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항하지 못한 것은 잘못이 아니라 반응입니다. 극도의 공포 앞에서 몸이 일시적으로 굳어 움직이지도 소리를 내지도 못하는 상태를 긴장성 부동이라고 부르고, 성폭력 피해자에게 이 반응은 예외적인 일이 아니라 흔한 일입니다. 대법원도 사력을 다해 반항하지 않았다거나 나중에 돌이켜 보면 그 자리를 피할 수 있었다는 사정만으로 성립을 부정할 수 없다고 이미 판시했습니다(대법원 2005도3071).
그런데도 조사와 재판에서는 여전히 같은 질문이 돌아옵니다. 왜 소리를 지르지 않았는지, 왜 밀쳐내지 않았는지, 왜 도망가지 않았는지입니다. 이 질문들은 피해자의 몸이 실제로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한 번도 확인하지 않은 채, 저항의 흔적을 피해의 증거로 삼아 온 관행에서 나옵니다. 그리고 그 관행의 부담은 전부 피해자에게 떨어집니다.
이 글은 긴장성 부동이라는 반응이 무엇이고 얼마나 흔한지, 저항하지 않았다는 지적을 법원이 어떤 기준으로 처리하는지, 그리고 저항하지 못한 이유를 진술과 자료로 남기는 방법을 순서대로 다룹니다.
긴장성 부동이란 무엇입니까?
긴장성 부동은 벗어날 수 없는 위협 앞에서 몸의 움직임이 일시적으로 멈추는 불수의적 상태를 가리킵니다. 의지로 만드는 침묵이 아니라, 의지와 무관하게 근육이 굳고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상태입니다. 동물이 포식자 앞에서 움직임을 멈추는 반응과 같은 계열로 설명되며, 사람에게도 나타난다는 것이 여러 연구로 확인돼 있습니다.
피해자들이 실제로 쓰는 말은 대개 이렇습니다. 머리로는 밀어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팔이 움직이지 않았다, 소리를 지르려 했는데 목에서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몸이 내 것이 아닌 것 같았다. 이 표현들은 과장이 아니라 반응을 있는 그대로 옮긴 말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 반응이 동의와 아무 관계가 없다는 점입니다. 몸이 굳었다는 사실은 원했다는 뜻이 아니라 도망칠 수 없다고 판단했다는 뜻입니다. 멈춘 몸은 동의가 아니라 공포의 증거입니다.
얼어붙음 반응은 얼마나 흔합니까?
수치가 있습니다. 스웨덴 카롤린스카 연구소의 안나 묄러(Anna Möller) 연구진은 스톡홀름의 성폭력 피해자 응급진료소를 피해 후 한 달 이내에 찾은 여성 298명을 긴장성 부동 척도로 평가했습니다. 그 결과 70%가 상당한 정도의 긴장성 부동을, 48%가 극심한 긴장성 부동을 겪었다고 답했습니다(Möller 외, Acta Obstetricia et Gynecologica Scandinavica 2017년 96권).
같은 연구는 6개월 뒤 189명을 다시 평가했습니다. 피해 당시 긴장성 부동을 겪은 쪽이 이후 외상후스트레스장애를 겪을 교차비가 2.75, 중증 우울을 겪을 교차비가 3.42로 나타났습니다. 즉 얼어붙었다는 사실은 피해가 가벼웠다는 표지가 아니라, 이후 더 심한 후유가 남는다는 표지에 가깝습니다.
연구진이 논문 서두에 적어 둔 문제의식도 그대로 옮길 만합니다.
논문 취지 · 강간 상황에서는 적극적인 저항이 ‘정상’ 반응으로 여겨져 왔고, 법체계는 눈에 보이는 저항의 흔적을 찾으며 그것이 없으면 입증이 더 어려워진다는 문제가 있다는 지적입니다(Möller 외, 2017).
국내에서 이 반응은 보통 '얼어붙었다', '몸이 굳었다'는 말로 진술됩니다. 용어를 몰라도 상관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상태를 겪었다는 사실을 진술에서 지우지 않는 일입니다.
저항하지 않았다는 지적은 어디서 나옵니까?
법이 오랫동안 저항을 요구해 온 역사에서 나옵니다. 강제추행죄에서는 폭행·협박이 피해자의 항거를 곤란하게 할 정도여야 한다는 기준이 오래 유지됐는데, 대법원은 2023년 전원합의체 판결로 이 기준을 폐기하면서 그 요구가 어떤 관점 위에 서 있었는지를 함께 짚었습니다.
판시 취지 · 종전 법리가 요구하던 ‘항거곤란’은 피해자에게 ‘정조’를 수호하는 태도를 요구하는 입장을 깔고 있었다는 지적입니다(대법원 2018도13877 전원합의체).
요구의 정체가 이것입니다. 피해자가 무엇을 당했는지가 아니라 피해자가 얼마나 지키려 애썼는지를 심사해 온 것입니다. 법정형이 무거운 성폭력을 인정받으려면 몸에 흔적이 남을 만큼 싸웠어야 한다는 요구는, 결과적으로 가장 무섭고 가장 위험한 상황에 놓였던 피해자를 가장 불리하게 만듭니다.
