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 피해자가 변호사를 선임하기에 가장 좋은 시기는 고소장을 접수하기 전입니다. 그때를 놓쳤다면 첫 피해자 조사 날짜가 잡히기 전이 그다음입니다. 고소장은 수사의 방향을 정하고 첫 조사는 진술을 기록으로 굳히는데, 이 두 가지는 뒤에서 고치기가 가장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그 시기를 지나친 분에게 이미 늦었다고 말하는 것은 틀린 이야기입니다. 법은 피해자의 변호사 선임에 기한을 두지 않았습니다. 심앤이가 진행한 사건 가운데에는 수사가 끝나기 직전, 불기소 처분을 받은 뒤, 증인 출석 통지서를 받은 뒤, 1심에서 무죄가 나온 뒤에 선임해 결과를 바꾼 사건이 있습니다. 다만 늦어질수록 이미 닫혀 버린 문이 하나씩 늘어납니다.
이 글은 선임 시점을 여덟 구간으로 나눠 그때 아직 할 수 있는 일과 이미 닫힌 일을 표로 먼저 보여 드리고, 고소 전, 조사 뒤, 처분 뒤, 재판 중, 1심 판결 뒤 순서로 실제 사건과 함께 설명합니다.
피해자 변호사 선임 시기, 법에 정해진 기한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성범죄 피해자의 변호사 선임권은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27조에 적혀 있고, 이 조문에는 고소 전까지라거나 기소 전까지라는 단서가 없습니다. 피해자와 법정대리인은 형사절차의 어느 시점에서든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습니다.
국선변호사에는 신청 시한이 있지만 이것도 넉넉합니다. 가해자에 대한 사실심 변론이 종결되기 전까지 신청할 수 있고, 불기소된 사건이라면 불복 절차가 기각으로 최종 종결되기 전까지 가능합니다(검사의 국선변호사 선정 등에 관한 규칙 제10조). 사실심은 1심과 항소심을 말하므로 재판이 한창인 때에도 길은 열려 있습니다.
그러니 언제까지 선임할 수 있느냐는 질문의 답은 '언제든'입니다. 정작 물어야 할 것은 지금 선임하면 무엇이 남아 있느냐입니다.
선임 시점별로 아직 할 수 있는 일과 이미 닫힌 일
아래 표는 선임 시점을 여덟 구간으로 나눈 것입니다. 왼쪽부터 지금 서 있는 구간, 그 구간에서 변호사와 함께 할 수 있는 일, 그 시점에는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일, 달력에 적어 둘 기한 순서로 읽으시면 됩니다.
| 선임 시점 | 아직 할 수 있는 일 | 이미 닫힌 일 | 챙길 기한 |
|---|---|---|---|
| 고소 전 | 증거 선별·보전, 죄명 특정, 고소장 설계 | 없음 | 곧 사라지는 증거 |
| 고소 후·첫 조사 전 | 진술 정리, 조사 입회, 보충 자료 제출 | 이미 낸 고소장의 첫인상 | 조사 날짜 |
| 조사 후·송치 전 | 조서 확보, 가해자 주장 파악, 의견서 | 조서에 적힌 첫 진술 | 수사 종결 전 |
| 송치 후·처분 전 | 정식재판 요청 의견서, 엄벌탄원서 | 경찰 단계의 수사 방향 | 검사 처분 전 |
| 불송치·불기소 통지 후 | 이의신청과 항고·재정신청 서면 | 기한을 넘긴 불복 | 3개월·30일·10일 |
| 기소 후·증인 출석 전 | 기록 열람·등사, 증인신문 대비, 의견서 | 수사 단계에서 한 진술 | 증인신문 기일 |
| 1심 선고 후 | 검사에게 항소 요청, 항소심 의견서 | 피해자 본인의 항소(권한 없음) | 선고일부터 7일 |
| 형사 확정 후 | 민사 손해배상, 변호사 비용 청구 | 형사재판의 결과 | 민사 시효(안 날부터 3년) |
표를 위에서 아래로 훑으면 '이미 닫힌 일' 칸이 점점 무거워지는 것이 보입니다. 닫히는 것을 추리면 둘입니다. 첫째는 진술입니다. 조서에 한 번 적힌 표현은 지울 수 없고, 나중에는 왜 그렇게 말했는지를 설명할 수 있을 뿐입니다. 둘째는 기한입니다. 불복 기한은 하루만 넘겨도 같은 절차를 다시 쓸 수 없습니다.
