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자에게 변호인이 붙는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반면 피해자도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 변호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가 법률에 조문으로 적혀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피해자 측 변호사는 결국 탄원서를 대신 써 주는 사람 아니냐"는 오해가 자주 생깁니다. 실제로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27조가 조사 참여, 법정 출석과 의견 진술, 기록 열람·등사, 포괄적 대리권까지 피해자 변호사의 권한을 여섯 개 항으로 적어 두고 있습니다.
권한이 관행이 아니라 조문에 있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조문에 있는 권한은 요청하면 되는 것이고,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근거를 물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래에서는 제27조가 정한 권한 여섯 가지와, 피해자 본인이 단계마다 행사할 수 있는 권리 열 가지를 근거 조문·행사 시점과 함께 표로 정리했습니다. 외울 필요는 없고, 지금 내가 서 있는 단계의 줄만 찾아 읽으시면 됩니다.
성폭력처벌법 제27조, 피해자 변호사의 권한 여섯 가지
제27조의 제목은 '변호사 선임의 특례'입니다. 특례라는 말이 붙은 이유는, 형사절차의 당사자가 아닌 피해자에게 예외적으로 대리인을 붙일 수 있도록 열어 둔 조항이기 때문입니다. 여섯 개 항이 각각 다른 국면을 담당합니다.
| 조항 | 권한 | 실제로 하는 일 | 작동하는 단계 |
|---|---|---|---|
| 제27조 제1항 | 변호사 선임 | 피해자·법정대리인이 직접 선임 | 고소 전부터 |
| 제27조 제2항 | 조사 참여·의견 진술 | 경찰 조사에 입회 | 수사 |
| 제27조 제3항 | 법정 출석·의견 진술 | 구속 전 피의자심문·증거보전·공판준비·공판 출석 | 수사·재판 |
| 제27조 제4항 | 기록 열람·등사 | 증거보전 후·소송 계속 중 서류 복사 | 증거보전 후·기소 이후 |
| 제27조 제5항 | 포괄적 대리권 | 대리가 허용되는 소송행위 전부 | 전 단계 |
| 제27조 제6항 | 국선변호사 선정 | 변호사가 없을 때 검사가 선정 | 전 단계 |
표에서 세 줄은 설명이 조금 더 필요합니다. 제2항의 조사 입회는 조문 문언상 검사의 조사도 포함하지만, 2026년 10월 2일 이후에는 검사가 피해자를 따로 불러 조사하지 않게 되어 실제로는 경찰 조사에만 남습니다. 제3항의 구속 전 피의자심문과 증거보전절차는 기소 전에 열리는 절차여서, 재판이 시작되기 전에도 변호사가 법정에 서는 국면이 여기서 생깁니다. 제4항의 열람·등사도 마찬가지로 증거보전이 끝난 뒤의 서류와 증거물을 함께 대상으로 삼습니다.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27조 제5항
“제1항에 따른 변호사는 형사절차에서 피해자등의 대리가 허용될 수 있는 모든 소송행위에 대한 포괄적인 대리권을 가진다.”
다섯 번째 항이 실무에서 가장 넓게 쓰입니다. 열람·등사 신청, 의견서 제출, 각종 신청서 접수처럼 원래 피해자 본인이 밟아야 할 절차를 변호사가 대신 밟는 근거가 여기서 나옵니다. 권한의 범위를 다투게 되면 결국 이 항으로 돌아옵니다.
피해자 권리 10가지, 근거 조문과 행사 시점
변호사를 선임하지 않은 피해자도 아래 권리는 그대로 가집니다. 다만 대부분 신청해야 생기고, 기한이 지나면 사라집니다. 그래서 통지서를 받은 날짜를 달력에 적어 두는 일이 실제로는 가장 중요한 준비입니다.