덧붙여 상해 여부는 성립 요건이 아닙니다. 형법 제297조의 강간죄는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을 강간한 것을 처벌하고, 구성요건에 상해가 들어 있지 않습니다. 몸에 남은 상처는 유용한 증거일 뿐 필수 조건이 아닙니다.
법원이 저항 부재를 판단하는 기준
아래 표는 가해자 측이 저항이 없었다는 점을 파고들 때 실제로 쓰는 주장과, 그에 대응하는 대법원의 기준을 사건번호와 함께 정리한 것입니다. 판시 문장을 그대로 옮긴 것이 아니라 취지를 줄여 적었습니다.
| 가해자 측이 자주 펴는 주장 | 대법원의 기준 | 사건번호 |
|---|---|---|
| 벗어날 수 있었는데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 사력을 다해 반항하지 않았다거나 나중에 보면 피할 수 있었다는 사정만으로 섣불리 단정할 수 없다 | 2005도3071 |
| 항거가 곤란할 정도의 폭행은 없었습니다 | 강제추행의 폭행·협박이 항거를 곤란하게 만들 정도여야 한다던 종전 기준을 폐기한다 | 2018도13877 전원합의체 |
| 저항하지 않은 것 자체가 피해자답지 않습니다 | 통념에 그려진 피해자 모습과 다르다는 사정만으로 진술의 신빙성을 부정할 수 없다 | 2018도7709 |
표를 읽는 요령은 왼쪽 칸이 언제나 '없음'을 근거로 삼는다는 점을 보는 것입니다. 저항이 없었다, 상처가 없다, 비명이 없었다는 식입니다. 반면 오른쪽 칸의 기준은 하나같이 없었다는 사실에서 곧바로 결론으로 건너뛰지 말라고 말합니다. 그러니 피해자 측이 채워야 할 것은 저항의 흔적이 아니라, 저항을 막고 있던 조건입니다.
저항하지 못한 사정이 인정된 사건들
심앤이가 진행한 사건 두 건을 보시면 그 조건이 무엇인지 분명해집니다.
첫 번째는 회식 뒤 회사 기숙사에서 벌어진 사건입니다. 직장 동료였던 가해자가 술에 취해 잠든 피해자의 방에 들어와 간음했는데, 피해자는 인기척에 이미 깨어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술기운과 두려움에 온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고, 깨어 있다는 사실을 알면 가해자가 무슨 행동을 할지 몰라 겁에 질린 채 아무 대응도 하지 못했습니다. 몸을 뒤척여 피하려 한 것이 할 수 있는 전부였습니다.
심앤이는 기숙사 복도 CCTV와 통화 기록을 먼저 확보해 가해자가 피해자 방에 들어가 한참을 머물렀다는 사실을 드러냈고, 사건 당일 결제 내역과 기숙사 구조, 당시 입었던 옷과 침구까지 모았습니다. 피해자가 완전히 잠든 상태가 아니었더라도 가해자에게는 잠든 상태를 이용해 간음한다는 고의가 있었다는 점을 판례와 함께 정리했고, 미수라는 이유로 감경해서는 안 된다는 엄벌 의견서를 냈습니다. 가해자가 뒤늦게 합의를 요청했지만 거절했고, 준강간미수죄로 징역 3년과 성폭력 치료강의 40시간이 선고돼 법정구속됐습니다(사건 보기). 술에 취했거나 잠든 상태에서 겪은 피해의 판단 구조는 준강간·준강제추행에 정리돼 있습니다.
두 번째는 소리를 낼 수 없었던 사건입니다. 친구 집들이에서 처음 만난 가해자가 술자리에서 먼저 추행을 했고, 피해자가 자리를 피해 어린아이들이 자는 방에서 잠들자 따라 들어와 몸 위에 올라타 간음했습니다. 피해자는 바로 옆에 자던 아이가 깨어나 이 장면을 보면 아이에게 평생 남을 상처가 될 것이 두려워 큰 소리로 강하게 저항하지 못했습니다.
1심은 강제추행만 유죄로 인정하고 강하게 저항한 정황이 없다는 이유로 강간은 무죄라고 판단했습니다. 심앤이는 항소심에서 가해자가 피해자 몸 위로 올라탄 것만으로도 반항을 억누르기에 모자람이 없었다는 점, 옆에 아이가 자고 있어 크게 저항할 수 없으리라는 사정을 알고 그 상황을 노렸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주장했습니다. 항소심은 강간까지 전부 유죄로 인정해 징역 2년 · 집행유예 3년에 성폭력 치료강의 40시간과 사회봉사 120시간까지 함께 선고했고, 합의금도 3,000만 원 제시를 거절한 끝에 5,000만 원으로 올려 비밀유지와 접근금지 조항까지 넣었습니다(사건 보기). 저항의 강도가 아니라 의사에 반한 간음이었는지가 기준이라는 점은 성폭행에서 더 자세히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위력 앞에서는 거부 의사를 밝히는 것도 저항입니다
물리적 힘만 저항을 막는 것이 아닙니다. 진로와 생계를 쥔 사람 앞에서는 거절 자체가 위험한 선택이 되고, 그래서 거부는 종종 가장 정중한 형태로 나옵니다. 이때 수사기관이 그 정중함을 소극적인 태도로 읽으면 사건이 통째로 흔들립니다.
