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의 없는 성관계는 때리거나 위협한 사실이 없어도 처벌될 수 있습니다. 술이나 잠 때문에 저항할 수 없었다면 준강간, 상대가 상사나 지도교수였다면 업무상 위력 간음, 피해자가 16세 미만이고 가해자가 성인이었다면 의제강간이 적용됩니다. 강간죄 하나만 떠올리고 "맞지는 않았으니 안 되겠다"고 접으실 일이 아닙니다.
다만 우리 법에는 '동의 없이 한 성관계' 자체를 처벌하는 조문이 없습니다. 그래서 피해자는 자기 사건이 어느 조문의 문을 통과할 수 있는지를 먼저 찾아야 합니다. 문은 여러 개이고, 문마다 검사가 증명해야 하는 것이 다릅니다.
이 글은 상황별 적용 죄명을 한 장의 표로 먼저 보여 드리고, 준강간, 위력, 미성년자·장애인, 강제추행 순서로 각 경로의 요건과 실제 사건을 살핀 뒤, 경로별 입증 포인트와 그래도 남는 공백을 정리했습니다.
동의 없는 성관계 처벌, 상황별로 적용되는 죄명은 무엇입니까?
아래 표는 죄명이 아니라 피해 상황에서 출발합니다. 왼쪽 칸에서 내 사건과 가까운 줄을 찾으신 뒤 오른쪽으로 읽으시면 됩니다. 법정형은 간음을 기준으로 적었습니다.
| 피해 상황 | 적용 죄명(조문) | 폭행·협박 대신 보는 것 | 법정형 |
|---|---|---|---|
| 술·수면·약물로 저항할 수 없었다 | 준강간(형법 제299조) | 심신상실·항거불능과 그 이용 | 징역 3년 이상 |
| 상사·고용주·지도교수 등 보호·감독 관계였다 | 업무상 위력 간음(형법 제303조 제1항) | 위계 또는 위력 | 징역 7년 이하 · 벌금 3,000만 원 이하 |
| 같은 관계에서 추행을 당했다 | 위력에 의한 추행(성폭력처벌법 제10조 제1항) | 위계 또는 위력 | 징역 3년 이하 · 벌금 1,500만 원 이하 |
| 피해자가 13세 미만이다 | 의제강간(형법 제305조 제1항) | 나이만 봄, 동의 무관 | 징역 3년 이상 |
| 피해자가 13세 이상 16세 미만, 가해자가 19세 이상이다 | 의제강간(형법 제305조 제2항) | 나이만 봄, 동의 무관 | 징역 3년 이상 |
| 19세 미만 피해자를 속이거나 지위·힘으로 눌렀다 | 위계·위력 간음(아청법 제7조 제5항) | 위계 또는 위력 | 무기 또는 징역 5년 이상 |
| 피해자에게 장애가 있다 | 장애인 위계·위력 간음(성폭력처벌법 제6조 제5항) | 위계 또는 위력 | 징역 5년 이상 |
| 피해자가 심신미약 상태의 성인이다 | 심신미약자 간음(형법 제302조) | 위계 또는 위력 | 징역 5년 이하 |
| 기습적으로 만지거나 입을 맞췄다 | 강제추행(형법 제298조) | 유형력 행사 그 자체 | 징역 10년 이하 · 벌금 1,500만 원 이하 |
표를 세로로 읽으면 법의 설계가 보입니다. 법은 '동의가 없었다'를 직접 묻지 않고, 동의할 수 없었던 사정을 상태·관계·나이로 나눠 하나씩 조문으로 만들어 두었습니다. 그래서 같은 피해라도 어느 줄에 해당하는지에 따라 증명할 내용과 형의 범위가 달라집니다.
