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나 치료 중에 이상한 접촉을 겪은 분은 대개 같은 자리에서 멈춥니다. 내가 의학을 몰라서 오해한 것은 아닌가. 답부터 말씀드리면, 그 판단은 환자의 의학 지식이 아니라 법원이 정해 둔 기준으로 합니다. 접촉 부위가 증상과 관련이 있는지, 왜 만지는지 미리 설명하고 동의를 구했는지, 다른 사람이 함께 있었는지, 그 처치가 진료기록에 남아 있는지입니다.
대법원은 2025년 6월 이 기준을 판결문에 명시했습니다. 치료였다는 말 한마디로 끝나던 시절은 지났습니다. 의사, 한의사, 물리치료사, 마사지사 누구든 손이 닿는 일을 한다는 이유로 면책되지 않습니다.
이 글은 대법원이 제시한 판단 요소, 자기 상황을 대조해 볼 판단표, 산부인과·정신과·물리치료·한의원·마사지별로 달라지는 지점, 동의서 문제, 증거 목록 순서로 정리했습니다. 업소에서 일하다 손님에게 피해를 입은 경우는 다른 글에서 다루고(업소 종사자 피해 정리), 이 글은 환자와 손님이 피해자인 경우를 다룹니다.
진료 중 성추행 판단 기준, 대법원이 제시한 요소
사건은 이렇습니다. 한의사가 진료 과정에서 환자의 가슴과 음부를 손가락으로 눌렀습니다. 한의사는 치료 목적의 접촉이었다고 주장했고 1심은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항소심은 유죄로 뒤집었고, 대법원은 2025년 6월 5일 상고를 기각해 유죄를 확정했습니다(대법원 2022도9676).
판시 취지 — 환자의 내밀한 신체 부위에 대한 의료인의 접촉이 추행인지는 환자의 성별·연령·의사, 행위에 이른 경위, 접촉 부위의 위치와 특성, 증상에 대한 진단·치료의 필요성, 그 행위가 해당 의학 분야에서 객관적·일반적으로 실천되는 진료인지, 사전에 접촉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동의를 구했는지 등을 종합해 판단한다.
이 사건에서 법원이 주목한 사정은 셋입니다. 간호사를 입회시키지 않았고, 동의를 구하지 않았고, 그 처치를 진료기록부에 적지 않았습니다. 정상 진료라면 남아 있어야 할 흔적이 없다는 사실이 곧 증거가 됐습니다.
가해자가 성욕을 채우려 했는지를 피해자가 증명해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법원이 보는 것은 그 접촉이 객관적으로 진료의 범위 안에 있었는지입니다.
진료 중 성추행 판단표, 여섯 가지를 대조해 보십시오
아래 표는 대법원의 판단 요소를 피해자가 자기 상황에 대조할 수 있게 여섯 항목으로 옮긴 것입니다. 한 줄만으로 결론이 나지는 않습니다. 셋째 칸에 해당하는 줄이 겹칠수록 치료였다는 주장이 설 자리가 좁아집니다.
| 항목 | 정상 진료의 모습 | 추행을 의심할 신호 | 남겨 둘 자료 |
|---|---|---|---|
| 접촉 부위 | 호소한 증상과 연결되는 부위 | 통증과 무관한 가슴·음부·허벅지 안쪽 | 증상 메모, 접촉 부위 사진 |
| 사전 설명 | 무엇을 왜 만지는지 먼저 말함 | 말없이 시작하거나 물어도 얼버무림 | 설명이 없었다는 당일 메모 |
| 동의와 탈의 | 민감한 부위는 동의를 구하고 필요한 만큼만 노출 | 동의 없이 옷을 걷거나 옷 속으로 손을 넣음 | 직후 지인에게 보낸 메시지 |
| 제3자 동석 | 간호사·직원이 함께 있거나 드나듦 | 직원을 내보내고 단둘이 있게 만듦 | 진료실 구조와 동선 기록 |
| 진료기록 | 처치 내용과 부위가 기록됨 | 그 처치가 기록에 없음 | 진료기록 사본 |
| 반응 뒤 태도 | 불편해하면 멈추고 설명함 | 계속하거나 예민하다며 탓함 | 항의 메시지와 답장 |
표를 읽는 요령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접촉이 있었다는 사실이 아니라 접촉의 이유가 설명되는지를 봅니다. 진료는 원래 몸에 손을 대는 일이어서 접촉 자체는 아무것도 말해 주지 않습니다. 둘째, 자료 칸은 시간이 지나면 채울 수 없는 것부터 챙깁니다. 몸에 남은 자국과 당일의 기억이 가장 먼저 사라집니다.
