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에서 고소장 양식을 받아 열어 보면 대개 빈칸 몇 개가 전부입니다. 고소인, 피고소인, 고소취지, 범죄사실, 증거자료라는 제목만 있고, 그 아래에 무엇을 얼마나 써야 하는지는 어디에도 적혀 있지 않습니다. 먼저 결론을 말씀드리면, 어떤 양식 파일을 받았는지는 결과를 가르지 않습니다. 정해져 있는 것은 서식이 아니라 채워야 할 항목이고, 항목마다 수사관이 확인하려는 정보가 따로 있습니다.
법은 고소를 서면으로 하거나 말로 할 수 있다고 정해 두었을 뿐, 어떤 서식을 쓰라고 정해 두지 않았습니다. 목격자도 물증도 드문 성범죄 사건에서는 그 빈칸을 어떻게 채웠는지가 수사의 방향을 거의 결정합니다.
아래에는 고소장에 들어가는 항목 전문과 함께, 성범죄 사건에서 실제로 쓰이는 범죄사실 예문 세 가지와 범죄일람표 서식을 그대로 적어 두었습니다. 항목 표와 예문, 일람표를 화면에서 긁어 한글이나 워드 문서에 붙여 넣으면 별도의 양식 파일을 내려받지 않아도 고소장 한 장의 뼈대가 그대로 만들어집니다. 동그라미 자리만 자신의 사건에 맞게 바꾸면 됩니다.
고소장에는 서식이 없고, 채워야 할 항목이 있습니다
경찰이 사건을 처음 만나는 통로는 피해자의 얼굴이 아니라 종이 몇 장입니다. 그 종이가 억울함을 호소하는 편지로 읽히면 수사는 진위를 가리는 쪽으로 흐르고, 어떤 죄로 무엇을 다투는지가 또렷한 설계도로 읽히면 수사는 그 궤도를 따라갑니다. 항목을 빠짐없이 채우는 일이 그래서 형식의 문제가 아닙니다.
| 항목 | 적는 내용 | 자주 빠뜨리는 것 |
|---|---|---|
| 고소인 | 이름, 생년월일, 주소, 연락처 | 우편이 닿는 주소 |
| 피고소인 | 아는 인적사항 전부 | 모르면 성명불상과 계정 주소 |
| 고소취지 | 죄명과 처벌을 구하는 문장 | 죄명 병기 |
| 범죄사실 | 일시, 장소, 행위, 결과 | 행위의 구체적 묘사 |
| 고소이유 | 가해자와의 관계, 전후 경위 | 신고가 늦어진 사정 |
| 증거자료 | 번호를 붙인 증거 목록 | 원본 보관 여부 |
| 관련사건 진술 | 같은 일로 진행 중인 절차 | 민사소송, 회사 징계 |
| 작성일과 서명 | 날짜, 고소인 서명 또는 날인 | 제출할 경찰서 이름 |
마지막 두 항목을 형식이라 여겨 비워 두는 분들이 많습니다. 관련사건 진술은 회사 징계나 민사소송이 함께 진행 중일 때 특히 중요합니다. 나중에 다른 절차의 기록이 수사에 들어오면 왜 미리 밝히지 않았느냐는 질문을 받게 되고, 그 질문 하나가 진술 전체의 신빙성 논쟁으로 번지기 때문입니다.
고소취지, 죄명을 병기해 한 문장으로 씁니다
고소취지는 결론입니다. 누구를 어떤 죄로 처벌해 달라는 것인지 한 문장으로 적으면 끝입니다. 길게 쓸 필요가 없고, 여기에 사건 설명을 섞으면 오히려 읽는 사람이 결론을 찾지 못합니다.
행위가 하나일 때: “피고소인을 강제추행죄(형법 제298조)로 고소하오니 처벌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죄명이 여럿일 때: “피고소인을 강제추행죄(형법 제298조) 및 모욕죄(형법 제311조)로 고소하오니 엄히 처벌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죄명을 정확히 몰라도 괜찮습니다. 죄명은 고소장에 적은 그대로 굳는 것이 아니라 수사 과정에서 다투어지고 실제로 바뀝니다. 다만 하나의 행위가 여러 죄에 걸칠 수 있다면 처음부터 나란히 적는 편이 낫습니다. 성적인 발언과 신체 접촉이 함께 있었던 사건에서 추행만 적으면 발언 부분이 수사 대상에서 빠질 수 있습니다.
