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서 민원실에서 "고소로 접수하실 건가요, 진정으로 넣어 드릴까요"라는 질문을 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두 단어가 비슷하게 들려서 창구에서 권하는 쪽으로 답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이 한 번의 선택으로 앞으로 받게 될 통지와,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 다툴 수 있는 절차가 갈립니다.
성범죄 사건에서 이 차이는 유난히 크게 벌어집니다. 물증 없이 진술로 다투는 사건이 많아 첫 판단이 그대로 확정되지 않는 일이 드물지 않은데, 그 판단을 다시 받아볼 절차가 접수 형식에 따라 붙기도 하고 붙지 않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같은 피해 사실을 같은 경찰서에 냈어도 진정으로만 접수돼 사건화되지 않은 채 내사 종결로 끝나면, 통지도 불복도 따라오지 않습니다.
이 글은 고소·고발·신고·진정 네 가지를 표로 나눠 비교하고, 고소인이 되면 생기는 권리를 조문별로 일곱 가지 정리했습니다. 변호사에게 고소를 맡길 때 쓰는 위임장에 어떤 항목이 들어가는지도 예문과 함께 적었습니다.
고소·고발·신고·진정, 무엇이 다른가
네 용어를 가르는 기준은 두 개뿐입니다. 누가 낼 수 있는가, 그리고 결과에 불복할 수 있는가입니다. 이 두 칸만 채워 보면 네 가지의 자리가 정리됩니다.
| 구분 | 낼 수 있는 사람 | 결과 통지 | 불송치·불기소 불복 |
|---|---|---|---|
| 고소 | 피해자 본인, 법정대리인 | 서면으로 받음 | 이의신청·항고·재정신청 |
| 고발 | 피해자가 아닌 제3자 | 서면으로 받음 | 이의신청은 제외, 항고는 가능 |
| 신고 | 누구나 | 통지 규정 없음 | 접수 형식만으로는 없음 |
| 진정 | 누구나 | 처리 결과만 알려 주는 정도 | 접수 형식만으로는 없음 |
아래 두 줄에는 단서가 하나 붙습니다. 신고나 진정에서 출발했더라도 사건이 정식으로 입건되고 피해자 본인이 불송치 통지를 받으면, 접수 형식과 무관하게 통지·이의신청 조문이 적용됩니다. 다만 그 단계까지 갈지는 수사기관이 정하는 일이라, 표의 아래 두 칸은 '보장되지 않는다'는 뜻으로 읽으시면 됩니다.
신고는 범죄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리는 행위입니다. 112 신고나 해바라기센터를 통한 신고가 여기에 해당합니다. 수사가 시작되는 계기는 되지만, 신고했다는 사실만으로 고소인이 되지는 않습니다. 신고 후에 별도로 고소장을 접수하거나 조사 과정에서 처벌 의사를 밝혀 고소로 정리하는 절차가 필요합니다.
진정은 조사해 달라는 요청입니다. 수사기관이 내부적으로 살펴본 뒤 사건화하지 않고 끝낼 수 있고, 이때 피해자에게 남는 것은 사실상 없습니다. 고용노동부나 국가인권위원회에 내는 진정은 성격이 또 다릅니다. 그쪽은 행정 절차라서 형사 처벌과는 별개로 굴러가고, 형사 고소를 하지 않은 상태라면 가해자는 형사적으로 아무 판단도 받지 않습니다.
고소인이 되면 생기는 권리 일곱 가지
고소인의 권리는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형사소송법에 조문으로 흩어져 있습니다. 아래 일곱 개가 실제로 손에 잡히는 항목입니다.
| 조문 | 내용 | 고소인이 갖는 것 | 고발인의 경우 |
|---|---|---|---|
| 제223조 | 고소권자 | 피해자 본인의 고소 자격 | 해당 없음 |
| 제225조 | 비피해자인 고소권자 | 법정대리인의 독립 고소 | 해당 없음 |
| 제236조 | 대리고소 | 변호사에게 고소를 맡길 수 있음 | 해당 없음(고소·취소만 규정) |
| 제245조의6 | 송부통지 | 불송치 취지와 이유를 서면으로 | 통지 대상에 포함 |
| 제245조의7 제1항 | 이의신청 | 통지받으면 이의신청 가능 | 명문으로 제외, 예외 없음 |
| 제258조 | 처분 고지 | 기소·불기소 처분을 통지받음 | 통지 대상에 포함 |
| 제259조 | 불기소 이유 고지 | 청구하면 이유를 서면으로 받음 | 청구 가능 |
일곱 개는 성격이 셋으로 갈립니다. 알 권리는 제245조의6·제258조·제259조 셋으로, 사건이 어떻게 끝났고 왜 그렇게 끝났는지 서면으로 받는 것입니다. 다툴 권리는 표 안에서는 제245조의7 하나뿐이고, 그 뒤로 이어지는 항고와 재정신청은 형사소송법의 이 일곱 조문이 아니라 별도의 근거 규정에서 나옵니다. 나머지 제223조·제225조·제236조는 통지도 불복도 아니고, 누가 고소할 수 있고 누구에게 맡길 수 있는지를 정한 자격·대리 조문입니다.
