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기관에서 받는 서류에는 죄명이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카메라등이용촬영)"처럼 적혀 있습니다. 줄여서 성폭력처벌법이라고 부르는 그 법입니다. 괄호 안의 몇 글자와 그 뒤에 붙는 조문 번호가 사건의 무게를 정하는데, 정작 그 번호가 무엇을 뜻하는지 설명해 주는 사람은 없습니다. 먼저 결론을 적자면, 피해자가 절차에서 직접 꺼내 쓸 수 있는 조항은 앞쪽 처벌 조항이 아니라 제27조 국선변호사와 제34조 신뢰관계인 동석처럼 뒤쪽에 있는 보호 조항이고, 그중 상당수는 신청해야 작동합니다.
이 법은 크게 두 덩어리로 나뉩니다. 앞쪽 제3조부터 제15조까지는 어떤 행위를 얼마나 무겁게 처벌할지 정한 처벌 조항이고, 뒤쪽 제21조 이후는 피해자가 절차에서 어떤 보호를 받는지 정한 절차·보호 조항입니다. 그 사이에 낀 제16조부터 제20조까지도 그냥 넘길 자리가 아닙니다. 유죄가 선고될 때 수강명령이나 이수명령을 함께 붙이도록 한 규정, 술이나 약물에 취해 있었다는 이유로 형을 깎아 주는 심신미약 감경을 적용하지 않을 수 있게 한 특례가 여기에 들어 있습니다.
검색하면 앞쪽 처벌 조항만 잔뜩 나옵니다.
아래에 조문마다 무슨 죄를 다루고 법정형이 얼마인지, 보호 조항은 언제 어떻게 챙겨야 하는지를 나눠 정리했습니다. 조문 번호를 외울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내 사건에 붙은 번호가 무엇인지는 알아 두는 편이 낫습니다.
성폭력처벌법이 형법과 따로 있는 이유
형법에도 강간(제297조)과 강제추행(제298조)이 있습니다. 그런데 같은 강간이라도 흉기를 들고 있었는지, 남의 집에 들어와 벌인 일인지, 가해자가 친족인지에 따라 사건의 성격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성폭력처벌법은 그런 사정이 붙었을 때 형법보다 무거운 법정형을 따로 정해 둔 법입니다.
그래서 이 법의 처벌 조항 다수는 "형법 제297조의 죄를 범한 사람이 무엇을 한 경우"라는 형태를 띱니다. 형법 조문을 끌어다 쓰면서 형만 올리는 구조입니다. 피해자 입장에서 보면, 기록에 형법 죄명이 아니라 특례법 죄명이 적혔다는 것은 수사기관이 가중 사유가 있는 사건으로 보고 있다는 뜻입니다.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실제로는 가중 사유가 있는데 형법 죄명만 붙어 입건되는 사건입니다. 집 안까지 따라 들어와 벌어진 일인데 단순 강제추행으로 접수되었다면, 의견서로 적용 법조를 다시 검토해 달라고 요청할 수 있습니다. 죄명은 송치와 기소 단계에서 바뀝니다. 확정된 것이 아니니 초기에 다투는 것이 의미가 있습니다.
처벌 조항 한눈에 보기, 제3조부터 제15조까지
검색이 많은 조문부터 정리했습니다. 표의 형량은 법이 정한 폭이고, 실제 선고형은 사건마다 다릅니다.
| 조문 | 죄명 | 법정형 | 붙는 상황 |
|---|---|---|---|
| 제3조 | 주거침입 강간 등 | 무기 또는 7년 이상 징역 | 집·건물에 들어와 저지른 경우 |
| 제4조 | 특수강간 | 무기 또는 7년 이상 징역 | 흉기 소지, 2명 이상 합동 |
| 제5조 | 친족관계에 의한 강간 | 7년 이상 유기징역 | 친족, 사실상의 친족 |
| 제7조 | 13세 미만 미성년자 강간 | 무기 또는 10년 이상 징역 | 피해자가 13세 미만 |
| 제10조 |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추행 | 3년 이하 징역 또는 1천5백만 원 이하 벌금 | 직장 상사, 감독 관계 |
| 제11조 | 공중 밀집 장소에서의 추행 | 3년 이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 벌금 | 지하철·버스·찜질방 |
| 제13조 | 통신매체이용음란 | 징역 2년 이하, 벌금 2천만 원 이하 | 성적 메시지·음성 전송 |
| 제14조 | 카메라등이용촬영 | 7년 이하 징역 또는 5천만 원 이하 벌금 | 동의 없는 촬영, 무단 유포 |
표에 넣지 않은 조문도 자주 쓰입니다. 제6조는 장애가 있는 피해자를 대상으로 한 경우로, 강간이면 무기 또는 7년 이상 징역입니다. 제8조는 강간 등의 과정에서 상해가 생기거나 상해에 이른 경우입니다. 주거침입·특수강간·장애인 대상·13세 미만 대상 계열이면 무기징역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 친족 사건(제5조 계열)은 무기징역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으로 정해져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상해에는 정신적 기능의 장애도 들어간다는 것이 대법원의 입장이라, 사건 이후 받은 정신과 진단이 죄명 자체를 바꾸는 일이 있습니다.