반대로 '아직 할 수 있는 일' 칸은 어느 구간에서도 비어 있지 않습니다. 늦은 선임은 불리한 선임이지 쓸모없는 선임이 아닙니다. 아래에서 구간별로 풀어 보겠습니다.
성범죄 변호사 선임 시기, 왜 고소 전과 첫 조사 전이 가장 좋습니까?
첫째 이유는 증거입니다. 증거는 피해자가 마음을 정할 때까지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 CCTV 영상은 보관 기간을 따로 정하기 어려운 경우 수집 후 30일 이내로 보관하도록 한 기준이 있어(개인정보보호위원회 표준 개인정보 보호지침 제41조), 한 달이 지나면 지워진 영상이 많습니다. 고소 전에 선임하면 곧 사라질 증거부터 가려내 수사기관이 먼저 확보하도록 요청할 수 있습니다.
둘째 이유는 고소장입니다. 고소장은 수사관이 이 사건을 어떤 죄명과 어떤 행위로 볼지를 정하는 첫 문서입니다. 억울함을 길게 적은 고소장과 날짜·행위·증거를 항목으로 특정한 고소장은 같은 사건이어도 출발선이 다릅니다.
셋째 이유는 첫 조사입니다. 피해자 변호사는 수사기관의 피해자 조사에 참여해 의견을 말할 수 있고(제27조 제2항), 조사 전에 진술을 시간 순서로 정리해 두면 조서에 남는 표현이 달라집니다.
국선변호사를 기다리면 된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많습니다. 규칙에는 수사기관이 피해자를 조사하기에 앞서 변호사 유무를 묻고, 변호사가 없는 피해자에게는 국선변호사 선정을 신청할 수 있음을 알리라는 조항이 있습니다(검사의 국선변호사 선정 등에 관한 규칙 제9조).
그런데 현실은 다릅니다. 2026년 7월 파이낸셜뉴스 보도에서 대한법률구조공단 소속 피해자 국선전담변호사는 맡은 사건의 절반 이상이 경찰 조사가 끝난 뒤에 선정됐다고 말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조사를 혼자 받게 만드는 이 공백은 피해자의 잘못이 아니라 제도를 운영하는 국가의 책임입니다.
그래서 국선 지원을 받으실 분도 기다리지 말고 먼저 움직이셔야 합니다. 선정 신청은 검사나 경찰에게 말로도 할 수 있으므로(같은 규칙 제10조), 조사 일정을 조율하는 통화에서 바로 신청하시면 됩니다. 조사 전 준비 항목은 수사절차(경찰·검찰) 가이드의 첫 조사 대목에 나옵니다.
조사를 혼자 받은 뒤라면, 송치 전에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세 가지가 남아 있습니다. 내 진술이 조서에 어떻게 적혔는지 확인하는 일, 가해자가 무엇을 주장하는지 알아내는 일, 그 주장을 반박하는 의견서를 수사가 끝나기 전에 넣는 일입니다.
친분이 없던 직장 선배와 룸 형태의 술자리에서 양주를 마시다 의식을 잃었고, 그 틈에 준강간을 당한 사건이 그랬습니다. 신고는 피해자가 직접 했습니다. 진술서 한 장을 써 내고 피해자 조사도 혼자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뒤 몇 달 동안 수사가 어떻게 되고 있는지 아무 연락도 받지 못했습니다. 밀폐된 공간이라 CCTV도 없었습니다.
선임은 수사가 마무리되기 직전에 이뤄졌습니다. 곧바로 선임계를 내고 정보공개청구를 넣어 피해자가 변호사 없이 냈던 자료와 자신의 진술조서부터 받아 냈고, 수사관과 소통하면서 가해자가 어떤 논리로 혐의를 부인하는지 알아냈습니다. 그 주장을 반박하는 의견서에 엄벌탄원서와 정신과 진료확인서, 상담소견서를 붙여 냈고, 수사관은 가해자를 준강간죄로 검찰에 넘겼습니다(사건 보기).
이 구간의 원칙은 하나입니다. 새 진술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미 한 진술을 지키는 것입니다. 조서를 보지 않고 기억에 기대어 다시 말하면 표현이 달라지고, 그 차이는 진술 번복이라는 공격의 재료가 됩니다. 음주로 기억이 군데군데 빈 사건에서 진술을 세우는 방법은 준강간·준강제추행 편에 따로 있습니다.
불기소·불송치 결정 뒤에 선임해도 됩니까?
됩니다. 다만 이 구간은 기한과의 싸움입니다. 통지서를 받은 날부터 시계가 돌기 시작하므로, 어떤 통지를 언제 받았는지부터 확인하셔야 합니다.