산부인과·정신과·물리치료, 진료과마다 달라지는 지점
| 진료·시술 | 접촉의 성격 | 특히 볼 것 |
|---|---|---|
| 산부인과 | 내밀한 부위 진찰이 진료의 본질 | 설명·동의·입회, 진찰 목적과 무관한 접촉, 수면마취 중의 행위 |
| 정신과·심리상담 | 신체 접촉이 필요 없는 진료 | 접촉 자체, 진료 밖 사적 만남 유도 |
| 물리치료·도수치료 | 접촉이 치료 수단 | 치료 부위와의 일치, 옷 속 접촉, 가려진 공간 |
| 한의원 | 침·부항·추나로 접촉과 노출이 잦음 | 통증 부위와의 일치, 노출 범위, 설명 |
| 마사지·피부관리 | 예약한 코스가 범위를 정함 | 코스에 없는 부위, 탈의 요구, 성적 발언 |
산부인과 성추행은 판단이 가장 어렵다고들 하지만 기준은 같습니다. 내밀한 부위를 진찰하는 과일수록 설명과 동의, 입회가 더 엄격히 지켜져야 하고, 그것이 빠진 채 진찰 목적과 연결되지 않는 접촉이 있었다면 추행입니다. 수면마취처럼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벌어진 일은 항거불능을 이용한 준강제추행·준강간으로 다뤄집니다.
정신과 의사 성추행은 방향이 반대입니다. 정신과 진료와 심리상담은 몸에 손댈 이유가 없는 진료여서 접촉이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신호입니다. 더 흔한 모습은 의사에게 기대는 환자의 마음을 파고들어 진료실 밖에서 따로 만나자고 하는 것입니다. 성관계로 이어졌다면 폭행이 없었어도 위계·위력 간음의 구조가 되고, 이 구조는 교수·의사·목사 성범죄에 정리돼 있습니다.
물리치료 성추행과 도수치료 사건은 접촉이 곧 치료라는 점을 가해자가 방패로 씁니다. 그래서 치료 계획에 적힌 부위와 실제로 손이 간 부위를 대조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허리 치료에 가슴이, 어깨 치료에 사타구니가 등장할 이유는 없습니다.
한의원 성추행, 다른 한의원의 진료가 증거가 된 사건
심한 근육통으로 한의원에 간 피해자는 첫 진료 때부터 이상하다고 느꼈습니다. 원장은 아프다고 한 자리는 두고 쇄골 언저리와 가슴 쪽을 거듭 눌렀는데, 왜 거기를 누르는지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다음 예약 진료에서는 가슴 한가운데를 누르면서 상체가 절반 넘게 드러나게 만들었습니다. 피해자는 '원래 이런 치료인가' 하는 의심을 확인하려고 다른 한의원에서 같은 증상으로 진료를 받았습니다. 그곳의 치료는 아픈 자리에 침을 놓는 데서 끝났습니다.
심앤이는 치료 자국이 옅어지기 전에 눌린 부위를 사진으로 남기게 했고, 그 무렵 친구들과 나눈 대화와 직후의 법률 상담 내역을 모았습니다. 첫 경찰 조사를 앞두고는 진료 시각, 진료실 구조, 입고 있던 옷, 원장의 말과 행동을 순서대로 말할 수 있게 진술을 준비했습니다. 경찰은 혐의를 인정해 사건을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추행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보냈습니다(사건 보기).
이 사건의 비교 진료는 판단표의 첫 줄을 증거로 바꾼 방법입니다. 같은 증상에 다른 의료인이 어디를 어떻게 치료했는지가 남으면, 의학을 모르는 환자도 그 부위에 손댈 까닭이 없었다는 점을 보여 줄 수 있습니다.
마사지 성추행, 예약한 코스를 벗어난 접촉과 탈의 요구
허리와 어깨 통증으로 마사지샵을 찾은 손님에게 마사지사는 오일 마사지를 해야 한다며 상의를 벗게 했고, 성적인 말을 하며 가슴을 드러낸 채 시술을 이어가다 유두를 누르고 동의 없이 바지를 내렸습니다. 피해자가 혼자 경찰서를 찾았을 때 수사관은 환불받고 합의하는 것이 어떠냐고 했습니다.
심앤이는 같은 샵에서 피해를 입은 다른 손님들의 진술을 참고인 진술로 확보하고, 마사지사에게 항의한 카카오톡과 통화 녹취록, 심리평가보고서를 제출했습니다. 마사지사는 법정에서도 지압이었을 뿐이라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일관된 진술과 사건 직후의 행동을 근거로 징역 6개월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습니다(사건 보기).
수사관의 첫 반응이 환불과 합의였다는 점을 그냥 넘겨서는 안 됩니다. 마사지샵에서 벌어진 추행을 서비스 불만쯤으로 취급하는 시선이 수사 현장에 남아 있다는 뜻입니다. 마사지 성추행은 환불로 끝낼 민원이 아니라 10년 이하의 징역으로 처벌되는 강제추행입니다. 강제추행이 성립하는 기준은 성추행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동의서에 서명했어도 추행이 됩니까?
됩니다. 서명이 있다는 사실과 진정한 동의가 있었다는 사실은 다릅니다.
피부과 직원 면접을 보러 간 지원자에게 사장은 자기에게 시술을 받아야 직원이 될 수 있다고 했고, 지원자는 민감한 부위 접촉이 있을 수 있다는 동의서에 서명한 뒤 시술을 받았습니다. 사장은 시술 중 성기 부위를 쓰다듬고 교육용이라며 시술 부위를 휴대전화로 촬영했습니다. 재판 내내 사장은 동의서를 내세워 무죄를 주장했습니다.