가로로 읽으면 형의 차이가 보입니다. 준강간과 의제강간은 강간과 똑같이 징역 3년 이상이고 벌금형이 없습니다. 반면 업무상 위력 간음은 상한이 7년이고 벌금형이 있습니다. 위력 관계에서 벌어진 일이라도 손목을 잡아 누르거나 몸으로 짓누른 사실이 있었다면 강간죄를 먼저 검토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술·수면·약물로 저항할 수 없었다면 준강간입니다
준강간을 정한 형법 제299조는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에 빠진 사람을 그 상태를 틈타 간음하면 강간과 같은 형으로 처벌합니다. 폭행·협박은 요건이 아닙니다. 증명할 것은 두 가지, 그때 피해자가 정상적으로 판단하거나 저항할 수 없는 상태였다는 점과 가해자가 그 상태를 알고 이용했다는 점입니다.
기억이 끊겼다는 사정은 불리한 것이 아닙니다. 대법원은 의식이 남아 있었더라도 제대로 판단하고 대응할 능력을 잃은 상태였다면 심신상실이나 항거불능에 해당한다고 했고, 겉으로 드러난 단편적인 모습만으로 이를 부정해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대법원 2018도9781).
회식에서 과음한 직원이 택시를 부른 뒤 정신을 잃었다가 직장 상사의 차 안에서 깨어난 사건이 있습니다. 힘이 들어가지 않는 몸으로 밀어냈지만 제압당해 유사강간 피해를 입었고, 가해자는 수사 내내 합의된 관계였다고 주장했습니다.
범죄피해자 평가와 정황증거, 가해자 주장의 모순을 짚은 의견서로 준유사강간·준강제추행 혐의가 인정돼 기소됐고, 재판에서 혐의를 인정한 가해자가 처음 내민 2,000만 원은 세 배인 6,000만 원까지 올라갔습니다. 합의가 이뤄졌는데도 선고는 징역 2년 · 집행유예 3년이었습니다(사건 보기). 만취 상태를 뒷받침할 자료는 준강간·준강제추행에서 다룹니다.
상사·교수·고용주의 요구였다면 업무상 위력 간음입니다
형법 제303조 제1항은 업무나 고용 같은 관계 때문에 자기의 보호·감독 아래 있는 사람을 위계나 위력으로 간음한 경우를 처벌합니다. 추행이면 성폭력처벌법 제10조 제1항이 적용됩니다.
판시 취지 — 위력이란 피해자의 자유로운 의사를 누르기에 충분한 힘이고, 눈에 보이는 힘이든 아니든 가리지 않는다. 폭행·협박만이 아니라 사회적·경제적·정치적 지위와 권세를 앞세우는 것도 위력에 든다(대법원 2019도2562).
이 경로에서 다투는 것은 폭행이 아니라 관계입니다. 인사, 학점, 논문 심사, 데뷔처럼 피해자의 앞날을 쥔 사람의 요구였는가를 봅니다. 대법원은 채용 면접을 보러 온 구직자처럼 채용 절차에서 영향력 아래 놓인 사람도 보호·감독을 받는 사람에 포함된다고 봤습니다.
학원 강사가 근무를 마친 조교를 회식에 억지로 앉혀 평소 주량을 넘게 술을 먹이고, 제 몸을 가누지 못하게 되자 모텔로 끌고 가 간음한 사건이 그 예입니다. 가해자는 합의였다고 버텼지만 모텔 복도 CCTV, 퇴사를 막으며 계속된 연락, 진단서와 심리평가 보고서가 그 말을 무너뜨렸습니다. 의견서를 다섯 번 내고 범죄피해평가서를 기록에 붙인 끝에 피감독자간음으로 징역 1년이 선고돼 가해자는 법정구속됐고, 취업제한 5년이 붙었으며 항소는 기각됐습니다(사건 보기).
학점이나 선발, 진료, 신앙처럼 고용 관계가 아닌 지위도 같은 방식으로 위력이 됩니다. 교수와 제자, 의사와 환자, 성직자와 신도 사이의 피해는 교수·의사·목사 성범죄가 정본입니다.
미성년자·장애인 피해자라면 폭행·협박 없이도 처벌됩니까?
처벌됩니다. 피해자가 13세가 안 됐다면 가해자가 몇 살이든, 13세부터 15세까지라면 가해자가 19세 이상인 경우에 동의가 있었더라도 강간과 같은 형으로 처벌됩니다(형법 제305조). 16세 미만 기준은 2020년 5월 19일 개정으로 생겼습니다. 13세 미만에게 위계나 위력까지 썼다면 성폭력처벌법 제7조가 적용돼 무기 또는 징역 10년 이상입니다.
