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음은 성기의 결합을 뜻하고, 추행은 성적 자유를 침해하는 접촉이나 행위를 뜻합니다. 위계는 상대를 속여 착각을 일으키고 그 상태를 이용하는 것이고, 위력은 자유의사를 제압하기에 충분한 세력을 말합니다. 고소장과 송치 결정문에 이 낱말들이 나오는데 뜻을 모른 채 읽으면, 내 사건이 어떤 죄명으로 다뤄지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형법에는 이 낱말들의 정의가 적혀 있지 않습니다. 법전이 정해 준 것은 유사간음처럼 조문에 행위가 그대로 쓰인 몇 개뿐이고, 나머지는 대법원이 판결로 채워 왔습니다. 그래서 용어의 뜻은 조문이 아니라 판례를 봐야 알 수 있습니다.
이 글은 성범죄 사건에서 반복해 나오는 용어 20개를 한 표로 모은 뒤, 사람들이 가장 자주 뒤바꿔 쓰는 짝을 하나씩 갈라 설명하고, 용어의 해석이 실제 사건의 결과를 바꾼 장면으로 마무리하겠습니다.
형법 성범죄 용어 20개를 한 표로 정리했습니다
아래 표는 왼쪽부터 용어, 법에서 뜻하는 것, 그 낱말이 실제로 쓰이는 죄명과 조문 순서입니다. 지금 받아 든 서류에서 모르는 낱말을 찾아 가로로 읽으시면 내 사건이 어느 조문 위에 서 있는지가 보입니다.
| 용어 | 법에서 뜻하는 것 | 쓰이는 죄명·조문 |
|---|---|---|
| 간음 | 성기의 결합 | 강간(형법 제297조), 준강간(제299조) |
| 유사간음 | 구강·항문 등 신체 내부에 성기를 넣거나 성기·항문에 손가락 등을 넣는 행위 | 유사강간(제297조의2) |
| 추행 |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고 성적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 | 강제추행(제298조) |
| 폭행 | 의사에 반하는 유형력의 행사 | 강간·강제추행 |
| 협박 | 상대에게 해악을 알려 겁을 먹게 하는 것 | 강간·강제추행 |
| 위계 | 오인·착각·부지를 일으켜 그 상태를 이용하는 것 | 위계등간음(제302조·제303조) |
| 위력 | 자유의사를 제압하기에 충분한 세력 | 업무상위력간음(제303조) |
| 심신상실 | 술·약물·수면으로 판단이나 의사결정 능력을 잃은 상태 | 준강간·준강제추행(제299조) |
| 항거불능 | 반항이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한 상태 | 준강간·준강제추행 |
| 심신미약 | 판단이나 의사결정 능력이 크게 떨어진 상태 | 미성년자등간음(제302조) |
| 피보호자·피감독자 | 업무·고용 등으로 보호나 감독을 받는 사람 | 피감독자간음(제303조 제1항) |
| 의제강간 | 나이만으로 동의를 인정하지 않는 것 | 미성년자간음·추행(제305조) |
| 실행의 착수 | 범행을 실제로 시작한 시점 | 미수범 처벌의 기준 |
| 미수 | 착수했으나 결과에 이르지 못한 경우 | 강간미수·유사강간미수 |
| 기수 | 구성요건이 모두 충족된 경우 | 모든 죄명 |
| 불능미수 | 결과 발생이 불가능했지만 위험성이 있었던 경우 | 준강간 불능미수(제27조) |
| 성적 자기결정권 | 성행위 여부와 상대를 스스로 정할 권리 | 성범죄 전체의 보호법익 |
| 성적 수치심 | 침해를 당했을 때 생기는 불쾌한 감정 전반 | 추행·통신매체이용음란 판단 |
| 성희롱 | 형법의 죄명이 아닌 고용·징계 영역의 개념 | 형사로는 추행·모욕 등으로 감 |
| 친고죄 | 고소가 있어야 처벌하는 죄 | 성범죄에서는 폐지됨 |
표를 보시면 낱말들이 두 무리로 나뉩니다. 하나는 가해자가 무엇을 했는지를 가리키는 말이고, 다른 하나는 피해자가 어떤 상태였는지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간음, 유사간음, 추행, 폭행, 협박, 위계, 위력은 앞의 무리이고 심신상실, 항거불능, 심신미약, 피감독자는 뒤의 무리입니다.
이 구분이 중요한 이유는 입증의 방향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앞의 무리는 가해자의 행위와 고의를 증명해야 하고, 뒤의 무리는 그 시점의 내 상태를 증명해야 합니다. 같은 하룻밤에 벌어진 일이라도 어느 낱말로 구성하느냐에 따라 모아야 할 자료가 달라집니다.
위계 뜻과 위력 뜻은 어떻게 다릅니까?