데뷔를 준비하던 연습생이 소속사 대표에게 당한 사건이 그렇습니다. 가해자는 다른 사람 없이 피해자만 따로 불러낸 뒤 데려다준다며 숙소 방까지 따라 들어와 양손을 짓눌러 침대에 눕혔습니다. 피해자는 "왜 이러세요", "하지 마세요"라고 분명히 거부하고 몸을 비틀어 벗어나려 했지만 대표라는 지위와 힘에 제압당했습니다. 사건 뒤에도 업계에서 가해자가 가진 영향력이 두려워 석 달을 홀로 버티다 고소했습니다.
심앤이는 피해 직후 인공지능 대화 서비스와 지인에게 도움을 구한 대화 내역, 팔에 남은 피멍 사진과 영상, 사적인 말 한마디 없이 업무 연락만 오갔던 메시지를 하나로 엮었습니다. 여기에 가해자가 먼저 "진짜 미안하다"고 사과한 뒤 다시 함께 해 보자며 달랜 행동을, 스스로 잘못을 알고 있었다는 근거로 제시했습니다. 합의된 관계였다는 주장은 그 지점에서 무너졌고 강간 혐의로 불구속 구공판 처분이 내려졌습니다(사건 보기).
이 사건이 보여 주는 것은 분명합니다. 거절할 수 없는 관계에서 나온 "하지 마세요"는 약한 저항이 아니라, 그 관계에서 할 수 있는 최대치의 저항입니다.
저항하지 못한 이유를 진술로 남기는 방법
조사에서 필요한 것은 저항했다는 주장이 아니라, 저항을 막은 조건을 사실로 적는 일입니다. 아래 표의 왼쪽에서 자신의 상황에 해당하는 줄을 찾아 가운데와 오른쪽 칸을 채워 가시면 됩니다.
| 저항을 막은 조건 | 진술에 적을 내용 | 뒷받침할 자료 |
|---|---|---|
| 몸이 굳어 움직이지 않았다 | 굳어 있던 동안 머릿속에 든 생각과 시도했다 실패한 동작 | 피해 직후 지인에게 보낸 메시지 |
| 소리를 낼 수 없었다 | 소리를 막은 구체적 사정(옆방 사람, 아이, 공용 공간) | 현장 구조, 동행자 진술서 |
| 힘으로 제압당했다 | 어느 부위가 어떻게 눌렸고 몇 번 벗어나려 했는지 | 피멍·상처 사진, 옷과 침구 |
| 관계 때문에 거절하지 못했다 | 상대가 쥐고 있던 평가·인사·진로의 내용 | 지휘감독 관계를 보여 주는 업무 메시지 |
| 술기운에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 기억나는 부분과 끊긴 부분의 경계 | 결제 내역, CCTV, 통화 기록 |
가운데 칸을 적을 때 요령은 결론을 쓰지 않는 것입니다. "무서워서 아무것도 못 했다"는 한 줄은 조건이 전부 지워진 문장입니다. 대신 "밀어내려고 팔에 힘을 줬는데 팔이 움직이지 않았고, 옆방에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처럼 적으시면 같은 사실이 검증 가능한 진술이 됩니다.
오른쪽 칸은 대단한 물증이 아니어도 됩니다. 피해 직후 누군가에게 보낸 짧은 메시지 한 통이 그 시점의 상태를 보여 주는 가장 강한 자료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증이 없는 상태에서 진술을 받치는 방법은 증거가 없는 경우에 항목별로 정리돼 있습니다.
저항하지 않았으면 동의한 것 아닙니까?
아닙니다. 동의는 표현된 의사이지 반응의 유무로 추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몸이 굳은 상태를 동의로 읽는 해석은, 도망칠 수 없다고 판단한 사람에게 도망쳤어야 한다고 요구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그 요구를 만족시킬 수 있는 피해자는 현실에 거의 없습니다.
현행법이 폭행·협박을 요건으로 두고 있어 이 간극이 완전히 메워지지 않는 것도 사실입니다. 동의 여부를 기준으로 삼는 입법 논의가 왜 필요한지는 따로 정리해 두었습니다(비동의간음죄 쟁점). 다만 법이 바뀌기 전에도 피해자가 할 수 있는 일은 분명합니다. 저항하지 못한 사실을 감추지 않고, 그 이유를 조건으로 바꿔 기록에 남기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남기겠습니다. 저항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스스로를 탓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몸이 굳은 것은 피해자가 택한 행동이 아니라 위협이 만든 결과이고, 법도 그 사정만으로 사건을 부정하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진술을 준비하실 때 지워야 할 것은 그날의 반응이 아니라, 그 반응을 부끄러워하게 만든 시선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관련 실제 사례
심앤이가 실제로 대리한, 이 주제의 사건 기록이에요. 결과는 사건마다 달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