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피해자 보호법이 성범죄 피해자에게 보장하는 것은 네 가지입니다. 형사절차에 참여해 의견을 진술할 권리(제8조), 사건 진행과 지원제도를 알 권리(제8조의2), 명예와 사생활의 평온을 지키고 보복으로부터 보호받을 권리(제9조), 그리고 일정한 요건을 갖춘 경우의 구조금(제16조)입니다.
문제는 이 조문들이 전부 국가가 무엇을 하여야 한다는 형태로만 적혀 있다는 점입니다. 피해자를 형사절차의 당사자로 세운 조문이 아니라, 당사자가 아닌 사람에게 참여할 기회를 주라고 국가에 지시한 조문입니다. 그래서 피해자 쪽에서 신청하고 요구하지 않으면 같은 조문이 있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 글은 조문별로 무엇이 적혀 있는지, 각각 어느 단계에서 어떤 형식으로 요구해야 하는지, 그리고 구조금처럼 성범죄 피해자에게는 문턱이 지나치게 높은 조문이 무엇인지를 순서대로 정리했습니다.
범죄피해자 보호법이 보장하는 네 가지
아래 표는 성범죄 사건에서 실제로 쓰이는 조문만 추린 것입니다. 왼쪽 두 칸은 법에 적힌 내용이고, 오른쪽 두 칸은 그 조문을 살아 있게 만들려면 누가 언제 무엇을 해야 하는지입니다. 표를 세로가 아니라 가로로 읽으시기 바랍니다.
| 조문 | 법에 적힌 내용 | 요구하는 시점 | 요구하지 않으면 |
|---|---|---|---|
| 제8조 | 형사절차 참여와 진술 보장 | 고소 직후부터 | 참여 기회가 지나감 |
| 제8조의2 | 권리·지원제도 정보 제공 | 첫 조사 전 | 제도를 모른 채 종결 |
| 제9조 | 사생활의 평온과 신변 보호 | 보복 조짐이 보일 때 | 조치 없이 방치 |
| 제16조 | 구조금 지급 | 요건에 해당할 때 | 기한이 지나 소멸 |
| 제41조 | 형사조정 회부 | 검사가 권할 때 | 원치 않는 조정 진행 |
가로로 읽으면 공통점이 보입니다. 네 번째 칸이 전부 피해자의 손해로 끝납니다. 국가가 하여야 한다고 적힌 일이 실제로는 피해자가 요청해야 시작되는 일이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이 법을 읽을 때 가장 먼저 알아야 할 구조입니다.
그래서 이 글의 나머지 부분은 조문 해설이 아니라, 각 조문을 어떤 서면과 어떤 시점으로 바꿔 놓아야 하는지에 관한 것입니다.
정보 제공 조문, 요청하지 않으면 오지 않습니다
제8조의2는 국가가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피해자에게 형사절차상의 권리, 구조금 지급과 지원 단체 현황 같은 정보를 제공하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제8조 제2항도 피해자가 요청하면 수사 결과와 공판기일, 재판 결과 등을 알려 줄 수 있게 열어 두고 있습니다.
읽어 보면 넉넉해 보이지만 실제 조사실에서는 안내문 한 장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피해자 측은 첫 조사 전에 서면으로 정보 제공을 요청해 두고, 담당 수사관과 담당 검사·재판부가 바뀔 때마다 다시 확인합니다. 통지 제도 자체의 신청 방법과 종류는 별도의 주제라 여기서는 다루지 않습니다.
정보가 끊기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보여 주는 사건이 있습니다. 인터넷 방송 모델 모집 글을 보고 처음 만난 가해자가 술자리에서 잠든 피해자를 준강간하고 그 장면을 촬영한 사건입니다. 피해자는 스스로 신고한 뒤 국선변호사와 사건을 진행했지만 진행 상황을 전혀 듣지 못한 채 시간만 흘렀고, 가해자 측에서 합의를 요구하는 연락을 받고서야 1심에서 가해자가 법정구속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심앤이는 항소심 공판기일이 한 달밖에 남지 않은 시점에 사건을 맡아 당일 선임계를 내고 기록 복사를 신청해 기록부터 확보했고, 가해자 측 연락을 모두 차단해 대표변호사를 통하도록 바꿨습니다. 이후 대법원에서 무죄 부분에 대한 파기환송 결정을 받아 파기환송심에서 전부 유죄가 인정돼 징역 4년이 확정됐고, 민사에서도 위자료 5,000만 원이 인용됐습니다(사건 보기).