이 구분을 알아 두면 서면을 쓸 때 헷갈리지 않습니다. 통지가 오지 않을 때 근거로 드는 조문과, 결론을 뒤집으려고 낼 때 근거로 드는 조문이 서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의신청서는 제245조의7, 이유서 청구는 제259조를 적으면 되고, 대리인이 낼 때는 제236조에 따른 위임장이 함께 붙습니다.
특히 제259조는 잘 쓰이지 않는데 실무에서는 유용합니다. 불기소 통지서에는 결론만 적혀 오는 경우가 많고, 이유서를 따로 청구해야 왜 그런 판단이 나왔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유서 없이 쓰는 불복 서면은 무엇을 반박해야 할지 모르는 채 쓰는 글이 됩니다. 수사기록과 본인 진술조서는 정보공개 포털을 통해 별도로 청구해 두시면, 나중에 진술을 되짚을 때 기억이 아니라 기록을 근거로 말할 수 있습니다. 수사 각 단계에서 피해자가 실제로 쓸 수 있는 카드는 수사절차(경찰·검찰)에 흐름별로 정리돼 있습니다.
한 가지 시점 문제가 있습니다. 2026년 10월 2일 시행되는 개정 형사소송법으로 불송치 이의신청에 통지받은 날부터 3개월이라는 기한이 새로 생기므로, 기한이 없던 때처럼 미뤄 두면 안 됩니다. 개정 내용 전체는 개정 내용 정리에서 따로 다뤘습니다.
고발이나 진정으로 접수하면 어디서 막히나요?
가장 크게 막히는 지점은 경찰이 불송치 결정을 했을 때입니다. 형사소송법 제245조의7 제1항은 이의신청을 할 수 있는 사람에서 고발인을 명문으로 빼 두었고, 죄명에 따른 예외를 두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지인이나 단체가 대신 고발해 준 사건은, 무혐의로 끝나도 그 결정을 경찰서에서 다툴 방법이 없습니다. 검찰 단계로 넘어가 불기소가 된 경우의 항고는 고발인도 할 수 있지만, 경찰이 자체 종결한 사건은 검찰로 올라가지도 않습니다.
재정신청 단계에서도 차이가 납니다. 고소를 한 사람은 항고가 기각되면 재정신청으로 법원의 판단을 구할 수 있지만, 고발인은 직권남용 등 법이 정한 일부 죄에 한해서만 가능합니다. 성범죄는 그 예외에 들어가지 않으므로, 고발로 시작된 성범죄 사건은 마지막 문이 닫혀 있는 셈입니다. 불송치와 불기소를 각각 어떤 절차로 다투는지는 불송치·불기소 대응에 단계별로 정리돼 있습니다.
진정은 한 단계 더 앞에서 막힐 수 있습니다. 사건으로 입건되지 않고 내사 종결이라는 형태로 끝나면 송부통지도, 이유서도, 불복 절차도 따라붙지 않습니다. 진정인에게 처리 결과를 알려 주는 정도로 끝나고, 그 통보에는 다툴 창구가 붙어 있지 않습니다.
반대로 진정에서 출발했더라도 사건이 입건되어 피해자 본인이 불송치 통지를 받았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제245조의6의 통지 대상에는 고소인·고발인만이 아니라 피해자와 그 법정대리인도 들어 있고, 제245조의7은 그 통지를 받은 사람 중에서 고발인만 빼기 때문입니다. 즉 고소장을 내지 않았더라도 통지를 받은 피해자라면 이의신청을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그 갈림길이 수사기관의 판단에 달려 있다는 점입니다. 입건될지 내사로 끝날지, 통지 대상에 본인이 잡힐지를 피해자가 정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처벌을 원하는 사건이라면 그 판단에 기대지 말고 처음부터 고소로 접수해 자리를 확정해 두는 편이 안전합니다.
고소장은 어디에 내고, 무엇을 적나요?