죄명별 범죄사실 예문 세 가지
범죄사실은 고소장의 심장입니다. 담아야 하는 것은 감정이 아니라 일시, 장소, 행위, 결과 네 가지이고, 이 네 가지가 한 문장에 모여야 행위 하나가 비로소 특정됩니다.
다만 네 가지로 끝나지 않는 죄명이 있습니다. 통신매체이용음란은 성적 욕망을 유발하거나 만족시킬 목적이 있어야 성립하고, 강제추행은 폭행이나 협박이라는 수단이 요건입니다. 죄명에 따라 목적이나 수단 같은 요건이 더 붙으므로, 그 요건까지 문장에 들어가야 범죄사실이 완성됩니다. 아래 세 예문은 성범죄 고소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형태입니다.
강제추행(행위가 한 번인 경우)
“피고소인은 2025. 5. 17. 23
서울 ○○구 ○○로 ○○ 소재 ○○ 주점 앞 노상에서, 고소인의 의사에 반하여 고소인의 어깨를 감싸 안고 허리를 손으로 쓰다듬어 고소인을 강제로 추행하였습니다.”
통신매체이용음란(온라인으로 성적 메시지를 받은 경우)
“피고소인은 2025. 6. 3. 01
같은 날 02 불상의 장소에서, 자신의 성적 욕망을 유발하고 만족시킬 목적으로, 인스타그램 계정 ○○○을 이용하여 고소인에게 성적 수치심을 일으키는 사진 ○장과 메시지 ○○건을 전송하였습니다.”
반복 추행(회수가 여러 번인 경우)
“피고소인은 2025. 3.경부터 2025. 8.경까지 서울 ○○구 ○○로 ○○ 소재 ○○ 주식회사 사무실 등에서, 별지 범죄일람표 기재와 같이 총 ○○회에 걸쳐 고소인의 팔과 등을 만지는 등 고소인을 강제로 추행하였습니다.”
예문 1과 3에 붙은 "의사에 반하여, 강제로 추행하였다"는 실무 공소사실에서 굳어진 관용 표현입니다. 법이 정한 강제추행의 문언은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을 추행하는 것이므로, 이 자리는 폭행이나 협박이 있었다는 점이 드러나게 적는 자리라고 이해하시는 편이 정확합니다. 갑자기 몸을 만지는 기습추행이라면 추행 행위 자체가 폭행에 해당하므로, 손이 어디에 어떻게 닿았는지를 구체적으로 적으면 그 요건이 문장 안에서 채워집니다.
반대로 그날 왜 그 자리에 있었는지, 얼마나 무서웠는지는 범죄사실이 아니라 고소이유에 씁니다. 두 항목을 섞으면 한 문장에서 특정되어야 할 정보가 흩어집니다.
시각이 기억나지 않을 때가 문제입니다. 이때 억지로 하나의 시각을 적으면 나중에 카드 내역이나 통화 기록과 어긋나 진술이 흔들립니다. 21:00경부터 22:00경 사이처럼 폭을 두어 적는 편이 안전합니다. 날짜만 확실하고 시각이 불확실하다면 그 사실을 그대로 적어도 됩니다.
범죄일람표 서식과 채우는 법
피해가 여러 번 쌓인 사건은 범죄사실 문단을 아무리 길게 써도 읽는 사람의 머리에 남지 않습니다. 이때 쓰는 것이 범죄일람표입니다. 회차마다 한 줄을 만들어 표로 붙이면, 뭉뚱그려 보이던 일들이 각각 하나의 범죄로 나뉘어 특정됩니다. 스토킹, 직장 내 반복 추행, 악플과 성적 메시지처럼 건수가 쌓이는 사건에서 특히 그렇습니다.
