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자는 말을 믿고 관계를 이어 왔는데 상대가 이미 결혼한 사람이었거나 처음부터 결혼할 생각이 없었다면, 지금 법에 혼인빙자간음죄라는 이름의 처벌 조항은 없습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은 전혀 아닙니다. 혼인 여부처럼 성관계에 응할지를 결정하는 핵심 사실을 속인 행위는 민사상 불법행위로 인정되어 위자료가 나오고 있고, 재산까지 넘어갔다면 사기죄가, 피해자가 미성년자나 피감독자라면 위계 간음죄가 따로 열립니다.
혼인빙자간음죄는 1953년 형법이 제정될 때부터 제304조에 있던 조문입니다. 헌법재판소는 2002년에는 합헌으로 보았다가 2009년에 위헌으로 판단을 바꿨고, 조문은 2013년에 법전에서 사라졌습니다. 폐지된 지 십 년이 넘었는데도 이 이름이 아직 검색되는 이유는, 피해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피해를 담을 죄명만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이 글은 폐지까지의 경과를 연표로 정리하고, 지금 열려 있는 세 갈래를 표로 나눈 뒤, 갈래마다 무엇을 입증해야 하고 실제로 어떤 결과가 나왔는지를 순서대로 보여 드리겠습니다.
혼인빙자간음죄 폐지 과정, 합헌에서 위헌으로 바뀐 경위
아래 표는 조문이 만들어지고 없어지기까지의 시점과 근거입니다. 세로로 읽으시면 처벌이 언제까지 가능했는지가 보이고, 마지막 줄의 시행일이 실무에서 기준이 되는 날짜입니다.
| 시점 |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 근거 |
|---|---|---|
| 1953년 10월 3일 | 형법 시행, 제304조에 혼인빙자간음죄 | 법률 제293호 |
| 2002년 10월 31일 | 헌법재판소, 제304조 합헌 결정 | 99헌바40, 2002헌바50(병합) |
| 2009년 11월 26일 | 헌법재판소가 재판관 6 대 3으로 위헌 판단 | 2008헌바58, 2009헌바191(병합) |
| 2012년 12월 18일 | 제304조를 삭제하는 개정 형법 공포 | 법률 제11574호 |
| 2013년 6월 19일 | 삭제 시행, 처벌 조항이 사라짐 | 공포 후 6개월 |
표에서 눈여겨보실 지점은 2002년과 2009년 사이입니다. 같은 조문을 두고 헌법재판소의 결론이 7년 만에 뒤집혔습니다. 조문의 문구는 그대로였고 달라진 것은 이 조문을 바라보는 관점이었습니다.
한 가지 덧붙이면, 위헌 결정을 받은 형벌 조항은 소급해서 효력을 잃습니다. 그래서 2009년 결정 이후에는 결정 전의 행위에 대해서도 이 죄로 처벌할 수 없게 됐습니다. 2013년 6월 19일은 법전에서 조문이 빠진 날이고, 처벌이 실제로 멈춘 것은 그보다 앞선 위헌 결정일입니다.
위헌 결정은 무엇을 말했고, 무엇을 남겼습니까?
위헌 의견의 핵심은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이 조문이 보호한다고 내세운 것이 사실은 여성을 스스로 판단하지 못하는 존재로 전제한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남녀의 내밀한 사생활에 형벌이 개입하는 것은 최후수단이어야 한다는 점이었습니다.
결정 취지 - 성행위 여부는 스스로 결정하는 영역이고, 국가가 여성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형벌권을 앞세우는 것은 오히려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부인하는 결과가 된다는 취지입니다.
여기까지는 동의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그다음입니다. 조문을 없앤 자리에 속아서 이뤄진 성관계를 다룰 새로운 규정은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성인 피해자에게는 형사 절차 자체가 열리지 않고, 입증 부담과 소송 비용을 전부 떠안은 채 민사로만 가야 합니다. 스스로 결정할 능력이 있다는 말이 속인 사람의 책임을 덜어 주는 근거로 쓰여서는 안 됩니다.
실제 상담에서 가장 많이 듣는 말도 "형사가 안 된다니 그냥 참으라는 뜻이냐"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형사 조항이 없다는 것과 법적 책임이 없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이고, 아래의 세 갈래가 그 차이를 메우고 있습니다.
폐지 뒤 남은 세 갈래는 무엇입니까?
