입니다. 물론 증거가 부족하면 무혐의가 나오겠지만요. 그러니까 누가 고소를 당했다가 무혐의가 나왔다고 하면, 가해자가 '운이 좋았네' 생각하면 됩니다. '꽃뱀한테 억울하게 당할 뻔했네 나도 조심해야지' 가 아니라요.
2023.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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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촬영 디지털성범죄] 몰카 압수수색 요청하는 방법
지하철 몰카나 화장실같은 공공장소 몰카는 가해자가 대부분 현행범으로 잡힙니다. 그럼 경찰이 가해자의 핸드폰을 곧바로 압수하기 때문에 유포도 막을 수 있고, 증거도 쉽게 확보됩니다. 걱정이 없습니다. 문제는 남자친구에 의한 연인 사이 몰카나, 친구나 직장동료같은 지인 사이 몰카입니다. 몰카 당시에는 피해자도 몰랐다가, 시간이 지나서 피해자가 가해자의 핸드폰을 보고 우연히 불법촬영물을 발견하기 때문에 피해자가 직접 증거수집을 해야 합니다. 실제로 제가 가장 많은 상담을 하는 디지털성범죄 사건도 남자친구 몰카입니다. 보통 남자친구의 핸드폰을 보다가 앨범, 클라우드, 메일에서 우연히 자신의 몰카를 발견합니다. 그럼 놀란 마음에 일단 삭제부터 하기 때문에 증거가 사라져버립니다. 대부분의 피해자들이 이 상태에서 저를 찾아옵니다. 클라우드에 내 나체사진이나 성관계 영상이 남아 있지 않을까, 가해자가 외장하드에 따로 저장하지 않았을까, 휴지통은 등등 온갖 생각이 듭니다. 혹시 유포하지는 않을까 공포에 떱니다. "피해자가 직접 압수수색을 요청해야 한다" 경찰에 신고만 하면 알아서 압수수색을 하고 디지털 포렌식과 클라우드 조사로 가해자의 핸드폰을 싹 털어줄 것 같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가 않습니다. 압수수색은 굉장히 귀찮은 절차입니다. 경찰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검찰에 요청해서 검사가 1차로 승인을 해줘야 하고, 그 다음에 법원으로 보내서 판사가 최종 결정을 내려줘야 압수수색 영장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영장이 나오면 집행이 문제입니다. 일단 경찰관들이 가해자의 집으로 찾아갑니다. 가해자가 없으면 집 앞에서 나타날 때까지 잠복을 하면서 기다려야 합니다. 게다가 압수수색은 아주 강압적인 절차이기 때문에 사고도 많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피해자가 요청하지 않으면 압수수색을 하지 않습니다. 그럼 어떻게 하느냐, 가해자에게 전화해서 자발적으로 출석하라고 한 다음에 자발적으로 핸드폰을 제출하라고 합니다. 이걸 임의제출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가해자들은 바보가 아닙니다. 요즘 가해자들은 경찰서에서 전화를 받으면 일단 변호사부터 찾아갑니다. 가해자 변호사들이 제일 많이 해주는 조언은 증거인멸입니다. 핸드폰을 바꿨다고 하면 아주 쉽게 빠져나갈 수 있습니다. 따라서 몰카 고소를 할 때는 가해자가 증거인멸을 하지 못하도록 무조건 압수수색을 요청해야 합니다. 요즘 법원은 가해자가 몰카를 인정한 대화 증거만 있어도 압수수색을 허가해주기 때문에 정말 최소한의 증거로도 요청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수사관님이 배정되자마자 일단 전화부터 해서 압수수색을 미리 요청해야 합니다. "압수수색은 기밀 유지가 핵심" 압수수색은 가해자 몰래 집으로 들이닥쳐야 의미가 있습니다. 너 고소당했다고 알려주고 한참 있다가 집으로 찾아가면, 가해자는 이미 깔끔하게 증거인멸을 끝내놓고 기다립니다. 그러니까 가해자에게는 고소를 할 것 같은 느낌도 주면 안 됩니다. 너무 기본적인 이야기인데, 경찰이 이런 기본도 지키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미리 영장 다 준비해서 가해자 소재 파악도 해놓고 집행할 날짜까지 잡았는데, 수사관님이 저번에 가해자에게 전화해서 너 고소당했으니까 언제까지 조사 출석하라고 이야기를 했었다는 것입니다. 제가 실제로 경험했던 너무 황당한 사건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압수수색을 갔을 때 가해자는 핸드폰을 잃어버렸다고 주장했고, 결국 아무 것도 건지지 못했습니다. 결국 피해자가 직접 감독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수사관님께 전화해서 일일이 확인하고 여러 번 부탁드리고, 잔소리도 좀 해야 합니다. 그래야 혹시 모를 실수를 방지할 수 있습니다. 정리하면, 몰카 고소를 할 때는 압수수색이 핵심이니까 수사관이 배정되자마자 일단 요청을 하고 기밀유지가 되는지를 본인이 직접 체크해야 합니다.