제12조는 성적 목적으로 화장실이나 목욕탕 같은 다중이용장소에 침입한 경우로 1년 이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 벌금입니다. 촬영에 실패했어도 들어간 사실만으로 성립합니다. 제15조는 미수범 조항입니다. 제3조부터 제9조까지와 제14조·제14조의2·제14조의3의 미수를 처벌합니다. 강간·추행 계열만이 아니라 불법촬영과 딥페이크, 촬영물을 이용한 협박까지 미수 처벌 대상에 들어간다는 뜻입니다. 촬영 버튼을 누르려다 발각된 경우처럼 결과물이 남지 않은 사건이라도 처벌의 문이 닫히지 않습니다.
같은 추행인데 왜 어떤 사건은 벌금이고 어떤 사건은 실형인가요?
적용된 조문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지하철에서 벌어진 추행은 제11조, 직장 상사가 지위를 이용한 추행은 제10조, 흉기가 등장하면 제4조로 갑니다. 세 조문의 법정형은 처음부터 다르게 설계되어 있어서, 같은 단어로 불리는 피해라도 출발선이 다릅니다.
여기에 하나가 더 겹칩니다. 법정형이 낮은 조문이라도 피해자 측이 어떻게 대응했는지에 따라 실제 선고형이 크게 달라진다는 점입니다. 업무상 위력 추행은 형이 무겁지 않다고 알려져 있지만, 위력의 존재를 입증할 자료가 기록에 쌓이면 결과가 달라집니다.
실제로 상사가 업무 지시를 명분 삼아 반복 추행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상하관계만으로는 위력이 인정되지 않는 것이 쟁점이었는데, 가해자가 사과하는 정황이 담긴 대화 녹음을 녹취록으로 만들어 제출하고 사정을 아는 동료를 검찰 측 증인으로 세워 위력 행사를 정면으로 입증했습니다. 결과는 징역 10월 실형과 성폭력 치료강의 40시간이었습니다(사건 보기).
법정형이 낮은 조문이 붙었다는 이유만으로 미리 결과를 접을 필요는 없습니다. 직장에서 벌어진 사건의 위력을 무엇으로 받치는지는 직장 내 성희롱·성추행에 모아 두었습니다.
디지털 성범죄 조항, 제13조부터 제14조의3까지
이 법에서 최근 가장 자주 개정된 부분입니다. 조문이 촘촘하게 나뉘어 있어서, 내 피해가 어디에 해당하는지 알기 어렵습니다.
제13조 통신매체이용음란은 혐오감이나 성적 수치심을 부르는 말·글·그림·영상을 전화나 메신저로 상대에게 도달하게 한 경우입니다. 조문에는 목적 요건이 하나 더 붙어 있습니다. 가해자 자신이나 제3자의 성적 욕망을 자극하거나 채우려는 의도로 보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실무에서 성립 여부가 갈리는 지점이 대체로 여기라, 상대가 "그냥 화가 나서 욕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건이 적지 않습니다.
다만 이 목적이 좁게 읽히는 것은 아닙니다. 대법원은 상대를 성적으로 비하하고 조롱해 수치심을 주면서 스스로 심리적 만족을 얻으려는 마음도 성적 욕망에 포함된다고 보았습니다. 컴퓨터와 그 밖의 통신매체가 조문에 들어 있어 메신저 대화나 다이렉트 메시지도 포함되고, 한 번 보낸 것으로도 성립합니다.