고소는 서면이나 구술로 검사 또는 사법경찰관에게 하는 것이어서 조문상으로는 검찰 접수도 가능하지만, 실무에서는 대부분 경찰서에 냅니다. 성범죄는 여성청소년수사팀이 배정됩니다. 주소지 관할이 아니어도 접수 자체는 되지만, 사건 발생지나 거주지 관할 경찰서로 가면 이송 절차 없이 바로 진행됩니다.
고소장에 정해진 양식은 없습니다. 다만 아래 항목이 빠지면 보정을 요구받거나 범죄사실이 특정되지 않아 조사가 늦어집니다.
1. 고소인 표시 — 성명, 생년월일, 주소, 연락처
2. 피고소인 표시 — 아는 범위까지. 이름을 모르면 인상착의, 연락처, 계정 아이디, 최종 목격 장소를 적습니다
3. 죄명 — 확신이 없으면 비워 두어도 됩니다. 죄명은 수사기관이 정하고, 나중에 의견서로 바로잡을 수 있습니다
4. 범죄사실 — 일시, 장소, 행위를 한 문장씩 끊어 사실만 적습니다
5. 고소 취지 — 처벌을 원한다는 의사를 한 줄로 명시합니다
6. 증거 목록 — 대화 캡처, 진단서, 진료 내역, 목격자 인적사항을 번호를 붙여 나열합니다
7. 관련 절차 — 노동부 진정이나 학교 절차를 함께 진행 중이라면 적어 둡니다
범죄사실은 감정을 덜어 내고 장면만 남기는 것이 요령입니다.
쓸 문장: “피고소인은 2025년 ○월 ○일 23시경 서울 ○○구 ○○로에 있는 ○○모텔 ○○호실에서, 고소인의 양 손목을 붙잡아 움직이지 못하게 한 뒤 고소인의 신체를 만졌습니다.”
피할 문장: “그 사람은 짐승 같았고 저는 아직도 그날이 떠오릅니다.” — 피해의 크기는 진술조서와 의견서에서 다루면 되고, 고소장의 범죄사실 칸은 행위를 특정하는 자리입니다.
성폭력범죄는 친고죄 규정이 폐지되어 고소 기간의 제한을 받지 않습니다. 몇 년 전 일이라 늦었다고 생각해 접수를 미루실 필요는 없고, 공소시효 안에 있다면 고소할 수 있습니다. 오래 지난 사건의 시효를 계산하고 남은 자료를 모으는 방법은 시간이 많이 지난 경우에 정리돼 있습니다.
고소 대리 위임장에 넣을 항목과 예문
고소는 대리인이 할 수 있습니다(형사소송법 제236조). 가해자와 마주치는 것이 두렵거나 회사에 알려지는 것이 걱정되는 경우, 접수와 연락 창구를 대리인에게 넘기는 방법이 실제로 많이 쓰입니다. 이때 필요한 서류가 고소 위임장입니다.
위임장에 들어가는 항목은 다음과 같습니다.
- 위임인(고소인) — 성명, 생년월일 또는 주민등록번호, 주소, 연락처
- 수임인(대리인) — 법무법인 명칭과 주소, 담당변호사 성명
- 사건 표시 — "피고소인 ○○○에 대한 성폭력범죄 고소 사건"처럼 특정합니다
- 위임 사항 — 아래 예문처럼 항목을 나눠 적습니다
- 작성 연월일
- 위임인의 서명 또는 날인
- 첨부 — 신분증 사본. 인감도장을 쓰는 경우에는 인감증명서
위임 사항은 "일체의 권한"처럼 뭉뚱그리지 말고 항목으로 끊어 적는 편이 낫습니다. 수사기관에서 권한 범위를 두고 되묻는 일이 줄어듭니다.
위임 사항
- 위 사건 고소장의 작성 및 제출
- 수사기관에서의 의견서 제출 및 자료 제출
- 수사기록의 열람·등사 신청 및 정보공개청구
- 불송치 결정에 대한 이의신청 및 불기소처분에 대한 항고의 제기
- 위 각 항에 부수하는 서류의 수령
※ 고소 취소에 관한 권한은 위임하지 아니함
위임장과 고소인 지위에서 놓치기 쉬운 지점
첫째, 고소 취소 권한을 아무 생각 없이 넣는 것입니다. 고소의 취소도 대리로 할 수 있기 때문에, 위임 범위를 넓게 써 두면 취소까지 포함된 것으로 읽힐 수 있습니다. 취소는 본인이 직접 판단해야 하는 사항이므로 위임하지 않는다고 명시해 두시는 편이 안전합니다.