2023.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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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벌탄원서 변호사의견서] 성범죄 재판, 가해자 세게 처벌하는 방법
"가해자가 최대한 높은 형량을 받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피해자 변호사로서 제일 많이 듣는 질문입니다. 가해자가 단 1개월이라도 높은 형량을 받게 하는 것, 즉 엄벌은 피해자의 제일 큰 관심사입니다. 막상 인터넷을 찾아보면, 아무도 속 시원하게 방법을 이야기해주지 않습니다. 엄벌탄원서를 내면 된다는 뻔한 이야기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정말 엄벌탄원서 하나 내면 판사가 엄벌을 해줄까요? 피해자가 적극적이어야 형량도 높아진다 피해자 변호사로서 수많은 성범죄 재판을 보고 확신을 갖게 된 사실 하나는, 피해자가 자신의 간절함을 법원에 얼마나 잘 어필하느냐에 따라서 가해자가 받는 형량이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성범죄 피해자에게 자꾸 가만히 있으라고 합니다. 경찰은 알아서 수사하겠다, 검찰은 알아서 처벌하겠다, 법원은 알아서 재판하겠다면서 피해자는 가만히 있으라 합니다. 그럼 진짜 가만히 있으면 어떻게 될까요. 가해자에게 감형을 해줍니다. 가만히 있으라 해놓고, 정말로 가만히 있으면 피해자가 괜찮아서 가만히 있는 줄 압니다. 반면에 가해자는 큰 돈 써서 변호사를 선임하고, 재판에 가서 울고불고 자기 인생이 불쌍하다고 하소연을 해대니까 판사는 정말로 가해자가 불쌍한 줄 압니다. 이게 법의 속성입니다. 법은 적극적으로 어필하는 사람에게만 혜택을 줍니다. 법은 가만히 있는 피해자를 보호해주지 않습니다. 재판에서 사사건건 싸워야 한다 그럼 피해자가 뭘 해야 할까요. 정답은 사사건건 가해자와 싸우고, 반성하고 있다는 가해자의 거짓말을 일일이 반박해주는 것입니다. 그래야 판사를 설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불쌍한 사람은 죄를 짓고 처벌받는 가해자가 아니라, 무고한 피해자인 나라는 사실을 판사에게 어필해야 합니다. 이 당연한 사실도 피해자가 직접 말하지 않으면 법원은 알아주지 않습니다. 가해자의 범행 때문에 내가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지금은 또 얼마나 힘들게 버티고 있는지 하나하나 법원에 알려야 합니다. 피해자가 이 재판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야 판사도 가해자에게 부당한 감형을 해주지 못합니다. 가해자의 거짓말을 밝혀내야 한다 가해자들은 항상 감형을 요구합니다. 심지어 무죄를 주장하면서도, 혹시 유죄가 나오면 감형을 해달라고 요구합니다. 정말 어이가 없는 말인데, 이 어이 없는 요구를 법원은 또 들어줍니다. 우리나라 법은 성범죄 가해자들에게 어떻게든 감형을 해주려고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직접 재판에 가서 가해자 변호사의 변론을 듣거나 가해자 변호사의 의견서를 열람해보면 정말 가관입니다. 그럴 생각이 아니었는데 우발적이었다, 술에 취해서 실수했다, 피해자가 먼저 여지를 줬다, 피해자가 동의한 줄 알았다, 피해자가 지나치게 높은 합의금을 요구해서 합의를 못 했다 등등 온갖 거짓말로 피해자를 괴롭힙니다. 이걸 내버려두면 판사는 가해자의 말에 속아서 감형을 해줄 수밖에 없습니다. 판사가 가해자의 말에 속지 않게 하려면, 가해자의 주장이 왜 거짓인지를 피해자가 직접 설명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정리하면, 엄벌탄원서를 내든 피해자 변호사 의견서를 내든, 아니면 피해자가 직접 재판에 출석하든 중요한 것은 내가 얼마나 힘든지를 적극적으로 어필하고, 가해자의 거짓말을 열심히 반박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판사를 설득할 수 있고, 그래야 가해자에게 최대한 높은 형량이 내려진다는 점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2023.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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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거 불충분 무혐의] 불송치 이의신청, 그냥 하면 또 불기소입니다