심앤이는 만진 부위가 시술에 필요 없는 곳이라는 점, 촬영물이 교육에 쓰인 적이 없다는 점, 취업이 걸려 선택권이 없는 상태의 동의는 진정한 동의가 아니라는 점을 의견서로 냈습니다. 법원은 혐의 전부를 유죄로 보고 징역 2년을 선고하면서 사장을 법정에서 구속했고, 여기에 취업제한 5년을 덧붙였습니다(사건 보기).
병원과 시술소의 동의서는 대개 접수대에서 내미는 종이 한 장입니다. 무엇에 동의하는지 설명을 듣지 못했거나, 서명하지 않으면 진료나 채용이 안 된다는 압박 속에서 쓴 서명은 면죄부가 되지 못합니다. 동의서가 있다는 이유로 포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증거 목록, 진료기록·예약·결제·CCTV·직후 메시지
| 증거 | 증명하는 것 | 확보 방법과 시한 |
|---|---|---|
| 진료기록 사본 | 기록된 증상·처치와 실제 접촉의 불일치 | 환자 본인이 요청(의료법 제21조), 진료기록부 보존 10년 |
| 예약·접수 내역 | 그날 그 시간에 그곳에 있었다는 사실 | 예약 앱, 문자, 접수증 캡처 |
| 결제 내역 | 방문 일시와 받은 시술의 종류 | 카드 명세, 영수증 |
| CCTV | 출입 시각, 직원의 위치, 직후의 모습 | 지워지기 전에 고소와 함께 확보 요청 |
| 직후 메시지 | 피해 직후의 진술과 상태 | 대화방 원본 보존 |
| 접촉 부위 사진 | 통증과 무관한 곳을 눌렀다는 흔적 | 자국이 남아 있는 동안 |
| 비교 진료 | 같은 증상의 정상 치료 범위 | 다른 의료기관의 진료기록 |
| 항의 대화·녹음 | 가해자의 변명과 인정 | 본인이 참여한 대화의 녹음 |
진료실 안에는 CCTV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대기실과 복도의 영상은 출입 시각과 직후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전신마취처럼 의식이 없는 상태의 수술은 환자가 요청하면 수술실 CCTV로 촬영해야 하고 영상은 30일 이상 보관됩니다(의료법 제38조의2). 영상은 시간이 지나면 지워지므로 고소장에 위치를 적어 수사기관이 바로 확보하게 해야 합니다.
진료기록은 서둘러 받아 두는 편이 좋습니다. 의료인은 기록을 고치더라도 고치기 전 원본까지 함께 보존해야 하고(의료법 제22조), 먼저 받아 둔 사본이 있으면 뒤늦은 수정을 대조할 수 있습니다. 본인이 참여한 대화를 녹음하는 것은 법이 금지하는 타인 간 대화의 녹음이 아닙니다(통신비밀보호법 제14조). 증거가 진술뿐이라고 느껴질 때 간접증거를 엮는 방법은 증거가 없는 경우에 정리돼 있습니다.
'치료였다', '시원하다고 했다'는 주장은 법정에서 통합니까?
어깨 위주로 마사지를 부탁한 손님의 가슴 주변을 계속 만지고 자기 성기가 손님 손에 닿게 한 마사지사 사건에서, 1심 유죄 뒤 마사지사는 항소해 세 가지를 주장했습니다. 피해자가 법정에서 추행인지 마사지인지 판단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DNA가 나오지 않았다, 피해자가 시원하다고 했다는 것입니다.
심앤이는 항소심 기록 16건을 확보해 하나씩 반박했습니다. 당시의 혼란은 사후에야 추행으로 인식하게 되는 자연스러운 과정이고, 오일과 스팀 타월을 쓰는 시술에서 DNA가 나오지 않는 것은 이상하지 않으며, 시원하냐는 물음에 맞춘 형식적인 대답은 가슴 접촉에 대한 동의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항소는 기각됐습니다(사건 보기).
그 자리에서 항의하지 못한 것은 불리한 사정이 아닙니다. 옷을 걷은 채 누워 있는 사람, 닫힌 방에 상대와 단둘이 있는 사람은 몸이 먼저 굳습니다. 그 순간의 침묵을 동의로 읽는 것은 피해자에게 '피해자다움'을 요구하는 낡은 통념입니다. 대법원도 뚜렷한 이유 없이 피해자의 말을 내쳐서는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대법원 2019도2562).
진료실에서 겪은 일이 추행인지 아닌지를 환자가 의학 지식으로 증명할 필요는 없습니다. 어디가 아파서 갔고, 어디를 어떻게 만졌고, 무슨 설명을 들었는지를 적어 두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이상하다고 느낀 그 감각은 대개 틀리지 않았습니다. 기록과 비교 진료가 그 감각을 증거로 바꿔 줍니다.
자주 묻는 질문
관련 실제 사례
심앤이가 실제로 대리한, 이 주제의 사건 기록이에요. 결과는 사건마다 달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