경찰의 불송치 결정은 이의신청으로 다투고, 검사의 불기소 처분은 항고로 다툽니다. 항고는 불기소 통지를 받고 30일 안에 해야 하고, 항고마저 기각되면 그 통지를 받고 10일 안에 법원의 판단을 구하는 재정신청을 해야 합니다. 1심 판결에 대해서는 피해자가 직접 불복할 수 없어, 판결 선고 후 7일이 지나기 전에 검사에게 항소 요청서를 내는 길만 남습니다. 표로 옮기면 아래와 같습니다.
| 받은 통지 | 남은 불복 수단 | 기한 | 근거 |
|---|---|---|---|
| 경찰 불송치 | 이의신청 | 10월 2일 이후 통지분은 통지받은 날부터 3개월 | 형사소송법 제245조의7 |
| 검사 불기소 | 항고 | 통지받은 날부터 30일 | 검찰청법 제10조(10월 2일부터 공소청법 제57조) |
| 항고 기각 | 재정신청 | 기각 통지를 받은 날부터 10일 | 형사소송법 제260조 |
| 1심 판결 | 검사에게 항소 요청 | 선고일부터 7일 | 형사소송법 제338조·제358조 |
불송치 이의신청은 지금까지 법률에 기한이 적혀 있지 않았는데, 2026년 10월 2일부터 통지되는 불송치 결정에는 통지일을 기준으로 3개월 안에 내야 한다는 제한이 생깁니다(개정 내용 정리). 항고 30일과 재정신청 10일은 기록을 구해 읽고 서면을 쓰는 시간까지 포함한 숫자이므로, 실제로 쓸 수 있는 날은 훨씬 짧습니다.
퇴사를 앞두고 가진 회식 뒤에 열 살 넘게 많은 직장 상사에게 추행을 당한 사건이 이 구간에서 시작됐습니다. 가해자는 피해자를 침대로 밀어 눕혀 가슴을 만졌고 저항하자 목을 졸랐습니다. 피해자는 고소했지만 검찰에서 불기소 결정을 받았고, 선임은 그 뒤에 이뤄졌습니다.
먼저 항고 기한부터 계산한 뒤 불기소 결정서를 분석해 검찰이 어떤 이유로 혐의를 인정하지 않았는지 짚었고, 진료확인서와 상담 소견서를 새로 확보해 항고이유서를 기한 안에 냈습니다. 검찰은 재기수사명령을 내렸고, 두 차례의 피해자 조사에 변호사가 동행한 끝에 사건은 정식 기소됐습니다. 가해자는 법정에서도 무죄를 주장했지만 1심 법원은 징역 8개월의 실형을 선고했고, 40시간의 성폭력 치료강의 수강도 함께 명했습니다(사건 보기).
불기소 이유서를 읽는 법과 반박 서면의 짜임은 불송치·불기소 대응 가이드에 나와 있습니다.
증인 출석 통지를 받고 나서 선임하면 늦습니까?
늦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때 처음 변호사를 찾는 피해자가 적지 않습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검사는 피해자에게 기소 여부와 공판 일시, 재판 결과를 알려 주어야 하지만, 법문은 그 앞에 '피해자의 신청이 있는 때'라는 조건을 달아 두었습니다(형사소송법 제259조의2). 신청하지 않은 피해자는 자기 사건의 재판이 열리는 줄도 모를 수 있습니다.
귀가하던 길에 처음 보는 사람에게 시비가 걸려 폭행과 강제추행을 당한 사건이 그랬습니다. 사건은 처음에 쌍방 폭행으로 접수돼 피해자는 한 차례 조사를 받았고, 그 뒤 몇 달 동안 아무 통지도 받지 못했습니다. 재판이 진행 중이라는 사실은 법원의 증인 출석 통지서를 받고서야 알았습니다. 가해자는 피해자에게는 사과하겠다고 하면서 법정에서는 혐의를 전부 부인하고 있었습니다.
증인신문까지 남은 시간이 얼마 없었습니다. 재판부에 선임계를 내고 기록 복사부터 신청해 신문 기일 전에 기록을 확보했고, 그 기록으로 의견서를 쓰고 증인신문 대비 미팅을 했습니다. 가해자 측은 수사 단계 진술과 어긋나는 사소한 대목을 파고들었지만, 피해자는 당시 그렇게 진술하게 된 경위를 법정에서 차분히 풀어냈습니다. 폭행과 강제추행이 모두 유죄로 인정돼 징역 6월이 선고됐고 가해자는 법정에서 구속됐습니다(사건 보기).
