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서에서 상담을 마치고 나오면서 "폭행으로 접수됐습니다"라는 말만 듣고 오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겪은 일은 그 한 줄이 아닙니다. 몇 달에 걸쳐 맞았고, 나가지 못하게 막혔고, 헤어지자고 하자 죽이겠다는 말을 들었고, 이별 뒤에는 집 앞에 찾아왔습니다. 그래서 신고 단계에서 가장 먼저 할 일은 겪은 일을 한 덩어리로 두지 않고 행위 단위로 나눠 각각에 죄명을 붙여 접수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접수된 죄명이 그 뒤 절차의 범위를 정한다는 점입니다. 조사에서 묻는 질문도, 기록에 남는 사실도, 나중에 합의할 때 무엇을 대상으로 하는지도 처음 잡힌 죄명을 따라갑니다. 폭행 하나로 시작하면 나머지 행위는 조서 밖에 남습니다.
이 글은 데이트폭력에서 실제로 함께 붙는 죄명을 행위별로 정리한 표, 폭행만 떼어 합의했을 때 잃는 것, 그리고 합의서에 반드시 들어가야 할 접근금지·위약벌 조항을 다룹니다.
데이트폭력이라는 죄명은 따로 없습니다
형법에도 특별법에도 '데이트폭력'이라는 이름의 죄는 없습니다. 연인 사이에서 벌어졌다는 사정은 죄명을 만들지도, 깎아 주지도 않습니다. 그 자리에서 벌어진 행위 하나하나가 각각의 죄명으로 평가될 뿐입니다.
그래서 사건을 "연인끼리 다투다 생긴 일"로 뭉뚱그리면 손해를 보는 쪽은 언제나 피해자입니다. 반대로 행위를 날짜와 함께 나눠 적고 각각에 죄명을 붙이면, 수사기관이 재는 사건의 무게 자체가 달라집니다. 실제로 하나로 이어져 보이던 괴롭힘을 여러 죄명으로 나눠 특정해 전부 송치된 사건들이 있습니다.
사귀는 사이였다는 점이 성적 자기결정권을 없애지도 않습니다. 대법원은 부부 사이에도 강간죄가 성립한다고 판단한 바 있습니다(2012도14788 전원합의체 판결). 연인이었다는 사정만으로 그날의 동의가 있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행위별로 붙는 죄명과 법정형 조합표
아래 표는 데이트폭력 상담에서 반복해 나오는 행위를, 붙는 죄명과 법정형, 그때 남겨야 할 자료로 묶은 것입니다. 신고 전에 한 번 훑어보시면 무엇을 빠뜨리고 있는지가 보입니다.
| 있었던 일 | 붙는 죄명 | 법정형(징역) | 남겨야 할 자료 |
|---|---|---|---|
| 밀치고 잡아끌었다 | 폭행 | 2년 이하 징역 | 112 신고 이력, 현장 사진 |
| 맞아서 다쳤다 | 상해 | 7년 이하 징역 | 상해진단서, 상처 사진 |
| 죽이겠다고 말했다 | 협박 | 3년 이하 징역 | 메시지 캡처, 통화 녹음 |
| 못 나가게 막았다 | 감금 | 5년 이하 징역 | 그 시간대 통화·위치 기록 |
| 집 앞에 찾아와 문을 열려 했다 | 주거침입 | 3년 이하 징역 | 공동현관 기록, 문 앞 영상 |
| 거부했는데 계속 연락했다 | 스토킹범죄 | 3년 이하 징역 | 날짜별 연락 기록 일지 |
| 거부했는데 성관계를 강요했다 | 강간 | 3년 이상 징역 | 직후 메시지, 진료 기록 |
| 영상을 뿌리겠다고 했다 | 촬영물이용협박 | 1년 이상 징역 | 협박 대화 원본, 파일 정보 |
표에는 징역 상한만 적었습니다. 여기 적힌 죄 대부분은 벌금형을 함께 두고 있어서, 폭행·협박·주거침입은 500만 원 이하, 감금은 700만 원 이하, 상해는 1천만 원 이하 벌금으로도 처벌할 수 있고 스토킹범죄는 벌금 상한이 3천만 원까지 올라갑니다. 반대로 강간과 촬영물이용협박에는 벌금형이 아예 없어, 유죄가 인정되면 남는 선택지가 징역형뿐입니다. 영상이나 사진을 빌미로 한 협박과 그 뒤의 유포에 대응하는 절차는 촬영물 유포·유포협박에 따로 정리돼 있습니다.
표에 넣지 못한 죄명도 있습니다. 폭로를 빌미로 돈을 요구해 받아 갔다면 공갈이고, 나를 사칭한 계정이나 공개 게시물로 사생활을 퍼뜨렸다면 명예훼손·모욕이 함께 붙습니다. 성적으로 조롱하는 메시지는 단순 욕설이 아니라 통신매체이용음란에 해당합니다. 물건이나 반려동물이 피해를 입었다면 재물손괴가 따로 성립합니다. 단단한 물건으로 다쳤다면 상해가 아니라 특수상해로 무거워지므로, 상처만이 아니라 맞은 물건 자체도 사진으로 남겨 두시는 편이 좋습니다.