| 권리 | 근거 조문 | 행사 시점 | 행사 방법 |
|---|---|---|---|
| 내 진술조서 확보 | 정보공개법 | 조사 직후 | 정보공개 포털로 청구 |
| 신뢰관계인 동석 | 성폭력처벌법 제34조(증인신문은 형사소송법 제163조의2) | 조사·증인신문 | 미리 신청 |
| 신원·사생활 비밀 보호 | 성폭력처벌법 제24조 | 전 단계 | 가명조서 요청 |
| 불송치 이유 통지 | 형사소송법 제245조의6 | 기록 송부일부터 7일 이내 | 서면으로 수령 |
| 불송치 이의신청 | 형사소송법 제245조의7 | 통지받은 날부터 3개월 | 경찰서에 서면 접수 |
| 불기소 이유 고지 | 형사소송법 제259조 | 불기소 처분 후 | 청구하면 서면 설명 |
| 항고(고소인) | 공소청법 제57조 | 통지받은 날부터 30일 | 지방공소청·지청 거쳐 광역공소청장에게 |
| 재정신청(고소인) | 형사소송법 제260조 | 항고 기각 후 10일 | 법원의 판단을 구함 |
| 재판절차진술권 | 형사소송법 제294조의2 | 공판 단계 | 신청해 법정에서 진술 |
| 공판기록 열람·등사 | 형사소송법 제294조의4 | 기소 이후 | 재판장의 허가를 받음 |
여기에 범죄피해자 보호법이 형사절차 참여와 정보 제공(제8조의2), 사생활의 평온과 신변의 보호(제9조)를 따로 정하고 있습니다. 사건이 지금 어느 단계에 있는지 알려 달라고 요구할 근거도 이 법에서 나옵니다.
수사 단계에서 가장 먼저 행사할 권리
수사 단계에서 피해자가 쓸 권리는 세 가지로 압축됩니다. 조사에 변호사를 입회시키는 것(제27조 제2항), 조사가 끝난 뒤 내 진술조서를 받아 두는 것, 그리고 결정적 증거가 가해자 쪽에 있을 때 압수수색을 요청하는 것입니다.
진술조서는 본인이 따로 써서 낸 진술서와 다릅니다. 수사기관이 문답 형식으로 남긴 서류가 조서이고, 나중에 증거로 쓰이는 것도 이 조서입니다. 2차 조사나 증인신문은 한참 뒤에 잡히기 때문에 그때 기억에 의존해 말하면 표현이 달라지고, 상대 측은 그 차이를 진술 번복이라고 공격합니다. 조사 직후에 조서를 확보해 두면 같은 표현을 다시 쓸 수 있습니다.
2026년 10월 2일 이후에는 앞의 권한표에서 제2항 줄의 무게가 달라집니다. 검사가 피해자를 직접 조사하는 절차가 없어져 첫 경찰조사의 비중이 커지므로, 조사 날짜가 잡히면 그날을 기준으로 자료와 진술 순서를 미리 짜 두시는 편이 안전합니다. 조문이 어떻게 갈리는지는 개정 내용 정리에 모아 두었습니다.
보호 제도도 이 단계에서 함께 챙기셔야 합니다. 가명조서, 신뢰관계인 동석, 신변보호는 모두 신청해야 적용되는 제도입니다. 말하지 않으면 수사기관이 먼저 꺼내 주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불송치·불기소 통지를 받았을 때 쓰는 권리
경찰이 사건을 넘기지 않기로 하면 그 취지와 이유를 적은 서면이 옵니다. 이의신청서는 그 이유서를 한 줄씩 반박하는 문서이므로, 이유서를 손에 넣기 전에 쓰기 시작하면 초점이 흐려집니다. 결정서와 수사기록은 정보공개청구로 확보할 수 있고, 10월 2일부터는 이의신청을 위해 경찰이나 검사에게 수사 관계 기록의 열람·등사를 따로 신청하는 길도 함께 열립니다. 표에 적힌 열 가지 외에 새로 생기는 권리가 이것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이의신청서는 사건을 맡았던 경찰관이 속한 관서의 장에게 냅니다. 이 대목에서 앞 표의 '행사 시점' 칸이 바뀐 줄이 하나 있습니다. 종전에는 이의신청에 기간 제한이 없었지만, 10월 2일 시행 조문은 통지를 받은 날을 기준으로 3개월을 정해 두었습니다. 통지서를 받은 날짜를 그 자리에서 적어 두시는 편이 좋습니다.
검찰이 불기소 처분을 했다면 순서가 달라집니다. 처분 이유를 서면으로 설명해 달라고 청구할 수 있고, 불복은 항고와 재정신청으로 이어집니다. 10월 2일부터 항고의 근거 조문은 공소청법 제57조로 바뀌지만, 항고장을 처분한 검사가 속한 지방공소청·지청에 내고 그 위의 광역공소청장이 판단하는 층위 자체는 종전과 같습니다. 이름이 바뀐 것이지 접수처가 한 단계 올라간 것이 아닙니다.
다만 항고와 재정신청은 원칙적으로 고소인에게 인정되는 불복 방법입니다. 피해를 입었더라도 고소장을 내지 않고 참고인으로만 조사를 받았다면 이 두 칸은 그대로 적용되지 않으므로, 사건 초기에 내가 고소인으로 되어 있는지부터 확인해 두셔야 합니다. 항고 30일과 재정신청 10일이라는 기간 자체는 유지됩니다. 이의신청서와 항고장을 어떤 순서로 준비하는지는 불송치·불기소 대응에 정리되어 있습니다.