SNS로 접근한 성인 남성이 만 13세 피해자에게 5만~10만 원을 주고 차 안에서 성관계를 한 사건에서, 대가를 주고받았다는 사정은 아무런 방어가 되지 못했습니다. 가해자는 현장에서 체포돼 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았고, 5,000만 원에 합의했는데도 미성년자의제강간 등으로 징역 3년 · 집행유예 4년에 신상공개·고지 2년, 취업제한 5년이 선고됐습니다(사건 보기).
피해자가 16세 이상이거나 가해자가 또래여서 의제강간이 닿지 않는 경우는 아청법 제7조 제5항이 받칩니다. 19세 미만 피해자를 위계나 위력으로 간음하면 폭행·협박으로 강간한 것과 같은 무기 또는 징역 5년 이상입니다. 2020년 8월 27일에는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위계의 뜻도 넓게 고쳤습니다. 무슨 행위인지를 속인 경우만이 아니라, 왜 그 행위에 응해야 하는지를 거짓으로 꾸며 낸 경우도 위계가 된다는 것입니다(대법원 2015도9436).
같은 학교 남학생이 커튼을 친 보드게임방에서 막 사귀기 시작한 피해자를 간음한 사건에서, 피해자는 여러 번 몸을 돌려 거부했지만 누가 볼까 봐 소리를 지르지 못했습니다. 가해자는 연인 사이의 합의였다고 주장했으나 경찰은 체격 차이를 이용한 위력을 인정해 기소 의견으로 송치했습니다(사건 보기). 장애가 있는 피해자도 같은 구조로 보호됩니다. 위계·위력 간음은 징역 5년 이상이고, 장애로 항거불능이나 항거곤란 상태인 것을 이용했다면 무기 또는 징역 7년 이상입니다(성폭력처벌법 제6조).
기습적인 접촉은 강제추행, 2023년 전원합의체가 바꾼 기준
간음에 이르지 않은 접촉은 강제추행의 영역입니다. 대법원은 오래전부터 기습적으로 만지는 행위는 그 자체가 폭행이고 힘의 크기를 따지지 않는다고 했습니다(대법원 2001도2417). 2023년 9월 21일 전원합의체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강제추행의 폭행·협박이 항거를 곤란하게 할 정도일 필요가 없고, 몸에 불법한 힘을 쓰거나 겁을 먹게 할 만한 해악을 알린 것이면 족하다고 기준을 바꿨습니다(대법원 2018도13877).
문제는 이 변화가 추행에서 멈췄다는 점입니다. 더 무거운 침해인 간음에는 여전히 '반항이 현저히 곤란할 정도'라는 옛 기준이 적용됩니다. 만진 것은 처벌되는데 성관계를 강행한 것은 무죄가 되는 거꾸로 된 결과가 여기서 나옵니다.
경로마다 무엇을 입증해야 합니까?
경로가 정해지면 가해자 쪽 주장도 거의 정해집니다. 아래 표는 경로별로 흔히 나오는 주장과 그에 맞서는 자료를 짝지은 것입니다.
| 경로 | 가해자가 흔히 하는 주장 | 맞서는 자료 |
|---|---|---|
| 준강간 | 멀쩡히 걸었고 대화도 했다 | 음주량과 결제 내역, 동석자 진술, 직후 통화 녹음 |
| 업무상 위력 | 서로 호감이 있었다, 연인이었다 | 업무 연락뿐인 메시지, 인사·평가 권한 자료 |
| 의제강간 | 동의했다, 나이를 몰랐다 | 나이·학교를 언급한 대화, 프로필 |
| 아청법 위계·위력 | 사귀는 사이였다 | 나이와 지위의 차이, 거부 표현, 사건 뒤 관계 단절 |
| 강제추행 | 장난이었다, 스쳤을 뿐이다 | 직후 항의 메시지, 목격자, CCTV |
표의 가운데 칸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전부 "사실은 동의가 있었다"는 말의 변형입니다. 그래서 어느 경로에서든 합의된 관계였다면 설명되지 않는 사실이 힘을 가집니다. 업무 이야기밖에 없는 대화방, 사건 직후의 사과, 다음 날 끊긴 연락이 그런 사실입니다. 물증이 마땅치 않은 사건에서 무엇부터 모을지는 증거가 없는 경우에 있습니다.