재판에서 의견을 진술하려면 어떻게 합니까?
신청해야 합니다. 형사소송법 제294조의2는 피해자나 법정대리인의 신청이 있으면 법원이 그 피해자를 증인으로 신문하여야 한다고 정하고 있고, 이때 피해의 정도와 결과, 피고인의 처벌에 관한 의견, 그 밖에 사건에 관한 의견을 진술할 기회를 주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미 충분히 진술해 다시 들을 필요가 없거나 공판 진행이 현저히 지연될 우려가 있으면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조문 요지 — 피해자 등이 신청하면 법원은 증인으로 신문하여야 하고, 피해의 정도와 결과 및 피고인의 처벌에 관한 의견을 진술할 기회를 주어야 합니다(형사소송법 제294조의2).
증인으로 나가는 부담이 크다면 피해자 변호사가 재판부의 허가를 받아 법정에서 의견을 말하는 방식도 씁니다. 원칙적으로 피해자 변호사에게 변론권이 인정되지는 않지만, 실무에서는 허가를 받아 발언 기회를 확보하는 일이 드물지 않습니다.
회식 뒤 만취해 정신을 잃은 사이 직장 상사의 차 안에서 유사강간을 당한 사건이 그 예입니다. 가해자는 수사 내내 합의된 성관계였다고 주장했고, 재판에서는 피해 회복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선처를 호소했습니다.
심앤이는 공판기일에 출석해 재판장의 허가를 받은 뒤, 피해 회복 노력이라는 주장이 사실이 아니라는 점, 만취 상태의 피해자가 강하게 저항했는데도 범행을 이어 간 점, 수사 내내 합의였다는 거짓 주장으로 2차 가해를 한 점, 기습 공탁을 하더라도 받을 의사가 없다는 점을 전달했습니다. 재판부는 가해자를 질책했고, 가해자가 처음 제시한 2,000만 원은 최종 6,000만 원으로 올라갔으며 징역 2년 · 집행유예 3년과 성폭력 치료강의 40시간이 선고됐습니다(사건 보기).
신변 보호 조문은 어디까지 막아 줍니까?
제9조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피해자의 명예와 사생활의 평온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하여야 하고, 보복을 당할 우려가 있으면 신변을 보호하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다만 이 조문 자체가 접근금지 명령을 만들어 주지는 않습니다. 실제로 가해자를 떼어 놓는 힘은 스토킹처벌법의 잠정조치처럼 개별 법률의 처분에서 나옵니다.
그래서 신변 보호를 요구할 때는 제9조만 들 것이 아니라, 보복 우려를 구체적인 사실로 적어 잠정조치나 접근금지로 연결해야 합니다. 연락 일시와 횟수, 찾아온 장소, 주고받은 메시지를 날짜별로 정리한 목록이 그 재료가 됩니다.
고등학교 동창이 모텔 방까지 따라 들어와 강간하려다 삽입 직전에 멈춘 사건이 그 흐름을 보여 줍니다. 피해자가 신고를 망설이는 사이 가해자는 일방적으로 연락하고 집 앞까지 찾아오며 신고를 막으려 했습니다.
심앤이는 강간 시도가 있었다는 점을 유사 사안과 판결로 논증하는 한편, 신고를 막으려는 행동이 2차 가해인 동시에 스토킹이라는 점을 의견서로 주장했습니다. 유사강간과 강간미수, 스토킹처벌법 위반이 모두 인정돼 정식기소로 이어졌고, 스토킹이 인정되면서 잠정조치로 접근이 차단됐습니다. 합의금은 가해자 측 제안 2,000만 원에서 7,000만 원까지 올라갔고 징역 2년 · 집행유예 3년이 선고됐습니다(사건 보기). 이별 뒤 이어지는 연락과 방문을 어떻게 기록해 두는지는 스토킹·데이트폭력에 정리돼 있습니다.