아래는 앞의 예문 3처럼 직장에서 2025년 3월부터 8월까지 추행이 반복된 사건의 별지 1, 강제추행 범죄일람표 서식입니다.
| 연번 | 일시 | 장소 | 행위 | 증거 |
|---|---|---|---|---|
| 1 | 2025. 3. 14. 14 | 본사 3층 회의실 | 어깨를 감싸 안음 | 동료 ○○○ 사실확인서(증 제3호증) |
| 2 | 2025. 4. 2. 12 | 구내식당 옆 복도 | 손등을 쓰다듬음 | 당일 메모(증 제4호증) |
| 3 | 2025. 5. 9. 19 | 회식 장소 ○○ 주점 | 허리를 손으로 만짐 | 카드 결제 내역(증 제5호증) |
| 4 | 2025. 7. 8. 09 | 사무실 복도 | 팔뚝을 잡아당김 | 동료 ○○○ 진술(증 제6호증) |
| 5 | 2025. 8. 21. 18 | 지하 주차장 | 등을 쓸어내림 | 당일 메모(증 제7호증) |
표를 만들 때 지킬 원칙이 몇 가지 있습니다. 첫째, 왼쪽 끝에 연번을 붙이고 범죄사실 문단의 총 회수와 표의 줄 수를 맞춥니다. 위 표는 다섯 줄이므로 문단에는 총 5회로 적습니다. 둘째, 증거 칸에는 첨부한 증거의 번호를 함께 적어 대조가 한 번에 되게 합니다.
셋째, 성격이 다른 피해는 표를 나눕니다. 위 표에는 강제추행만 담았고, 같은 기간에 받은 성적 메시지나 신체를 빗댄 발언은 죄명이 다르므로 별지 2, 별지 3으로 따로 세웁니다. 온라인 피해는 장소 칸이 사실상 비므로 열 구성도 달라집니다. 직장에서 반복된 추행을 어떤 단위로 나눠 세우는지는 직장 내 성희롱·성추행에서 함께 보실 수 있습니다.
별지 2, 통신매체이용음란 범죄일람표의 한 줄 예시
“1 | 2025. 6. 21. 22
| 사내 메신저 | 성적 내용의 메시지 1건 전송 | 메신저 캡처(증 제8호증)”
기억이 선명한 회차와 흐릿한 회차를 같은 확신으로 적지 않는 것도 중요합니다. 흐릿한 회차는 일시 칸에 대략의 기간을 적고, 그렇게 적은 이유를 표 아래 한 줄로 덧붙이면 됩니다. 정확하지 않은 항목을 억지로 채우기보다, 확실한 회차만으로 표를 세우고 나머지는 고소 이후에 보충하는 편이 사건 전체에 유리합니다.
증거자료 목록은 번호로 본문과 묶습니다
증거는 많이 내는 것보다 찾아지게 내는 것이 낫습니다. 첨부 순서대로 증 제1호증, 증 제2호증처럼 번호를 붙이고, 목록에 번호와 이름과 입증하려는 사실을 한 줄씩 적습니다. 범죄사실이나 일람표에서 그 번호를 그대로 불러 주면 수사관이 서류를 뒤지지 않아도 됩니다.
앞의 일람표에서 증거 칸에 적은 번호가 바로 이 목록의 번호입니다. 두 곳의 번호가 어긋나면 표 한 줄을 볼 때마다 자료를 다시 찾아야 하므로, 표를 완성한 뒤 목록과 대조해 번호를 맞추는 작업을 마지막에 한 번 하시는 편이 좋습니다.
온라인 피해라면 보존 방식이 승부처가 됩니다. 화면 캡처는 계정 이름과 날짜, 시각이 함께 보이게 찍고, 게시물은 주소를 함께 저장해 둡니다. 캡처만 있으면 위조 시비가 붙을 수 있으므로 대화 내역은 원본 파일 형태로도 내려받아 두는 편이 안전합니다. 계정이 익명이거나 사칭이어도 특정할 방법이 있으니 지워질 것 같다고 포기하지 않아도 됩니다. 공개 계정 피해의 증거 정리는 인플루언서·유명인 피해자에서 더 자세히 다룹니다.