불송치 결정을 받고 찾아오시는 피해자분들이 최근에 부쩍 늘었습니다. 경찰의 불송치가 생긴 지 시간이 꽤 많이 지나기도 했고, 그만큼 피해자분들의 경험담이 많이 공유되면서 경각심을 느끼고 변호사를 찾는 분들도 많아졌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상담을 해보면 불송치 이의신청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가장 많은 사례는 이의신청을 하면 사건을 검찰로 보내고 검사가 수사를 다시 하니까, 경찰보다 검찰이 수사를 제대로 해서 결과가 바뀔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입니다. "경찰과 검찰은 같은 편" 그런데 이건 너무 순진한 생각입니다. 사실 검찰은 경찰의 불송치 결정을 대부분 그대로 인정해주고 다시 불기소 처분을 해버리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경찰 수사관이 피해자 이야기도 안 들어주고 증거가 없다는 말만 하면서 수사를 대충 했어도, 증거 불충분 무혐의라고 판단하고 불송치 결정을 할 때는 나름의 이유가 있습니다. 그런데도 검사가 경찰의 결정을 뒤집고 기소처분을 하려면, 유죄인 이유를 자세히 쓰고 경찰의 불송치 이유를 일일이 반박해야 하기 때문에 일이 정말 번거롭습니다. 반면에 불기소를 유지할 때는 경찰이 증거 불충분 무혐의라고 판단한 이유만 그대로 쓰면 되기 때문에 일이 훨씬 쉽습니다. 검사 입장에서는 경찰이 불송치를 했으면 본인도 불기소를 하는 것이 편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이의신청을 하면 수사기관이 경찰에서 검찰로 바뀐다는 것은 눈속임일 뿐이고, 사실 경찰과 검찰은 같은 편입니다. "불송치 이의신청은 변호사도 어려운 일" 인터넷을 찾아봐도 경찰 불송치를 검찰 기소 처분으로 뒤집었다는 사례는 정말 드뭅니다. 변호사들이 광고하기를 그렇게 좋아하는데, 이런 승소사례가 별로 없는 데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실제로 심앤이에서 불송치를 기소 처분으로 뒤집은 사건들을 생각해보면, 담당 변호사님들의 정말 많은 노력과 시간이 들어갔습니다. 쉬운 사건이 단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불송치 결정을 받았다면 이미 사건이 많이 불리해진 것이기 때문에 이의신청을 해서 뒤집으려면 준비를 정말 잘 해야 합니다. 변호사도 없이 피해자 혼자서 나름대로 이유를 써가지고 이의신청을 해봤자, 결과가 바뀔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거의 없습니다. "검사를 법으로 설득해야 한다" 이의신청의 기본은 검사를 설득하는 것입니다. 경찰이 어떤 증거를 놓쳤는지, 법적인 논리가 왜 틀렸는지 등 검사가 보기에도 경찰 수사가 심하게 잘못 되었다는 생각이 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검사가 재수사를 하고, 보완수사도 지시해서 결론을 다시 냅니다. 설득은 법으로 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불송치 결정을 받았을 때 제일 먼저 할 일은 통지서를 가지고 피해자 전문 변호사에게 상담을 받는 것입니다. 변호사와 함께 경찰이 법적으로 무엇을 잘못했는지부터 찾고, 법적으로 설득력 있게 이의신청서를 준비해야 합니다. 아무리 내가 억울하다고 구구절절 이의신청서를 써봤자, 검사는 봐주지 않는다는 것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2023.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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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신고] 성범죄 피해자인데, 신고는 너무 힘들 것 같아요