재판 단계, 열람·등사와 법정 진술
기소가 되면 기록의 문이 열립니다. 수사 중에는 볼 수 없던 서류도 공판 단계에서는 법원을 통해 열람·등사를 신청할 수 있습니다. 공소장, 증거목록, 공판조서, 가해자 측이 낸 의견서까지 확인하면 상대가 어느 지점을 다투는지 알 수 있고, 그때부터 대응이 구체적으로 변합니다.
재판절차진술권도 있습니다. 신청하면 법정에서 피해에 관한 의견을 직접 말할 수 있고, 사정에 따라 서면으로 대신하기도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내용은 유무죄가 아니라 피해의 크기와 지금의 상태입니다. 가해자 측이 반성과 합의 노력을 주장하는 자리에서, 피해자 쪽 설명이 하나도 없으면 그 주장만 기록에 남습니다.
기소부터 선고까지 기일이 어떤 순서로 이어지는지, 각 기일에 피해자가 무엇을 낼 수 있는지는 재판절차(법원)에 단계별로 정리되어 있습니다.
증인신문에서 실제로 작동하는 보호 조항
증인 출석이 가장 두렵다는 분들이 많습니다. 법정에는 그 부담을 줄이기 위한 조항이 따로 마련되어 있고, 이것도 권리 목록의 일부입니다.
- 피고인 퇴정(형사소송법 제297조) — 피해자가 진술하는 동안 가해자를 법정 밖으로 내보낼 수 있습니다.
- 중계장치·차폐시설(형사소송법 제165조의2) — 가림막을 두거나 다른 방에서 영상으로 진술할 수 있습니다.
- 신뢰관계인 동석(형사소송법 제163조의2) — 가족처럼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옆에 앉을 수 있습니다.
- 비공개 심리(성폭력처벌법 제31조) — 사생활 보호가 필요하면 방청을 제한해 달라고 신청할 수 있습니다.
재판장이 직권으로 적용하는 경우도 있지만, 기일 전에 신청서를 내 두는 편이 확실합니다. 신청 시점은 증인 출석 통지를 받은 직후가 가장 좋습니다.
국선변호사와 사선 변호사는 권한이 다른가요?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의 범위는 같습니다. 제27조 제6항으로 선정된 국선변호사도 같은 조가 정한 권한을 그대로 행사하므로, 조사 입회도 기록 열람도 법정 출석도 할 수 있습니다. 19세 미만 피해자 등에게 변호사가 없으면 국선변호사를 선정하도록 정해져 있기도 합니다.
차이는 권한이 아니라 관여의 밀도에서 생깁니다. 맡은 사건이 많으면 조사 입회나 공판 출석이 어려워지고, 단계마다 의견서를 내기도 힘들어집니다. 그래서 국선변호사에게 부탁할 때는 요청을 구체적으로 좁히는 편이 좋습니다. "의견서를 내 주세요"보다 "불송치 이유 중 진술 번복 부분을 판례로 반박해 주세요"가 훨씬 잘 전달됩니다.
권리를 실제로 행사한 사건 두 건
첫 번째는 직장 상사가 업무 지시를 빌미로 반복해 추행한 사건입니다. 가해자가 무죄를 주장하며 자신에게 유리한 참고인을 증인으로 신청하자, 피해자 측은 사정을 잘 아는 회사 동료를 검찰 측 증인으로 채택해 달라고 요청하고 범죄피해평가서를 의견서에 붙여 재판부에 냈습니다. 형량이 낮게 나온다고 알려진 위력 추행에서 징역 10월의 실형이 나왔습니다(사건 보기).
두 번째는 귀가하던 길에 모르는 사람에게 폭행과 추행을 당한 성추행 사건입니다. 재판이 진행 중인 줄도 모르다가 증인 출석 통지서를 먼저 받은 경우였는데, 선임계를 내고 곧바로 기록복사를 신청해 신문 기일 전에 그동안의 서류부터 손에 넣었고, 그 기록을 근거로 수사 단계 진술이 어긋나 보였던 이유를 법정에서 설명했습니다. 결과는 징역 6월과 법정구속이었습니다(사건 보기).
두 사건 모두 새로운 권한을 만들어 낸 것이 아닙니다. 조문에 이미 있던 증인 신청, 기록 열람·등사, 의견서 제출을 남아 있는 기한 안에 실제로 사용했을 뿐입니다. 권리 목록을 미리 읽어 두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관련 실제 사례
심앤이가 실제로 대리한, 이 주제의 사건 기록이에요. 결과는 사건마다 달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