위계는 속이는 것이고 위력은 누르는 것입니다. 위계는 피해자가 사실을 잘못 알게 만들어 그 착각을 이용하는 방식이고, 위력은 피해자가 사실을 알면서도 거절하지 못하게 만드는 방식입니다. 조문에서는 둘이 나란히 붙어 있지만 증명해야 하는 내용은 정반대입니다.
대법원은 2020년 8월 27일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위계의 범위를 넓혔습니다. 종전에는 간음 행위 자체를 속인 경우에만 위계로 보았는데, 간음에 이르게 된 동기나 그와 밀접한 사정에 관해 오인·착각·부지를 일으킨 경우도 위계에 포함된다고 판단했습니다(대법원 2015도9436).
판시 취지 - 행위자가 간음할 목적으로 피해자에게 오인이나 착각을 일으키고 그 심적 상태를 이용해 목적을 이뤘다면 위계와 간음 사이의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다는 취지입니다.
위력에 관해서는 도지사와 비서 사이의 사건에서 기준이 정리됐습니다. 위력은 자유의사를 제압하기에 충분한 세력을 말하고 유형적이든 무형적이든 묻지 않으므로, 폭행이나 협박뿐 아니라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지위나 권세를 이용하는 것도 위력이 됩니다(대법원 2019도2562). 소리를 지르거나 힘을 쓴 일이 없어도 위력은 성립합니다.
| 구분 | 위계 | 위력 |
|---|---|---|
| 작동 방식 | 사실을 잘못 알게 만듦 | 거절하지 못하게 만듦 |
| 피해자의 인식 | 속아서 착각한 상태 | 알면서도 저항하지 못한 상태 |
| 증명할 것 | 어떤 거짓말이 있었는지 | 어떤 지위와 관계가 있었는지 |
| 자주 쓰는 증거 | 대화 기록, 프로필, 약속의 내용 | 인사·평가 권한, 이전의 언행, 사후 연락 |
이 표에서 눈여겨보실 칸은 마지막 줄입니다. 위력 사건에서 사후 연락이 증거가 되는 이유는, 사건이 끝난 뒤에도 가해자가 관계를 유지하려 보낸 메시지가 그 관계의 기울기 자체를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간음·유사간음·추행은 어디에서 갈립니까?
세 낱말은 행위의 종류로 갈립니다. 간음은 성기의 결합이고, 유사간음은 형법 제297조의2가 정한 행위로 구강이나 항문 등 신체 내부에 성기를 넣거나 성기와 항문에 손가락 등 신체의 일부 또는 도구를 넣는 행위입니다. 그 밖에 성적 자유를 침해하는 접촉이나 행위는 추행입니다.
이름이 비슷해 가볍게 들리지만 유사강간은 2년 이상의 유기징역으로, 벌금형이 없습니다. 강제추행은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500만원 이하의 벌금이어서 벌금형이 남아 있고, 강간은 3년 이상의 유기징역입니다. 죄명이 한 칸 옮겨 가면 벌금으로 끝날 사건과 실형만 남는 사건으로 갈립니다.
추행의 뜻은 조문에 없고 판례가 정리했습니다.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반인의 기준에서 일으키는 행위이고, 선량한 성적 도덕관념에 반해 상대의 성적 자유를 침해하는 것을 말합니다. 추행인지 아닌지는 한 장면만 떼어 놓고 보지 않습니다. 피해자가 몇 살이고 둘이 어떤 사이였는지, 어쩌다 그 자리에 이르렀는지, 실제로 무엇을 어떻게 했는지를 묶어서 봅니다. 유형별 기준은 성추행에, 강간과 유사강간의 경계는 성폭행에 정리돼 있습니다.
여기서 자주 오해되는 것이 성적 수치심입니다. 이 말은 피해자가 부끄러워했는지를 묻는 기준이 아닙니다. 판단은 객관적으로 이뤄지므로, 당황해서 웃었거나 아무 반응을 못 했다는 사정이 추행을 부정하는 근거가 되지 못합니다.
심신상실과 항거불능, 준강간을 여는 두 낱말
형법 제299조는 사람의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의 상태를 이용해 간음이나 추행을 한 경우를 강간, 유사강간, 강제추행의 예로 처벌합니다. 폭행이나 협박이 없어도 성립하는 조문이고, 그래서 이 두 낱말의 해석이 사건의 성패를 정합니다.
심신상실은 술이나 약물, 수면으로 사물을 변별하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을 잃은 상태를 말합니다. 항거불능은 그 정도에 이르지 않았더라도 반항이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한 상태를 뜻하며, 물리적인 제압만이 아니라 심리적으로 저항할 수 없었던 사정도 포함됩니다. 술에 취한 상태의 판단 기준은 준강간·준강제추행에 사례별로 나와 있습니다.
