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의 종용은 피해자에게 합의하라고 권하거나 몰아붙이는 일을 가리키는 말이고, 피해자는 그 요구를 거절할 수 있습니다. 합의는 피해자가 가진 권리이지 절차상의 의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수사관이 권했다고 해서, 가해자가 돈을 준비했다고 해서 응해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성범죄는 합의해도 사건이 저절로 끝나지 않습니다. 합의는 양형에 반영되는 사정일 뿐이고 수사와 재판은 그대로 이어집니다(반의사불벌죄와 친고죄 정리). 그런데도 피해자에게 "좋게 끝내라"는 말이 반복되는 이유는 사건을 빨리 정리하고 싶은 쪽이 피해자가 아니라 주변이기 때문입니다.
이 글은 누가 어떤 말로 합의를 밀어붙이는지를 상황별 표로 정리하고, 수사 단계와 형사조정에서의 대응, 가해자 측 접촉이 강요·협박·면담강요로 처벌되는 선, 거절했을 때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사건으로 보여 드립니다.
합의 종용 뜻, 누가 무슨 말로 합니까?
합의 종용에는 법에 정해진 정의가 없습니다. 그래서 어디까지가 권유이고 어디부터가 범죄인지 헷갈리기 쉽습니다. 기준은 간단합니다. 말하는 사람이 누구든, 피해자가 거절한 뒤에도 계속되면 그때부터는 권유가 아닙니다.
아래 표는 합의를 밀어붙이는 쪽을 넷으로 나누고, 그 말의 실제 의미와 피해자가 그 자리에서 해 둘 일을 붙인 것입니다. 마지막 칸은 나중에 문제 삼을 때 반드시 필요한 기록입니다.
| 밀어붙이는 쪽 | 흔히 듣는 말 | 실제 의미 | 그 자리에서 할 일 |
|---|---|---|---|
| 수사관 | 합의하면 빨리 끝난다 | 처분 권한은 검사와 법원에 있고 합의는 양형 사정일 뿐 | 합의 의사가 없다는 진술을 조서에 남김 |
| 형사조정 | 조정에 회부됐으니 나와야 한다 | 회부는 검사 직권으로도 되고 응할 의무는 없음 | 조정에 응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서면으로 제출 |
| 가해자 변호인 | 지금이 아니면 금액이 줄어든다 | 시한을 만들어 협상력을 낮추려는 압박 | 연락은 대리인을 통해서만 받겠다고 통지 |
| 가해자 가족 | 젊은 사람 인생을 망칠 셈이냐 | 면담강요나 협박이 될 수 있는 접촉 | 거부 의사를 한 번만 남기고 전부 보존 |
| 직장·학교 | 조용히 끝내는 게 서로 좋다 | 신고를 이유로 한 불이익은 2차 피해로 규정된 행위 | 면담 일시와 지시 내용을 기록 |
| 주변 지인 | 네가 참으면 다들 편해진다 | 관계를 이용한 압박 | 대화를 캡처하고 응답을 줄임 |
표를 가로로 읽으시면 대응이 하나로 모입니다. 거절 의사는 한 번만 분명히 밝히고, 그 뒤로는 설득하지 말고 기록만 남기시면 됩니다. 반박하거나 사정을 설명할수록 대화가 이어지고, 이어진 대화는 나중에 합의 의사가 있었다는 주장의 재료가 됩니다.
경찰이 합의를 권하면 어떻게 합니까?
수사관은 사건을 수사하는 사람이지 합의를 중개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합의를 권하는 말에 답을 하실 필요가 없고, 대신 합의할 의사가 없다는 문장을 진술조서에 그대로 넣어 달라고 요구하시면 됩니다. 조서에 남으면 이후 가해자 측이 합의 가능성을 전제로 접촉해 올 때 근거가 됩니다.
수사 과정에서 겪는 피해는 법이 이미 이름을 붙여 둔 문제입니다. 여성폭력방지기본법 제3조 제3호 가목은 수사·재판·보호·진료·언론보도 등 사건 처리와 회복의 전 과정에서 입는 정신적·신체적·경제적 피해를 2차 피해로 정의합니다. 피해자에게 합의를 권하는 관행이 개인의 호의나 요령의 문제가 아니라 제도가 이미 문제로 규정한 영역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이 정도면 합의하는 게 낫다"는 말을 들었을 때 피해자가 스스로를 설득할 필요는 없습니다. 조사에서 겪은 부적절한 언동은 날짜와 발언 내용으로 적어 두시고, 반복되면 수사관 교체를 요청하실 수 있습니다. 신고 뒤에 겪는 일들을 어떤 제도로 막는지는 2차 가해·보복범죄 대응에 정리돼 있습니다.
검사와 형사조정 단계에서 밀려날 때
검사는 당사자의 신청뿐 아니라 직권으로도 수사 중인 사건을 형사조정에 회부할 수 있습니다(범죄피해자 보호법 제41조 제1항). 그래서 회부 통지를 받는 것 자체는 피해자가 동의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조정에 응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히면 조정은 성립하지 않고, 검사는 수사 기록으로 처분합니다.
조정 기일에 나가기로 하셨다면 목표를 미리 정해 두셔야 합니다. 조정위원은 양쪽을 중재하는 위치라서 낮은 금액이라도 합의로 마무리되는 쪽이 성과로 보이는 자리입니다. 제시된 금액이 피해에 비해 낮으면 불성립으로 끝내고 재판에서 다투는 편이 나은 경우가 많습니다. 조정 절차의 진행 방식과 불성립 뒤의 선택지는 형사조정에 정리돼 있습니다.