지금 결혼을 미끼로 한 성관계 피해에 열려 있는 경로는 셋입니다. 표의 세 번째 칸이 각 갈래의 출입문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내 사건이 어느 칸에 해당하는지부터 확인하시고, 두 칸 이상에 걸친다면 두 갈래를 같이 진행할 수 있습니다.
| 갈래 | 근거 조문 | 이런 경우에 열립니다 | 얻는 것 |
|---|---|---|---|
| 민사 위자료 | 민법 제750조·제751조 | 혼인 여부처럼 성관계를 결정하는 핵심 사실을 속인 경우 | 위자료, 접근금지·비밀유지 조항 |
| 사기죄 | 형법 제347조 | 기망으로 돈이나 재산상 이익이 넘어간 경우 | 형사처벌, 피해 회복의 지렛대 |
| 위계 간음·추행 | 형법 제302조·제303조, 성폭력처벌법 제10조 | 피해자가 미성년자·심신미약자·피보호자·피감독자인 경우 | 형사처벌 |
세 갈래를 가르는 기준은 상대가 얼마나 나쁘게 굴었는지가 아니라 무엇이 넘어갔고 피해자가 어떤 지위에 있었는지입니다. 마음만 상한 경우와 돈까지 나간 경우, 그리고 애초에 거절하기 어려운 관계였던 경우가 법에서는 전혀 다른 문으로 들어갑니다.
민사 위자료, 형사 절차 없이 기망을 직접 입증합니다
가장 많이 쓰이는 갈래입니다. 상대의 혼인 여부는 성관계에 응할지를 결정하는 중요한 판단 요소이므로, 이를 속이고 관계를 이어 간 행위는 단순한 연인 사이의 거짓말이 아니라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한 불법행위로 평가됩니다. 근거는 민법 제750조이고, 정신적 손해에 대한 배상은 제751조 제1항에 있습니다.
조문 요지 - 민법 제751조 제1항은 재산에 생긴 손해가 아니더라도 상대에게 정신적 고통을 준 경우에는 그 부분까지 배상해야 한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형사 유죄판결이 없으니 기망 사실을 처음부터 끝까지 피해자 측이 세워야 합니다. 그래서 이 유형은 자료 확보가 승패를 정합니다. 결혼을 전제로 나눈 대화, 숙박이나 여행 결제 내역, 상대가 스스로를 미혼이라고 적은 프로필, 부모님께 인사한 사실처럼 진지한 교제였음을 보여 주는 기록이 그대로 증거가 됩니다.
독서모임에서 만나 1년을 교제한 상대가 유부남이었던 사건이 그 예입니다. 가해자는 피해자의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고 신혼집 위치까지 알아보며 결혼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는데, 어느 날 가해자의 아내가 피해자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혼인 사실을 알렸고 가해자는 그대로 잠적했습니다. 피해자는 나중에 상간 소송을 당할 위험을 막기 위해서라도 판결문을 남기고 싶어 했습니다.
심앤이는 소액 사건이 아니라 단독 사건으로 3,500만 원을 청구했고, 가해자 측이 1,000만 원을 제시하며 빠른 종결을 요구했지만 거절했습니다. 재판부가 화해권고 의사를 물었을 때도 이유가 상세히 적힌 판결문을 받겠다는 뜻을 밝혀 판결로 갔습니다. 결과는 원고 전부승소였고, 청구액 3,500만 원이 전액 인용돼 소송비용을 포함해 약 4,400만 원을 받았습니다(사건 보기). 이 유형의 위자료 산정과 청구 절차는 민사 손해배상에 단계별로 정리돼 있습니다.
재산까지 넘어갔다면 사기죄가 따로 성립합니다
결혼을 내세워 돈을 빌려 가거나 투자금을 받아 간 경우는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사람을 속여 재물이나 재산상 이익을 가져간 행위는 형법 제347조 사기죄에 해당하고, 여기에는 성관계 여부가 아니라 재산이 넘어갔다는 사실이 요건입니다.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와 사기는 성격이 다른 책임이므로 둘을 함께 물을 수 있습니다.
채팅 앱에서 만나 결혼을 전제로 교제하던 상대가 유부남이었고, 그 사이 사업 자금까지 빌려준 사건이 있습니다. 피해자는 가해자의 지인을 통해 기혼 사실과 자녀의 존재를 알게 됐고, 혼인 사실을 알았다면 교제도 성관계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일관되게 말했습니다. 가해자는 불법행위 자체는 인정하면서 500만 원을 합의금으로 제시했습니다.
심앤이는 그 금액이 통상 인정되는 위자료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며 거절하고, 교제 과정에서 생긴 경제적 손해에 대해서는 별도로 형사 고소가 진행될 수 있다는 점을 협상에 올렸습니다. 가해자는 결국 처음 제안의 6배인 3,000만 원을 지급했고, 비밀유지와 접근금지, 주고받은 사진과 영상을 전부 삭제하는 조항까지 받아들였습니다(사건 보기). 합의로 마무리할 때 넣어야 할 조항은 합의금·합의대행에 항목별로 나와 있습니다.
위계 간음이 열리는 피해자는 따로 있습니다
위계는 상대를 속여 오인이나 착각을 일으키고 그 상태를 이용하는 것을 말합니다. 대법원은 2020년 8월 27일 전원합의체 판결로 위계의 범위를 넓혀, 간음 행위 자체가 아니라 간음에 이르게 된 동기나 그와 밀접한 사정에 관해 속인 경우도 위계에 들어간다고 판단했습니다(대법원 2015도9436).