기억이 끊긴 구간이 있다는 것 자체는 불리한 사정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구간이 심신상실을 뒷받침합니다. 잠든 줄 알고 접근했는데 실제로는 깨어 있었던 경우에도 형법 제27조의 불능미수로 처벌될 수 있습니다.
폭행과 협박의 뜻이 2023년에 달라졌습니다
강제추행에서 말하는 폭행의 기준이 최근 바뀌었습니다. 대법원은 2023년 9월 21일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폭행 행위 자체가 곧바로 추행에 해당하는 이른바 기습추행의 경우 상대방의 의사를 억압할 정도일 필요가 없고 의사에 반하는 유형력의 행사가 있으면 그 힘의 크기를 묻지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대법원 2018도13877).
이 판결이 피해자에게 갖는 의미는 분명합니다. 그동안 수사와 재판에서 반복된 질문이 "왜 더 강하게 저항하지 않았느냐"였는데, 그 질문의 법적 근거가 상당 부분 사라졌습니다. 저항의 크기가 아니라 동의가 없었다는 사실이 판단의 중심으로 옮겨 온 것입니다.
다만 강간죄는 여전히 폭행이나 협박을 요건으로 하고 있어, 거절했는데도 이뤄진 성관계가 어느 조문에도 걸리지 않는 공백이 남아 있습니다. 이 공백을 메우는 입법 논의가 비동의간음죄이고, 논의의 구조와 반대 논거에 대한 반박은 따로 정리해 두었습니다(비동의간음죄 뜻과 쟁점).
용어 하나가 결과를 바꾼 사건 두 건
학원 강사가 조교를 상대로 저지른 사건은 위력이 어떻게 인정되는지를 보여 줍니다. 가해자는 평소에도 조교를 강압적으로 대했고, 사건 당일에는 근무를 마친 뒤 회식을 강요했습니다. 술이 약한 피해자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양을 마시게 했고,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게 된 피해자를 모텔로 데려가 간음했습니다. 사건 뒤에도 학원을 그만두려는 피해자를 붙잡고 계속 연락했습니다.
심앤이는 사건 당시 모텔 복도를 찍은 CCTV와 가해자가 사건 뒤에 보낸 연락, 병원 진단서와 심리평가 보고서를 확보해 합의한 관계였다는 주장을 반박했고, 변호사 의견서를 다섯 차례 내고 범죄피해평가서를 기록에 붙였습니다. 업무상 위력으로 범행했다는 점과 2차 가해 정황이 인정돼 징역 1년이 선고돼 법정구속됐고, 취업제한 5년이 함께 내려졌습니다(사건 보기).
추행의 판단이 1심과 2심에서 갈린 사건도 있습니다. 가전제품 판매 직원이 홈케어 시연을 위해 피해자의 집을 방문해 마사지 기능이 있다며 옷을 들어 올려 속옷을 만졌고 성적인 농담을 이어갔습니다. 피해자는 나중에 그 제품에 마사지 기능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됐는데, 1심은 저항이 보이지 않고 추행의 고의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심앤이는 반려견 때문에 설치해 둔 홈캠 영상을 제출하고, 2심이 한 번의 공판으로 끝나지 않도록 피해자 증인신문의 필요성을 설득해 다시 법정에 설 기회를 만들었습니다. 항소심은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추행을 인정해 징역 6월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으며, 민사에서도 1,600만 원의 강제조정 결정이 내려졌습니다(사건 보기).
고소장에 죄명을 잘못 적으면 어떻게 됩니까?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고소장에 적은 죄명은 참고 자료이고, 어떤 조문을 적용할지는 수사기관과 법원이 정합니다. 그러니 용어를 몰라서 고소를 미루실 이유는 없습니다. 접수 단계에서 중요한 것은 정확한 죄명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 무엇을 당했는지가 빠짐없이 적힌 사실입니다.
다만 용어를 알아 두면 달라지는 것이 있습니다. 조사와 송치 과정에서 죄명이 가벼운 쪽으로 옮겨 가는 순간을 알아챌 수 있고, 그때 의견서로 다툴 수 있습니다. 진술할 때도 "만졌다"보다 어느 부위를 옷 위로 몇 초간 어떻게 만졌는지를 말하는 편이 조서에 정확히 남습니다. 조사 절차 전반은 수사절차(경찰·검찰)에 단계별로 정리돼 있습니다.
용어는 피해자를 시험하려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겪은 일을 법이 알아듣는 말로 옮겨 주는 도구이고, 그 도구를 쥐고 있으면 조사실에서 오가는 말의 의미가 보입니다. 뜻을 모르겠으면 그 자리에서 무슨 뜻이냐고 물으셔도 됩니다. 묻는 것은 피해자의 권리이고, 설명하는 것은 조사하는 쪽의 일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관련 실제 사례
심앤이가 실제로 대리한, 이 주제의 사건 기록이에요. 결과는 사건마다 달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