제14조는 촬영 자체를 처벌하는 제1항, 촬영물을 퍼뜨린 경우를 처벌하는 제2항, 그리고 소지·구입·저장·시청을 처벌하는 제4항으로 나뉩니다. 제2항은 촬영 당시에는 동의가 있었더라도 이후 동의 없이 퍼뜨리면 똑같이 적용됩니다. 삭제 요구보다 압수수색이 먼저인 이유와 포렌식으로 증거를 잡는 순서는 불법촬영(몰카)에 정리되어 있습니다.
제14조의2는 얼굴을 합성한 허위영상물, 이른바 딥페이크입니다. 퍼뜨릴 목적이 없어도 만든 것만으로 성립합니다. 2024년 개정으로 '반포할 목적'이라는 요건이 삭제되면서 편집·합성·가공 그 자체에 7년 이하 징역 또는 5천만 원 이하 벌금이 적용되고, 그때 상한도 5년에서 7년으로 올랐습니다. 소지·구입·저장·시청 역시 별도로 처벌됩니다.
여기서 오해가 자주 생깁니다. 가해자가 "퍼뜨리지 않았으니 죄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경우인데, 개정 전 조문을 기준으로 한 이야기입니다. 유포 여부는 성립을 좌우하는 요소가 아니라 형을 정할 때 따지는 사정입니다. 합성물 피해를 확인한 뒤 삭제와 고소를 어떤 순서로 진행하는지는 딥페이크 성범죄에서 다룹니다.
제14조의3은 촬영물을 빌미로 협박하거나 무언가를 하게 만든 경우로, 협박은 1년 이상, 강요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입니다. 벌금형이 아예 없는 조문이라 이 법에서 가장 무거운 축에 속합니다.
피해자가 흔히 헷갈리는 지점: “지웠다”는 말은 제14조의 성립을 없애지 못합니다. 촬영 시점에 이미 죄가 완성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유포되지 않았다는 사정도 제1항에는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피해자 보호 조항, 제27조와 제30조를 중심으로
처벌 조항이 가해자를 향한다면, 아래 조항들은 피해자를 향합니다. 다만 작동 방식이 한 가지가 아닙니다. 법률상 당연히 적용되는 조항과, 신청해야 비로소 움직이는 조항이 섞여 있습니다. 뒤쪽은 가만히 있으면 그대로 지나갑니다.
| 조문 | 보장하는 것 | 작동 방식 | 챙기는 시점 |
|---|---|---|---|
| 제21조 | 공소시효 특례 | 요청 대상 아님 | 법률상 당연 적용 |
| 제24조 | 신원·사생활 비밀 유지 | 요청 대상 아님 | 수사·재판 전 과정 |
| 제27조 | 피해자 국선변호사 선정 | 신청 또는 직권 | 고소 전후, 첫 조사 전 |
| 제30조 | 19세 미만 피해자 영상녹화 | 수사기관 의무 | 원하지 않으면 거부 |
| 제31조 | 재판 심리의 비공개 | 신청 또는 직권 | 공판기일 전 |
| 제34조 | 신뢰관계인 동석 | 신청 | 경찰 조사와 증인신문 |
| 제40조 | 중계장치에 의한 증인신문 | 신청 | 증인 채택이 정해진 뒤 |
| 제41조 | 증거보전 청구 | 청구 | 법정 출석이 어려울 때 |
제27조는 피해자에게 변호사가 없을 때 검사가 국선변호사를 선정할 수 있도록 한 조항입니다. 2012년에 성범죄에서 먼저 시작해 지금은 아동·장애인 학대 등으로 대상이 넓어졌습니다. 직권으로도 선정되지만 신청하면 확실합니다.
제30조는 성격이 다릅니다. 19세 미만 피해자 등의 진술 내용과 조사 과정을 영상으로 녹화해 보존하라고 수사기관에 지운 의무 규정입니다. 피해자가 요청해야 시작되는 절차가 아니라, 대상에 해당하면 검사와 사법경찰관이 원칙적으로 녹화해야 합니다. 같은 이야기를 여러 번 되풀이하게 만들지 않으려는 취지입니다.
그래서 이 조문에서 피해자 측이 행사하는 것은 신청권이 아니라 거부권입니다. 본인이나 법정대리인이 녹화를 원하지 않는다는 뜻을 밝히면 촬영하지 않습니다. 다만 가해자가 친권자 중 한 사람인 경우에는 그렇지 않습니다. 성인 피해자는 제30조의 대상이 아니므로, 첫 조사 자리에서 챙길 것은 제27조와 제34조 쪽입니다.