이 구간에서 변호사가 쓰는 권한은 조문에 적혀 있습니다. 소송이 계속 중인 사건의 서류와 증거물을 열람·등사할 수 있고(제27조 제4항), 공판에 출석해 의견을 말할 수 있습니다(같은 조 제3항). 증인신문 준비와 법정 보호 조치 신청은 재판절차(법원) 가이드로 이어집니다.
1심에서 무죄가 나온 뒤에는 무엇이 남아 있습니까?
항소심이 남아 있습니다. 다만 피해자는 직접 항소할 수 없습니다. 형사소송법은 상소할 수 있는 사람을 검사와 피고인으로 정해 두었고(제338조), 항소 기간은 선고일부터 7일뿐입니다(제343조·제358조). 피해자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7일 안에 검사에게 항소해 달라고 요청하고 이유를 서면으로 내는 것입니다.
남편의 친구가 함께한 술자리 뒤 만취해 쓰러진 피해자를 집 안방에서 준강간한 사건에서 1심은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1심에서 피해자는 변호사의 도움을 제대로 받지 못했고, 선임은 항소심에서 이뤄졌습니다. 항소심은 피해자 쪽이 움직이지 않으면 한 번의 기일로 끝나 버리기 쉬워, 먼저 공판검사에게 연락해 피해자를 다시 증인으로 신청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동시에 기록 복사로 가해자 측 의견서와 피의자신문조서를 확보했고, 1심 판결문을 대목마다 반박하는 100쪽 분량의 의견서를 냈습니다. 피해자는 증인신문 대비를 거쳐 항소심 법정에 다시 섰습니다. 항소심은 피해자의 진술이 경험하지 않고서는 말할 수 없는 내용이라고 보아 가해자에게 징역 4년을 선고했습니다. 40시간의 성폭력 치료강의와 3년간의 취업제한도 함께 붙었습니다(사건 보기).
결과는 뒤집혔지만 이 사건이 말해 주는 것은 분명합니다. 제대로 된 조력 없이 치른 1심의 대가가 무죄였고, 그것을 되돌리는 데 100쪽의 서면과 두 번째 증인 출석이 필요했습니다. 뒤집을 수 있다는 것과 처음부터 뒤집을 일이 없게 하는 것은 다릅니다.
'혼자 해 보고 안 되면 그때'라는 생각이 위험한 이유
가해자는 고소 사실을 알게 된 날, 빠르면 그 전부터 변호인을 구합니다. 피해자만 '일단 혼자 해 보고'를 선택합니다. 그 사이 가해자 쪽 서면은 기록에 쌓이고 피해자 쪽 칸은 비어 있습니다. 수사기관과 법원은 기록에 있는 것으로 판단합니다.
선임을 망설이게 만드는 말도 짚어야 합니다. 피해자가 변호사까지 선임하면 돈을 노린 고소처럼 보인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가해자 쪽이 퍼뜨려 온 프레임이고, 법은 정반대로 말합니다. 피해자의 변호사 선임은 성폭력처벌법이 조문으로 보장한 권리이고, 그 목적도 법문에 적혀 있습니다.
성폭력처벌법 제27조 제1항 요지 — 성폭력범죄의 피해자와 그 법정대리인은 형사절차상 입을 수 있는 피해를 방어하고 법률적 조력을 보장받기 위하여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습니다.
법이 예정한 것은 돈이 아니라 방어입니다. 변호인을 몇 명씩 세우는 가해자에게는 아무도 묻지 않는 질문을 피해자에게만 던지는 것부터가 부당합니다.
비용 때문에 미루는 분도 많습니다. 그런데 형사 절차에 쓴 변호사 선임비는 민사소송에서 가해자에게 손해로 청구할 수 있는 항목입니다. 가해자 측은 그 소송에서 늦게 선임했으니 변호사가 필요 없었던 것 아니냐며 금액을 깎으려 들지만, 선임이 늦었다는 사정은 조력이 필요 없었다는 증거가 아닙니다. 혼자 버티다 막힌 자리에서 선임했다는 것이 오히려 조력이 필요했다는 사정입니다.
정리하면 가장 좋은 선임 시기는 고소 전이고, 그다음은 첫 조사 전입니다. 이미 지났다면 표에서 지금 서 있는 구간의 줄을 찾아 남은 일과 기한부터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통지서를 받으셨다면 받은 날짜를 그 자리에서 적어 두십시오. 닫힌 문을 세는 것보다 아직 열려 있는 문을 기한 안에 통과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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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앤이가 실제로 대리한, 이 주제의 사건 기록이에요. 결과는 사건마다 달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