범죄피해구조금은 성범죄 피해자도 받을 수 있습니까?
대부분 받지 못합니다. 법이 구조금의 대상을 좁게 정해 두었기 때문입니다. 제3조 제1항 제4호는 구조대상 범죄피해를 사람의 생명 또는 신체를 해치는 죄에 해당하는 행위로 사망하거나 장해 또는 중상해를 입은 것으로 정의하고, 제16조는 그 피해를 배상받지 못한 경우에 구조금을 지급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 구분 | 법에 적힌 요건 | 성범죄 피해자에게 걸리는 지점 |
|---|---|---|
| 구조금 종류 | 유족·장해·중상해 구조금 | 세 가지 어디에도 안 맞는 경우가 많음 |
| 피해 요건 | 사망·장해·중상해 | 신체 손상이 남지 않으면 제외 |
| 장해·중상해 기준 | 대통령령으로 정함 | 정신적 피해는 인정 통로가 좁음 |
| 지급 방식 | 일시금 지급이 원칙 | 치료가 길어질수록 불리 |
| 신청 기한 | 안 날부터 3년, 발생일부터 10년 | 늦은 고소 사건은 기한 다툼 |
표의 오른쪽 칸이 이 제도의 실상입니다. 성범죄 피해의 핵심은 성적 자기결정권의 침해와 그로 인한 정신적 파괴인데, 구조금은 신체 손상의 정도를 기준으로 짜여 있습니다. 살아남은 사람의 피해를 몸에 남은 흉터로만 계산하는 설계는 성범죄 피해자를 처음부터 바깥에 두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확인 없이 포기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중상해에 해당하는지는 대통령령의 기준에 따라 판단하므로 상해 진단과 장기 치료 기록이 있다면 신청 가능성을 확인해 볼 값이 있습니다. 신청 기한은 피해를 안 날부터 3년, 피해가 발생한 날부터 10년입니다.
형사조정 회부, 원치 않으면 응하지 않아도 됩니다
제41조는 검사가 당사자의 신청이나 직권으로 사건을 형사조정에 회부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피해를 실질적으로 회복시키자는 취지입니다. 그런데 성범죄 사건에서 조정 자리는 가해자와 같은 공간에 앉는 것을 뜻하기 때문에, 그 자체가 부담이 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회부는 검사가 하지만 조정에 응할지는 피해자가 정합니다. 원치 않으면 응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서면으로 분명히 밝히면 되고, 응하더라도 조건은 처음부터 문서로 정리해 두는 편이 안전합니다. 절차의 진행 방식과 거절했을 때의 흐름은 형사조정에 정리돼 있습니다.
조문을 살아 있게 만들려면 누가 움직여야 합니까
피해자 쪽입니다. 형사절차에서 당사자는 검사와 피고인이고, 피해자는 법률상 당사자가 아닙니다. 범죄피해자 보호법은 그 구조를 바꾸지 않은 채 참여 기회를 보장하라고 국가에 지시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래서 이 법의 조문은 신청서와 의견서로 옮겨 적었을 때만 작동합니다.
실무에서 실제로 필요한 것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 첫 조사 전에 정보 제공과 절차 참여를 서면으로 요청해 두는 것입니다. 둘째, 보복의 조짐을 날짜와 함께 기록해 두었다가 잠정조치나 접근금지로 연결하는 것입니다. 셋째, 판결 선고 전에 의견 진술 신청을 놓치지 않는 것입니다.
고소 이후 이어지는 연락과 협박, 역고소 같은 행동에 붙는 죄명과 대응은 2차 가해·보복범죄 대응에, 재판 단계에서 의견을 어떤 서면으로 내는지는 재판절차(법원)에 정리돼 있습니다.
법에 적혀 있다는 사실만으로 지켜지는 권리는 없습니다. 조문은 요구할 때만 절차 안으로 들어옵니다. 지금 사건이 어느 단계에 있는지 확인하시고, 그 단계에서 쓸 수 있는 조문부터 서면으로 옮기시기 바랍니다.
자주 묻는 질문
관련 실제 사례
심앤이가 실제로 대리한, 이 주제의 사건 기록이에요. 결과는 사건마다 달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