정신과 진료를 받고 계시다면 진단서와 진료 내역도 증거 목록에 넣습니다. 피해의 크기를 보여 주는 자료이기도 하지만, 사건에 따라서는 죄명 자체를 바꾸는 자료가 되기도 합니다.
고소장은 어디에 내고, 그 뒤 절차는 어떻게 되나요?
이 글을 쓰는 시점에는 검찰청에 직접 내는 길도 남아 있지만, 2026년 10월 2일부터는 고소와 고발을 경찰에만 할 수 있게 되어 성범죄 고소장은 경찰서에 내게 됩니다. 사건이 일어난 곳이나 거주지의 관할 경찰서 민원실에 직접 접수하거나 우편으로 보낼 수 있고, 접수되면 성범죄 사건은 여성청소년수사팀에 배정됩니다. 그 뒤 피해자 조사를 거쳐 사건은 송치 또는 불송치로 갈립니다.
같은 날 시행되는 개정 형사소송법으로 검사가 피해자를 직접 조사하는 절차가 없어져 첫 경찰조사의 비중이 커지고, 그 조사의 밑그림이 되는 고소장의 무게도 함께 커집니다(개정 내용 정리).
접수부터 처분까지 각 단계에서 피해자가 쓸 수 있는 카드는 수사절차(경찰·검찰)에서 이어서 보실 수 있습니다.
고소장을 낸 뒤 빠뜨린 사실을 발견하면 어떻게 하나요?
고소보충서를 내면 됩니다. 처음 고소장에 담지 못한 행위를 추가하거나, 뒤늦게 찾은 증거를 제출하거나, 범죄일람표에 회차를 덧붙이는 방식입니다. 고소를 다시 할 필요가 없고 사건번호는 그대로 이어집니다.
지나간 일을 뒤늦게 떠올리는 것은 피해자에게 흔한 일입니다. 조사를 받다가 잊고 있던 장면이 돌아오기도 하고, 오래된 메신저를 뒤지다 증거가 나오기도 합니다. 그때마다 보충하면 되므로, 완벽한 고소장을 쓰려다 접수 자체를 미루지 않는 편이 낫습니다.
범죄일람표로 사건의 크기를 보여 준 두 건
첫째, 입사 동기로 만나 헤어진 상대가 재회를 요구하며 자살 협박까지 이어 간 사건입니다. 문자와 통화, 사내 메신저를 모아 보니 스토킹 423회와 상습 협박 54회로 피해가 약 500건에 달했고, 이를 하나의 범죄일람표로 정리해 120페이지 분량의 고소장으로 만들었습니다. 수임 나흘 만에 접수해 잠정조치와 경고조치를 먼저 받아냈고, 사건은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됐습니다(사건 보기). 재회 요구와 반복 연락이 어떤 죄로 나뉘어 다뤄지는지는 스토킹·데이트폭력에 정리돼 있습니다.
둘째, 직속 상사가 음담패설과 신체 접촉을 반복하다 자진 퇴사로 회사 징계까지 피해 간 사건입니다. 폐쇄회로 영상 같은 직접 증거가 없어 여러 차례의 추행을 어떻게 특정하느냐가 쟁점이었는데, 동료들의 사실확인서를 받아 각 행위를 날짜와 장소별로 나눈 범죄일람표를 만들었습니다. 담당 수사관이 조사가 수월했다고 말할 만큼 정리가 됐고, 모욕과 강제추행이 모두 인정돼 송치됐습니다(사건 보기).
두 사건의 공통점은 새로운 증거를 찾아낸 것이 아니라, 이미 가지고 있던 자료를 읽히는 형태로 바꿔 놓았다는 점입니다. 흩어져 있으면 사소한 연락 하나로 보였을 일들이 표 위에 시간순으로 놓이는 순간 상습성과 고의를 드러냈습니다. 고소장을 쓰는 일은 결국 없는 사실을 만드는 일이 아니라, 있는 사실을 수사기관이 볼 수 있는 자리에 놓는 일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관련 실제 사례
심앤이가 실제로 대리한, 이 주제의 사건 기록이에요. 결과는 사건마다 달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