죄명의 개수는 단순한 숫자가 아닙니다. 여러 죄가 함께 기소되면 형을 정할 때 가중되는 구조여서, 벌금으로 끝날 것 같던 사건이 실형이 논의되는 사건으로 성격이 바뀝니다.
폭행 하나로 접수하면 나머지는 어디로 갈까요?
조사 범위 밖으로 밀려납니다. 조서의 질문은 접수된 죄명을 중심으로 짜이기 때문에, 협박이나 감금에 관한 질문 자체가 나오지 않고 진술도 남지 않습니다. 나중에 고소보충서나 의견서로 다시 넣을 수는 있지만, 그때는 이미 대화 기록이 사라지거나 영상 보관 기간이 지난 뒤일 수 있습니다.
시점 문제도 생깁니다. 2026년 10월 2일 시행 개정 형사소송법으로 검사가 피해자를 직접 조사하는 절차가 없어져, 경찰에서 하는 첫 진술의 비중이 커집니다. 바뀌는 절차 전반은 개정 내용 정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준비는 어렵지 않습니다. 첫 조사 전에 있었던 일을 시간순으로 적고, 각 줄 옆에 위 표의 죄명을 붙여 보십시오. 날짜가 기억나지 않으면 "6월 초순"처럼 범위로 적어도 됩니다. 그 목록이 그대로 진술의 뼈대가 되고, 조사관이 놓친 항목을 피해자가 짚을 수 있게 해 줍니다.
가해자가 쌍방폭행을 주장할 때
수사가 시작되면 가해자가 자신도 맞았다며 쌍방으로 몰아가는 일이 흔합니다. 이때 피해자가 가장 많이 하는 실수는 밀치거나 팔을 잡았던 사실을 숨기는 것입니다. 숨긴 사실이 나중에 드러나면 진술 전체의 신빙성이 흔들립니다.
빠져나오려고 손을 뻗은 행동은 공격이 아니라 방어입니다. 있는 그대로 말하되 그 순간의 상황을 함께 진술하시면 됩니다. 체격과 힘의 차이, 목이 눌리거나 밀폐된 공간에 있던 정황, 그리고 먼저 112에 신고한 쪽이 누구였는지가 방어와 가해를 가르는 자료가 됩니다.
사건 직후의 병원 진료기록과 상처 사진, 신고 이력은 이 국면에서 가장 강한 증거입니다. 진단서를 받아 둘지 망설이는 사이 멍이 옅어지므로, 통증이 크지 않더라도 기록만은 남겨 두시기를 권합니다. 신고 직후 받을 수 있는 접근금지와 잠정조치의 순서는 스토킹·데이트폭력에 단계별로 정리돼 있습니다.
폭행만 합의하면 무엇을 잃게 되나요?
합의의 효과가 죄명마다 다르기 때문에, 폭행 하나만 놓고 서명하면 나머지 죄명에 대한 협상력이 함께 사라집니다. 폭행죄는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고 하면 그것으로 절차가 끝나는 죄입니다. 반면 강간을 비롯한 성범죄, 스토킹범죄, 주거침입은 합의해도 처벌 절차 자체는 이어집니다.
여기서 가해자 측이 노리는 지점이 생깁니다. 가해자 측이 먼저 써 오는 합의서 초안에는 "이 사건과 관련한 일체"처럼 범위를 넓게 잡는 문구가 들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폭행 하나로 접수된 사건에서 그 문구에 서명하면, 아직 특정하지 못한 행위까지 효력이 미칩니다. 다만 미치는 효력의 내용은 죄마다 다릅니다. 폭행·협박처럼 처벌불원 의사로 절차가 끝나는 죄는 그 죄까지 함께 종결되고, 감금이나 강간처럼 반의사불벌죄가 아닌 죄는 절차 자체는 이어지되 양형 감경 사유와 민사 부제소의 범위에 묶입니다.
금액도 달라집니다. 합의금에는 정해진 액수가 없고 폭력의 정도와 피해, 증거의 명확성, 성범죄 결부 여부를 종합해 정해집니다. 사건이 폭행 하나로 평가되면 협상의 출발선 자체가 낮게 잡힙니다. 죄명을 먼저 특정하고 협상에 들어가는 순서가 중요한 이유이고, 진행 방식과 금액 기준은 합의금·합의대행에서 이어 보실 수 있습니다.
합의하면 스토킹 처벌도 없어지나요?
없어지지 않습니다. 스토킹범죄는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로 처벌을 막던 조항이 폐지되어, 합의하더라도 처벌 자체는 가능합니다. 성범죄 역시 친고죄나 반의사불벌죄가 아니고, 주거침입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점은 피해자에게 불리한 사실이 아니라 지렛대입니다. 합의가 처벌을 없애지 못하고 양형에만 반영된다면, 돈만 받는 합의 대신 안전을 조건으로 붙이는 합의를 설계할 수 있습니다. 접근금지, 연락 금지, 촬영물 폐기 확약을 조건으로 걸고 그 대가로 처벌불원 의사를 정리하는 방식입니다.