피해자의 입장에서 신고를 망설이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앞으로의 과정이 겁나기 때문이다. 일단 오랜 시간 경찰서와 법원에 불려다녀야 할 것 같고, 역으로 내가 불이익을 받을까봐 걱정도 된다. 성범죄는 지인이 가해자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관련된 다른 사람들하고의 관계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직장 내 성범죄면 커리어를 걸어야 한다. '내가 한 번 참으면 없는 일인데'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그래서 피해자들이 가장 많이 듣는 조언은 참고 넘어가라는 것이다. 실제로 각종 성폭력 상담기관에서 이런 조언을 해주는 경우가 많다. 신고를 하고나면 지금보다 힘든 일이 많이 기다리고 있는데, 그냥 참고 넘어가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식이다. 심지어 고소절차가 얼마나 힘든지 피해자에게 겁을 줘서 신고를 막기도 한다. "힘든 것은 피해자 본인도 안다" 그런데, 피해자들이 앞으로 힘들 것을 몰라서 고민하는 것이 아니다. 피해자 본인이야말로 그냥 잊어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그게 안 되니까 전문가를 찾는 것이다. 아무리 잊으려고 해도 불쑥불쑥 그날의 기억이 떠오르고, 길에서 가해자와 닮은 사람만 봐도 심장이 내려앉고, 불면증에 시달린다. 나는 이렇게 고통스럽게 살고 있는데, 가해자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복한 것이 용납되지 않는다. 절박한 마음으로 전문가를 찾아오는 피해자에게 잊는 것도 방법이라고 조언하는 것은 전문가로서 무책임한 일이다. 이 정도 조언은 가족이나 주변 친구들도 해줄 수 있다. 전문가는 피해자에게 예상되는 법적 절차를 정확하게 알려주고, 피해자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증거가 없어서 불리하다는 막연한 이야기만 할 것이 아니다. 보충할 수 있는 간접증거는 어떻게 확보할 수 있는지, 어떤 부분을 어필하면 승소 가능성을 최대한 높일 수 있는지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해야 한다. 이게 진정한 전문가의 일이다. "피해자는 약하지 않다" 사람들은 성폭력 피해자라고 하면 무기력하게 실의에 빠진 연약한 사람을 떠올린다. 그러나 내가 만나 온 실제 피해자들은 그렇게 약하지 않다. 오히려 모든 불이익을 감수하고서도 고소를 고민할 만큼 용감한 사람들이었다. 피해자에게 필요한 것은 정확한 정보다. 내 사건의 승소 가능성은 얼마나 되는지, 법적으로 어떤 부분이 문제인지, 그리고 정확히 어떤 절차가 진행되고 구체적으로 무엇이 힘든지 알아야 한다. 그래야 내가 고소를 할지, 아니면 포기하고 다른 방법을 찾을지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좋은 피해자 변호사는 사건을 최대한 정확하게 분석해주고, 절차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는 변호사다. 법적인 절차가 힘든 것은 맞다. 참고 넘어가는 것보다는 당연히 힘들 수밖에 없다. 그러나 법적인 절차를 잘 이해하고, 철저히 준비해서 시작하면 충분히 견뎌낼 만한 일이다. "고소 자체가 마음의 위로를 받는 방법이다" 내가 힘든 만큼 가해자도 똑같이 힘들다. 가해자의 입장에서는 패소하면 형사처벌을 받고 성범죄자가 되는 일이다. 당연히 무섭고, 돈을 써서 변호사도 선임해야 한다. 어떻게 보면 형사고소는 피해자가 자신의 고통을 가해자에게 조금이라도 돌려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법적인 절차를 통해 본인이 마음의 위로를 받는 경우도 많다. 치열한 싸움 끝에 결국 패소를 하더라도 어쨌든 참지 않고 강경하게 대응을 해봤다는 것, 끝까지 최선을 다했다는 것, 그리고 끝을 봤다는 것이 마음에 위로가 되는 것 같다. 무혐의가 나오거나 무죄가 나와서 패소했을 때 변호사로서 의뢰인에게 결과를 이야기할 때면 마음이 너무 아픈데, 의뢰인이 변호사인 나보다도 결과를 더 의연하게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고소하지 말걸 그랬다고 후회하는 분들은 의외로 드물다. 끝까지 싸워볼 수 있어서 후련했다, 변호사님과 함께여서 버틸수 있었다면서 오히려 내가 위로를 받고 앞으로 또 다른 피해자들과 함께 싸워나갈 힘을 얻기도 한다.
2023.0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