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쟁이 해결되지 않고 법정 다툼으로 갔을 때 결국 중요한 것은 증거 입니다.
증거의 중요성
분쟁의 양 당사자가 서로 다른 주장을 하는 경우, 그것을 뒷받침할 수 있는 증거의 유무에 따라 다른 결과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특히 형사 절차는 범행과 관련된 증거가 확보되지 않으면 무죄 추정의 원칙에 따라서 처벌받지 않습니다.
그래서 실제 사건을 맡아서 진행하면 증거가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과학과 기술, 그리고 수사 기법의 발전으로 과거보다 훨씬 많은 사건이 해결되고 있습니다.
곳곳마다 CCTV가 있는 요즘, 교묘하게 범죄를 저지른다는 것은 쉽지 않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만큼 대한민국의 치안도 많이 좋아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CCTV를 통한 증거 확보
CCTV는 중요한 증거 자료 중의 하나 입니다.
왜냐하면 가해자의 행동, 이동 동선, 피해 이전의 상황 등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가장 명확한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성범죄의 경우, 가해자와 피해자 단둘만의 은밀하고 사적인 공간에서 범행이 발생하다 보니 범행을 직접적으로 촬영한 CCTV는 확보하기가 어렵지만, 숙박시설로 이동하는 과정이나 구체적인 시간을 입증하는 용도 등으로는 CCTV가 매우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습니다.
또한 피해자의 일관된 진술만으로도 신빙성이 인정되기는 하지만, CCTV 등 간접 증거가 충분히 확보된다면 이러한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높이는 데 더욱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또한 증거가 부족하다면 가해자는 자기 범행을 부인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CCTV로 범행 자체는 아니더라도 어떤 장소에 가해자가 있었고 어디로 이동했다는 동선의 객관적으로 입증할 수 있는 증거가 되기 때문에 더욱 중요합니다.
형법 제299조는 피해자가 항거불능이나 심신미약인 상태를 이용하여 간음하거나 추행한 준강간 또는 준강제추행을 처벌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때 CCTV 영상이 피해자가 만취해 있거나 의식이 없었다는 증거로 활용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유용한 CCTV 영상은 일반적으로 1~2주 정도만 보관하고 대부분 삭제합니다. 또한 수사 기관이 아닌 피해자가 CCTV 영상의 열람을 요청하면 거부당하는 사례도 비일비재합니다.
보통 개인정보라는 이유로 열람과 복사를 거부합니다.
건물 외부에 CCTV가 있는 경우, 건물의 관리인 등 영상 증거를 가지고 있는 당사자는 이러한 증거의 취급에 유의할 수밖에 없습니다.
쉽게 보여주거나 공유했다가 나중에 문제가 될 수도 있기 때문에 매우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행동하는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하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증거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한 피해자 입장에서는 이러한 태도에 상당히 불쾌하고 당황스러울 수 있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CCTV 증거 보전신청
CCTV 영상은 보관 기간이 짧고 금방 삭제하기 때문에 증거로 사용하려면 주의가 필요합니다.
만약 시기를 놓쳐 삭제하고 나면 아무런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삭제되기 전에 증명해야 할 내용과 사유를 작성하여 보전 신청을 해야 합니다 .
형사소송법 제184조는 증거보전의 청구와 그 절차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또한 개인정보보호법은 정보 주체가 개인정보 처리 여부를 확인하고 열람 및 전송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개인정보처리자는 위에 따른 열람 요구를 받았을 때 정해진 기간 내에 정보를 열람할 수 있도록 해야 하고, 위와 같은 조항을 위반하여 열람을 제한하거나 거절할 경우 과태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증거보전청구서에 들어가는 다섯 가지
형사소송법 제184조는 미리 보전해 두지 않으면 그 증거를 쓰기 어려운 사정이 있을 때, 제1회 공판기일 전이라도 판사에게 압수·수색·검증·증인신문·감정을 청구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같은 조는 이 청구를 서면으로 하고 그 사유를 소명하도록 하고 있어서, 전화로 "지워지지 않게 해 달라"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절차가 시작되지 않습니다.