다만 한 번 한 합의는 원칙적으로 되돌릴 수 없습니다. 서명 전에 문구를 검토받으시고, 무엇을 얻고 무엇을 포기하는지 항목으로 적어 비교해 보시기를 권합니다.
합의서에 넣는 접근금지·위약벌 특약
합의서는 돈의 액수를 적는 문서가 아니라 합의 이후의 생활을 정하는 문서입니다. 아래 일곱 항목은 빠졌을 때 실제로 문제가 되는 조항들입니다.
| 넣을 조항 | 빠졌을 때 생기는 일 | 문서에 쓸 표현 |
|---|---|---|
| 범행 인정·사과 | 돈이 목적이었다고 몰림 | 날짜와 행위를 적어 인정 |
| 연락 금지 | 지인을 통한 연락은 허용됨 | 제3자를 거친 연락도 금지 |
| 접근 금지 | 집·직장 앞 대기가 반복됨 | 생활 반경 거리 기준을 명시 |
| 위약벌 | 어겨도 대가가 없음 | 1회 위반마다 지급액 특정 |
| 소제기금지 | 무고·명예훼손 역고소 | 민형사상 조치를 하지 않음 |
| 촬영물 미소지 확약 | 파일이 어딘가 남아 있음 | 클라우드·저장매체까지 포함 |
| 합의 범위 특정 | 특정 안 된 죄명까지 포함 | 대상 행위를 날짜로 열거 |
가장 자주 빠지는 것이 위약벌입니다. 접근하지 않겠다는 약속은 어겼을 때 물어야 할 대가가 적혀 있어야 지켜집니다. 지급이 분할이라면 한 번만 늦어도 나머지를 한꺼번에 청구할 수 있다는 조항과 지연이자를 함께 넣습니다.
넣을 문장: “가해자는 본인은 물론 제3자를 통해서도 피해자에게 연락하지 아니하고, 피해자의 주거·직장으로부터 일정 거리 이내에 접근하지 아니하며, 이를 1회 위반할 때마다 금 ○○○만 원을 지급한다.”
지울 문장: “당사자는 이 사건에 관하여 피해 사실이 없었음을 확인한다.” — 합의는 더 이상 법적으로 다투지 않겠다는 약속일 뿐, 피해 자체가 없었다고 적는 확인서가 아닙니다.
가해자 측 초안에 진술을 번복하거나 탄원서를 써 달라는 조건이 붙어 있다면 응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의무 없는 행위를 조건으로 거는 합의는 그 자체가 서명하면 안 된다는 신호입니다.
합의 뒤 보복 협박·소문에 붙는 죄명은 2차 가해·보복범죄 대응에 정리했습니다.
죄명을 나눠 특정해 결과가 달라진 사건 세 건
첫째, 연인이 촬영을 강요하고 거절하자 옷걸이로 때리기 시작해 유포 협박과 금전 요구까지 이어진 사건입니다. 폭행 한 건으로 두지 않고 폭행·공갈·강간·촬영물이용협박·촬영물반포로 혐의를 나눠 정리하고 구속영장 심사에서 엄벌을 호소해, 가해자가 구속된 상태로 검찰에 송치됐습니다(사건 보기). 같은 사건의 재판 단계에서는 가해자가 압수된 휴대폰을 돌려 달라고 신청하자 재유포와 보복 위험을 들어 기각을 구했고, 죄질이 그대로 인정되어 징역 5년 실형과 휴대폰 몰수, 취업제한 5년이 선고됐습니다(재판 단계 기록).
둘째, 이별을 통보한 뒤 과거 연인이 성적인 대화를 SNS에 올리고 영상으로 압박하다가, 만난 자리에서 겁을 먹은 상태를 이용해 성행위를 강요한 사건입니다. 명예훼손과 모욕, 촬영물이용협박, 유사강간과 강간을 모두 담은 고소보충서와 세 차례의 의견서로 혐의 전부가 검찰에 송치됐습니다(사건 보기).
셋째, 다툼 끝에 집으로 찾아온 연인이 목을 조르고 폭행해 반려견까지 숨진 사건입니다. 가해자가 쌍방 폭행을 주장했지만 체격 차이와 방어 행위의 성격을 짚어 반박했고, 가해자만 폭행·재물손괴로 송치됐습니다(사건 보기).
세 사건의 공통점은 분명합니다. 겪은 일을 하나의 덩어리로 두지 않고 행위 단위로 쪼개 각각에 죄명을 붙였다는 점입니다. 사건이 특별해서가 아니라, 기록하는 방식이 달랐기 때문에 결과가 달라졌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관련 실제 사례
심앤이가 실제로 대리한, 이 주제의 사건 기록이에요. 결과는 사건마다 달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