제27조와 제34조를 첫 경찰 조사 전에 붙여야 하는 이유는 올해 하나 더 생겼습니다. 2026년 10월 2일 시행 개정 형사소송법으로 검사가 피해자를 직접 조사하는 절차가 없어져 첫 경찰조사의 비중이 커집니다. 국선변호사도 신뢰관계인도 없이 혼자 앉아 조사를 마치면, 그 상태의 조서를 들고 이후 절차를 치르게 된다는 뜻입니다. 재편되는 절차의 전모는 개정 형사소송법 정리 쪽에 모아 두었습니다.
재판 단계로 넘어가면 제31조·제40조가 작동합니다. 심리를 비공개로 해 달라고 요청할 수 있고, 증인신문도 가해자와 같은 공간에 앉지 않고 중계장치를 통해 받을 수 있습니다. 재판이 어떤 순서로 흘러가고 어느 지점에서 이런 요청을 넣는지는 재판절차(법원)에서 함께 보시면 이해가 빠릅니다.
제24조·제29조의 실제 적용은 2차 가해·보복범죄 대응에서 다룹니다.
미수와 공소시효, 제15조와 제21조가 시간을 다룹니다
제21조는 공소시효에 관한 특례입니다. 미성년자일 때 입은 피해라면 성년이 된 날을 시효의 출발점으로 잡습니다. 피해 당시 13세 미만이었던 경우 등에는 시효 자체가 적용되지 않는 유형도 있습니다. "너무 오래됐다"는 판단을 혼자 내리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
시효가 지난 것처럼 보여도 다른 조문으로 길이 열리기도 합니다. 오래전 헤어진 연인의 휴대폰 포렌식에서 나체 사진이 나온 사건이 그랬습니다. 촬영 시점을 기준으로 하면 카메라등이용촬영죄의 공소시효는 이미 지난 상태였는데, 가해자가 그 촬영물을 지금까지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로 초점을 옮겼습니다. 소지는 계속되는 동안 시효가 새로 기산되기 때문입니다. 결과는 카메라이용촬영물 소지 혐의로 검찰 송치였습니다(사건 보기).
제15조 미수범 조항도 같은 결의 장치입니다. 행위가 끝까지 이르지 못했다는 이유로 사건이 없던 일이 되지 않도록, 처벌 범위를 미수까지 넓혀 둔 것입니다.
조문 번호를 알면 무엇이 달라지나요?
세 가지가 달라집니다. 첫째, 내 사건의 무게를 가늠할 수 있습니다. 제11조가 붙은 사건과 제4조가 붙은 사건은 앞으로의 절차와 기간부터 다릅니다.
둘째, 죄명이 잘못 붙었을 때 알아챌 수 있습니다. 가중 사유가 분명한데 형법 죄명만 적혀 있다면 그 자체가 의견서에 쓸 내용이 됩니다.
셋째, 보호 조항을 지목해 요청할 수 있습니다. "무섭다"고 말하는 것과 "제34조에 따라 신뢰관계인 동석을 신청한다"고 말하는 것은 기록에 남는 방식이 다릅니다.
조문을 볼 때 흔한 오해 세 가지
첫째, 법정형이 곧 선고형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제14조의 상한이 7년이라고 해서 그 근처가 나온다는 뜻이 아닙니다. 상한과 하한은 판단의 범위일 뿐이고, 그 안에서 어디에 놓일지는 기록이 결정합니다.
둘째, 조문이 하나만 붙는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한 사건에 여러 조문이 함께 적용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촬영과 협박이 같이 있었다면 제14조와 제14조의3이 함께 검토됩니다.
셋째, 고소를 취소하거나 합의하면 사건이 없던 일이 된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성폭력처벌법이 적용되는 범죄는 친고죄가 아닙니다. 2013년에 친고죄 규정이 사라진 뒤로는, 피해자가 처벌까지는 원하지 않더라도 수사와 재판이 그대로 이어집니다. 합의는 형을 정할 때 참작되는 사정일 뿐, 절차를 멈추는 스위치가 아닙니다.
이 점은 피해자에게 불리하게만 작동하지 않습니다. 가족이 반대해도, 주변에서 조용히 넘기라고 해도, 사건을 진행할지는 피해자 본인이 정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관련 실제 사례
심앤이가 실제로 대리한, 이 주제의 사건 기록이에요. 결과는 사건마다 달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