다만 이 청구를 할 수 있는 사람은 검사와 피의자·피고인, 그리고 그 변호인입니다. 고소인인 피해자는 청구서를 직접 법원에 내는 것이 아니라, 담당 수사관과 검사에게 어느 영상을 언제까지 붙들어야 하는지를 서면으로 특정해 요청하는 방식으로 이 절차를 움직이게 됩니다. 그래서 고소장이나 의견서를 낼 때 아래 항목이 미리 채워져 있으면 그만큼 시간을 법니다.
| 청구서 항목 | 적는 내용 | 빠뜨리면 생기는 일 |
|---|---|---|
| 사건의 개요 | 죄명, 발생 일시와 장소, 고소 접수 여부 | 어느 사건의 증거인지 특정되지 않음 |
| 증명할 사실 | 그 영상으로 밝히려는 사실 한 문장 | 대상이 넓어져 판단이 미뤄짐 |
| 증거와 보전 방법 | 대상 카메라의 위치·채널과 압수·검증 중 무엇을 구하는지 | 무엇을 명해야 할지 정해지지 않음 |
| 보전이 필요한 사유 | 언제 덮어쓰기가 되는지, 왜 지금이어야 하는지 | 제184조가 요구하는 급한 사정이 드러나지 않음 |
| 소명자료 | 보관 기간을 확인한 통화·문자, 열람 거부 회신 | 사유가 주장에만 그침 |
이 가운데 결과를 가르는 칸은 네 번째 줄입니다. 보전이 필요한 사유는 심정을 적는 자리가 아니라 날짜를 적는 자리입니다. "관리자에게 물어보니 ○월 ○일이면 자동으로 덮어써진다고 한다"처럼 시한이 특정되어야 지금 움직여야 할 사정이 드러납니다.
삭제와 인멸에 대비하는 체크리스트
증거보전 청구가 판사의 판단을 기다리는 절차라면, 그 판단이 나오기 전까지 피해자가 스스로 해 둘 수 있는 일도 있습니다. 대부분 어렵지 않고, 다만 말로 하느냐 기록으로 남기느냐에서 갈립니다.
| 대비 항목 | 지금 할 수 있는 일 | 남겨 두어야 할 기록 |
|---|---|---|
| 보관 기간 확인 | 건물 관리자나 업주에게 저장 일수와 덮어쓰기 예정일을 묻습니다 | 통화한 날짜와 상대 이름을 적은 메모, 문자 회신 |
| 보존 요청 | 삭제하지 말아 달라는 요청을 문자나 메일로 보냅니다 | 발신 시각이 찍힌 원본 메시지 |
| 열람 거부 | 거부하는 사유를 말이 아니라 글로 받아 둡니다 | 거부 회신 화면과 담당자 이름 |
| 수사기관 연결 | 고소장·의견서에 대상 영상의 위치와 삭제 예정일을 적어 압수와 보전을 요청합니다 | 접수증, 담당 수사관과 주고받은 연락 |
| 상대 기기 | 남은 촬영물이 의심되면 스스로 확인하려 하지 않고 압수수색·포렌식을 요청합니다 | 삭제 여부를 물었을 때 답을 피한 대화 |
| 내 자료 | 대화·사진·통화 기록을 캡처가 아니라 원본 그대로 둡니다 | 기기를 바꾸기 전에 만들어 둔 백업본 |
특히 두 번째와 세 번째 줄은 흘려 넘기지 않으시기 바랍니다. 보존 요청과 거부 회신이 글로 남아 있으면, 나중에 영상이 사라졌을 때 그것이 기간이 지나 자동으로 덮어써진 것인지 요청을 받고도 지운 것인지를 가릴 근거가 됩니다. 열람을 부당하게 거절한 사실 자체도 앞서 본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을 다툴 자료가 됩니다.
증거인멸·위조죄로 다투기 어려운 이유
영상이 사라진 뒤에 "지운 사람을 처벌할 수 없느냐"고 물으시는 분이 많습니다. 형법 제155조는 타인의 형사사건에 관한 증거를 인멸·은닉·위조·변조하거나 위조·변조한 증거를 사용한 사람을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700만 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합니다. 조문만 보면 넓어 보이지만, 실제로 이 죄로 다툴 수 있는 범위는 생각보다 좁습니다.
가장 큰 벽은 타인의 형사사건이라는 요건입니다. 자기가 피의자인 사건의 증거를 스스로 없앤 행위는 방어권의 범위로 보아 이 죄로 처벌하지 않습니다. 가해자가 자기 휴대전화에서 촬영물을 지웠다면 그 자체로는 증거인멸죄가 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가해자의 부탁을 받은 제3자가 대신 지우거나 숨긴 경우에는 성립할 수 있지만, 친족이나 동거 가족이 본인을 위해 한 때에는 처벌하지 않는다는 규정이 따로 있어 걸리는 범위는 다시 좁아집니다.