둘째, 신고만 하고 고소로 정리하지 않는 것입니다. 신고 접수 후 조사에서 처벌 의사를 명확히 밝히지 않으면 사건이 고소인 없는 상태로 흘러갈 수 있습니다. 조사 때 처벌을 원한다는 진술이 조서에 남았는지 확인하시고, 남지 않았다면 고소장을 따로 내시면 됩니다.
셋째, 연락처를 바꾸고 알리지 않는 것입니다. 고소인의 권리는 대부분 '통지받는 것'에서 출발하는데, 송달이 되지 않으면 이의신청 기한이 흘러가 버립니다. 10월 2일 이후에는 이의신청에 3개월 기한이 생기므로 더 중요해집니다.
넷째, 가족 명의로만 접수하는 것입니다. 성인 피해자의 경우 가족은 고소권자가 아니라 고발인이 되기 쉽습니다. 피해자 본인은 불송치 통지를 받으면 이의신청을 할 수 있지만, 고발인 명의로만 접수돼 서류에 본인이 드러나지 않으면 통지가 가족에게만 가고 정작 본인은 기한이 흘러가는 줄도 모르는 상태가 됩니다. 게다가 고발인 명의로 낸 이의신청은 제245조의7에서 명문으로 제외되므로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본인 명의로 접수하되 접수와 서면 작성만 대리인에게 맡기는 방식이 맞습니다.
고소인 지위가 결과를 바꾼 사건 두 건
첫째, 직장 상사의 성적 발언과 모욕을 견디다 퇴사한 뒤, 경찰에 형사 고소를 하면서 고용노동부에도 진정을 낸 사건입니다. 가해자가 혐의를 부인하자 2차 조사를 요청해 진술 기회를 한 번 더 확보했고, 그 사이 노동부에서 직장 내 성희롱과 괴롭힘이 인정되어 가해자가 직위해제된 사실을 조사 단계에서 제시했습니다. 결과는 기소 의견 송치였습니다(사건 보기). 이 사건이 보여 주는 것은 진정과 고소가 서로를 대신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행정 절차인 진정에서 인정을 받아도 형사 처벌은 별개이고, 반대로 진정의 인정 결과는 형사 사건에서 유력한 정황이 됩니다. 두 절차를 함께 쓰는 방법은 직장 내 성희롱·성추행에서 더 볼 수 있습니다.
둘째, 번호를 주고받아 알게 된 남성과 합석해 과음한 뒤 모텔에서 강제추행을 당한 사건입니다. 경찰에서 송치 결정이 나오자마자 담당 검사실에 구공판 의견서를 낼 것이라고 알리고, 엄벌탄원서와 함께 제출해 약식 처분을 선제적으로 막았습니다. 약식기소로 벌금에 그칠 수 있었던 사건이 불구속 구공판, 곧 정식 기소 처분을 받았습니다(사건 보기). 여기서 관건은 송치 결정을 확인하자마자 처분이 내려지기 전에 움직였다는 점입니다. 처분이 나온 뒤에 내는 서면과, 검사가 구공판이냐 약식이냐를 고르는 중에 들어가는 서면은 무게가 다릅니다. 고소인 지위가 힘을 발휘하는 국면은 그 뒤에 옵니다. 만약 검사가 불기소로 끝냈다면 제258조에 따라 처분을 고지받고 제259조로 이유서를 청구해, 무엇을 반박할지 알고 항고 서면을 쓸 수 있었을 것입니다.
진정으로 접수한 사건을 고소로 바꿀 수 있나요?
바꿀 수 있습니다. 진정으로 접수된 사건이라도 피해자가 고소장을 별도로 제출하면 그때부터 고소 사건으로 처리됩니다. 이미 내사가 종결된 뒤라도 공소시효가 남아 있다면 고소는 가능합니다. 담당 부서에 진정 사건번호를 알려 주고 같은 사실관계에 대한 고소장이라는 점을 밝히면 기존 자료를 함께 검토합니다.
다만 시간이 지날수록 불리해지는 것은 사실입니다. 대화 기록이나 폐쇄회로 영상처럼 보존 기간이 짧은 자료는 그사이 사라지고, 진정 단계에서 간단히 한 진술과 나중의 진술이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그 차이가 쟁점이 됩니다. 진정으로 접수해 두었다면 그때 무엇을 말했는지부터 확인한 뒤 고소장을 쓰시는 것이 순서입니다.
처벌을 원하는 마음이 분명하다면, 처음부터 고소로 접수하는 편이 언제나 낫습니다. 형식 하나 때문에 뒤집을 기회를 잃는 일은 생각보다 자주 일어납니다.
자주 묻는 질문
관련 실제 사례
심앤이가 실제로 대리한, 이 주제의 사건 기록이에요. 결과는 사건마다 달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