다만 이 죄는 모든 피해자에게 열리지 않습니다. 형법 제302조는 미성년자와 심신미약자를, 제303조 제1항은 업무나 고용 관계로 자기의 보호 또는 감독을 받는 사람을 대상으로 합니다. 추행이라면 성폭력처벌법 제10조 제1항이 같은 구조로 적용됩니다. 성인이고 이런 관계가 아닌 피해자에게는 위계 간음죄가 적용되지 않습니다.
| 조문 | 대상 | 행위 | 법정형 |
|---|---|---|---|
| 형법 제302조 | 미성년자·심신미약자 | 위계 또는 위력으로 간음·추행 | 5년 이하의 징역 |
| 형법 제303조 제1항 | 업무·고용 등으로 보호·감독을 받는 사람 | 위계 또는 위력으로 간음 |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 |
| 성폭력처벌법 제10조 제1항 | 업무·고용 등으로 보호·감독을 받는 사람 | 위계 또는 위력으로 추행 |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500만원 이하의 벌금 |
그래서 사건을 처음 상담할 때 가장 먼저 확인하는 것이 나이와 관계입니다. 피해 당시 미성년자였거나 직장, 학원, 교회처럼 상대가 나의 일이나 평가를 쥐고 있던 관계였다면 형사 고소가 가능한 사건이 됩니다. 그 판단이 어떻게 이뤄지는지는 유부남·유부녀 기망에 유형별로 정리돼 있습니다.
위자료 액수를 가르는 것은 기망의 길이와 밀도입니다
이 유형의 위자료는 보통 1,000만 원 안팎에서 정해지고, 사정이 무거우면 3,000만 원대까지 올라갑니다. 액수를 올리는 것은 피해자가 얼마나 괴로웠다고 말했는지가 아니라 상대의 거짓말이 얼마나 오래, 얼마나 치밀하게 이어졌는지를 보여 주는 기록입니다.
수년간 기혼 사실을 숨긴 상대를 상대로 낸 소송이 그 예입니다. 의뢰인은 SNS로 알게 된 상대와 결혼을 전제로 몇 년을 만났는데, 상대의 비공개 게시글에서 알고 있던 것과 다른 이름과 혼인 정황, 자녀가 두 명이라는 내용을 보게 됐습니다. 추궁 끝에 상대는 유부녀임을 인정했습니다.
심앤이는 사실조회로 관련 서류를 확보하고, 상대가 자필로 결혼을 맹세한 편지와 숙박 예약 내역, 결혼을 전제로 한 만남을 알고 있던 부모님의 진술서를 모아 기망이 수년간 의도적으로 이어졌다는 점을 입증했습니다. 재판부는 배우자가 있음을 숨기고 결혼을 전제로 성관계를 한 것이 불법행위라고 판단했고, 이 유형에서는 유례없는 3,000만 원의 위자료를 인정하면서 혼인 사실을 알게 된 날부터의 지연이자까지 붙였습니다(사건 보기).
속은 사람 탓이라는 말에는 답하지 않아도 됩니까?
답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왜 몰랐느냐, 확인했어야 하지 않느냐, 결국 돈을 원하는 것 아니냐는 말은 사건의 쟁점이 아닙니다. 법원이 보는 것은 상대가 성관계 여부를 결정하는 핵심 사실을 속였는가이지, 피해자가 얼마나 의심했는가가 아닙니다. 이 말들은 대개 가해자 측이 책임을 나누려고 먼저 꺼냅니다.
다만 시간은 피해자 편이 아닙니다. 위자료를 청구할 수 있는 기간은 가해자와 손해를 알게 된 때로부터 3년이고, 그 일이 벌어진 때를 기준으로 하면 10년입니다(민법 제766조). 기산점이 되는 상대의 혼인 사실을 알게 된 날짜를 정확히 적어 두는 일이 그래서 중요합니다.
지금 하셔야 할 일은 딱 세 가지입니다. 첫째, 상대가 스스로를 미혼이라고 말한 기록과 결혼을 전제로 나눈 대화를 원본 그대로 보존하십시오. 둘째, 혼인 사실을 알게 된 경위와 날짜를 시간순으로 적어 두십시오. 셋째, 돈이 오갔다면 이체 내역을 따로 모으십시오. 상대에게 먼저 따져 묻는 것은 그다음입니다. 추궁이 앞서면 기록이 지워집니다.
혼인빙자간음죄가 없어졌다는 사실이 곧 책임이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조문이 사라진 자리에 민사 위자료와 사기죄, 그리고 관계에 따라 열리는 위계 간음죄가 남아 있고, 심앤이가 진행한 사건들에서 그 경로는 실제로 결과를 냈습니다. 속은 쪽이 부끄러워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관련 실제 사례
심앤이가 실제로 대리한, 이 주제의 사건 기록이에요. 결과는 사건마다 달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