의제강간에서는 가해자가 피해자의 나이를 알았는지가 다툼이 됩니다. 대화에 학년이나 학교, 교복 이야기가 나온 적이 있다면 지우지 말고 그대로 보관하셔야 합니다.
그래도 남는 공백, 어느 경로에도 해당하지 않는 피해
문이 여러 개라는 말은 어느 문에도 맞지 않는 사람이 생긴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 상황 | 현행법에서 막히는 이유 |
|---|---|
| 싫다고 말했지만 때리거나 위협하지는 않았다 | 강간죄가 요구하는 정도의 폭행·협박이 아니라는 판단 |
| 몸이 굳어 말도 저항도 못 했다 | 폭행·협박도 항거불능도 아니라는 판단 |
| 취했지만 의식은 있었다 | 심신상실·항거불능에 이르지 않았다는 판단 |
| 선배·지인·연인처럼 보호·감독 관계가 아닌 사람의 압박 | 형법 제303조의 관계 요건 밖 |
| 성인을 속여 성관계에 이르렀다 | 성인 대상 위계 간음은 보호·감독 관계·심신미약·장애가 있어야 처벌 |
이 공백은 가정이 아닙니다. 2022년의 한 유사강간 사건에서 피해자는 1시간 넘게 75차례 거부 의사를 밝혔고 그 녹음이 증거로 제출됐지만, 1심과 2심은 저항을 현저히 어렵게 할 만한 폭행·협박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습니다(여성신문·CBS노컷뉴스 보도). 이 사건은 2026년 6월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에 회부돼 있습니다.
대법원도 2023년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현행법의 해석만으로는 동의가 없었다는 점을 근거로 곧바로 성폭력범죄를 인정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공백을 메울 수 있는 곳은 법원이 아니라 국회입니다. 강간죄의 기준 자체를 동의로 바꾸자는 것이 비동의간음죄이고, 그 내용과 입법이 미뤄져 온 경과는 따로 정리했습니다(비동의간음죄 뜻과 도입해야 하는 이유).
내 사건의 경로를 정할 때 확인할 세 가지
첫째, 폭행·협박이 정말 없었는지부터 다시 보시기 바랍니다. 법원은 유형력의 크기만이 아니라 경위와 관계, 장소, 체격 차이를 종합해 판단합니다. 문을 막아선 것, 손목을 붙든 것, 몸으로 짓누른 것은 모두 폭행이 될 수 있고, 그렇다면 형이 가장 무거운 강간죄가 출발점입니다. 기준은 성폭행에 정리돼 있습니다.
둘째, 경로는 하나만 고르는 것이 아닙니다. 술에 취한 부하 직원을 상사가 간음했다면 준강간과 업무상 위력 간음이 함께 검토됩니다. 고소장에는 사실관계를 빠짐없이 적고, 죄명은 형이 무거운 것을 앞세우되 나머지도 함께 적어 두는 편이 안전합니다.
셋째, 어느 경로든 첫 진술에서 '동의할 수 없었던 사정'이 구체적으로 나와야 합니다. 얼마나 마셨는지, 상대가 내 무엇을 쥐고 있었는지, 그때 몇 살이었는지가 곧 요건 사실입니다.
동의 없는 성관계를 처벌하는 조문이 없다는 것은 법의 결함이지 피해자의 잘못이 아닙니다. 지금 법 안에서도 길은 생각보다 많고, 어느 길로 갈지는 사건의 사실관계가 정합니다. 맞지 않았다는 이유로 포기하시기 전에, 표의 왼쪽 칸에서 내 사건과 닮은 줄부터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자주 묻는 질문
관련 실제 사례
심앤이가 실제로 대리한, 이 주제의 사건 기록이에요. 결과는 사건마다 달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