두 번째 벽은 고의입니다. 보관 기간이 지나 자동으로 덮어써진 영상을 두고 관리자에게 인멸의 고의를 인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보존 요청을 받은 사실이 문자나 메일로 남아 있고 그 뒤에 지웠다는 점이 확인되어야 비로소 다툴 여지가 생깁니다. 앞의 체크리스트에서 요청을 말이 아니라 글로 남기시라고 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세 번째는 위조 쪽입니다. 없던 장면을 만들거나 편집한 영상을 수사기관에 낸다면 증거위조가 문제 될 수 있지만, 사람이 수사기관에서 사실과 다르게 진술하는 것만으로는 증거위조로 보지 않는 것이 판례의 태도입니다. 가해자 쪽 지인이 "그날 멀쩡해 보였다"고 말을 맞춰도 그 진술 자체를 위조죄로 걸기는 어렵습니다.
정리하면 이 조항들은 이미 사라진 영상을 되돌려 주지 못합니다. 증거인멸죄가 인정되더라도 그것은 별개의 처벌일 뿐, 원래 밝히려던 사실은 여전히 남아 있는 자료로 증명해야 합니다. 사후에 책임을 묻는 조항보다 삭제되기 전에 붙드는 절차가 실질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압수수색과 주변 기록으로 증거를 붙든 사건 두 건
첫째, 이별을 통보한 뒤 전 연인이 몰래 찍어 둔 성관계 영상을 보내며 유포하겠다고 협박하고 나체 사진을 요구한 사건입니다. 피해자가 영상을 지웠느냐고 물을 때마다 가해자는 답을 피하면서 남은 것이 더 있는 듯한 말을 흘렸고, 기기 안에 무엇이 남아 있는지는 피해자가 스스로 확인할 방법이 없다는 점이 쟁점이었습니다. 전송받은 영상과 협박 대화를 원본 그대로 둔 채 고소한 뒤 담당 수사관에게 압수수색과 포렌식을 요청해 거주지와 휴대전화를 확보했고, 추가 영상이 없다는 점까지 확인된 상태에서 촬영과 협박·강요가 인정되어 검찰에 송치됐습니다(사건 보기). 촬영물을 빌미로 한 협박과 강요에 대응하는 절차는 촬영물 유포·유포협박에 따로 정리돼 있습니다.
둘째, 고민을 상담하려고 만난 사람이 집으로 데려가, 술을 전혀 마시지 못하는 피해자에게 술을 권해 의식을 잃게 한 뒤 간음한 사건입니다. 밀폐된 집 안에서 벌어져 CCTV를 확보할 수 없었고, 항거불능 상태를 객관적으로 보여줄 자료가 마땅치 않다는 점이 쟁점이었습니다. 피해자는 사건 뒤 그날의 일을 되묻는 대화에서 가해자도 당시 상태를 알고 있었다는 정황을 남겼고, 다음 날 연차를 쓴 기록과 예매해 둔 기차표를 취소한 내역처럼 몸 상태를 보여주는 주변 자료를 함께 모아 준강간으로 검찰에 송치됐습니다(사건 보기).
두 사건은 붙든 자료의 종류가 전혀 달랐지만 순서는 같았습니다. 남아 있을 때 먼저 붙들었고, 스스로 확인할 수 없는 부분은 수사기관의 권한을 빌렸습니다. 압수수색과 포렌식을 어느 단계에서 어떻게 요청하는지는 수사절차(경찰·검찰)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의료계에선 환자의 생사를 결정지을 수 있는 골든타임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법률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사건으로 인한 피해가 발생하고 신속하게, 그리고 정확하게 대처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성범죄의 피해자는 범행으로 인한 육체적, 정신적 충격이 매우 크기 때문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매우 많습니다.
따라서 관련 경험이 풍부한 법률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다면 시기적절하게 고소부터 CCTV 영상 등 증거 확보, 피해자 진술 등에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성범죄 사건에서 증거 확보가 어려울 때 활용 가능한 법적 절차는 증거가 없는 경우에서 정리했어요.
관련 실제 사례
심앤이가 실제로 대리한, 이 주제의 사건 기록이에요. 결과는 사건마다 달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