가해자 가족이 찾아오면 죄가 됩니까?
됩니다. 어떤 죄가 붙는지는 그들이 무엇을 했는지로 갈립니다. 겁을 주는 데 그쳤는지, 겁을 줘서 무언가를 하게 만들었는지, 수사와 재판에 관련해 면담을 강요했는지가 기준입니다.
| 가해자 측 행위 | 죄명·조문 | 법정형 |
|---|---|---|
| 겁을 줘 취하서·사과를 하게 만듦 | 강요 · 형법 제324조 제1항 | 5년 이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 벌금 |
| 해악을 알려 겁을 주는 데 그침 | 협박 · 형법 제283조 제1항 | 3년 이하 징역, 500만 원 이하 벌금, 구류 또는 과료 |
| 합의를 요구하며 반복해 연락·방문 | 스토킹범죄 · 스토킹처벌법 제18조 제1항 | 3년 이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 벌금 |
| 정당한 이유 없이 면담 강요·위력 행사 |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제5조의9 제4항 |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만 원 이하 벌금 |
| 고소·진술에 대한 보복 목적의 협박·폭행 |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제5조의9 제2항 | 1년 이상 유기징역 |
네 번째 줄이 특히 중요합니다.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제5조의9 제4항은 형사사건의 수사나 재판과 관련해 필요한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 또는 그 친족에게 정당한 이유 없이 면담을 강요하거나 위력을 행사한 행위를 처벌합니다. 가해자 본인이 아니라 가족이 찾아온 경우, 피해자가 아니라 피해자의 부모에게 연락한 경우도 이 조문 안에 들어옵니다.
합의를 요구하며 전화와 문자, 방문이 반복되면 그 자체가 스토킹범죄가 될 수 있습니다. 반복 연락에 대응하는 방법과 잠정조치는 스토킹·데이트폭력에 나와 있습니다.
합의를 거절해도 됩니까?
거절해도 됩니다. 거절이 불리하게 작용할까 걱정하시는 분이 많지만, 피해자가 합의하지 않았다는 사정은 가해자에게 유리한 사정이 되지 못합니다. 거절 뒤에 무엇을 하느냐가 결과를 가릅니다.
이별하고 1년쯤 지난 어느 날, 자신의 나체 사진과 성관계 영상이 성인 사이트에 올라와 있다는 사실을 지인을 통해 알게 된 피해자가 있었습니다. 유포한 사람은 전 남자친구였고, 그는 수사에서 피해자의 동의를 받고 게시했을 뿐이라고 주장했습니다. 1심에서 징역 1년의 실형이 선고됐는데도 가해자는 구속되지 않았고, 항소심이 진행되는 내내 합의를 요청했습니다. 피해자가 응하지 않자 1심의 2,000만 원에 더해 1,000만 원을 추가로 공탁했습니다.
심앤이는 합의 제안을 거절하고 공탁금을 받지 않겠다는 의사를 공탁계에 분명히 전달했습니다. 선고를 앞두고는 촬영물이 어디까지 퍼졌는지 알 수 없는 피해의 성격, 공탁만으로 회복됐다고 볼 수 없다는 점, 피해자가 지금도 겪고 있는 불안을 담아 의견서와 엄벌탄원서를 냈습니다. 항소심은 항소를 기각해 징역 1년을 유지했고, 가해자는 선고 당일 법정에서 구속됐습니다(사건 보기).
합의한 뒤에 태도가 바뀌는 경우
합의 종용에 못 이겨 서명한 뒤가 더 힘들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성추행 피해자가 가해자의 간곡한 요청을 받아들여 합의해 준 사건이 그랬습니다. 가해자는 그 합의로 기소유예 처분을 받자 태도를 바꿔, 자신이 감금과 협박을 당해 돈을 줬다고 주장하며 피해자를 역으로 고소하고 합의금을 돌려 달라며 연락을 이어 갔습니다. 피해자가 그만두라고 했는데도 멈추지 않았고 피해자의 가족에게까지 협박이 이어졌습니다.
심앤이는 우선 연락을 거부한다는 의사만 남기고 더 대응하지 말 것과 주고받은 기록을 모두 보존할 것을 안내한 뒤, 정보공개청구로 가해자가 낸 고소장을 확보했습니다. 그리고 가해자의 행위를 공갈미수·협박·무고·스토킹으로 나눠 고소하면서, 고소를 취하했더라도 허위 내용의 고소장을 제출한 시점에 무고는 이미 성립한다는 점을 하급심 판례로 뒷받침했습니다. 경찰은 네 혐의를 모두 인정해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습니다(사건 보기).
이 사건이 알려 주는 것은 하나입니다. 합의서에 서명하는 순간이 아니라 그 뒤에 오는 연락까지가 사건입니다. 합의 이후의 문자와 통화 기록을 지우지 않고 그대로 두시는 것이 안전합니다.
금액이 너무 낮을 때 고르는 길
합의를 거절하는 선택지는 하나가 아닙니다. 금액이 피해에 비해 낮으면 형사 합의를 접고 엄벌로 방향을 바꾸거나, 민사 손해배상으로 따로 청구하는 길이 있습니다.
모텔에서 남자친구가 성관계 장면을 촬영하는 것을 발견해 곧바로 신고한 사건이 있습니다. 압수된 기기를 포렌식하자 다른 여성들을 찍은 촬영물이 약 100건 나왔고 검찰은 구속영장까지 청구했습니다. 그런데 재판 단계에서 가해자 측은 1,000만 원 선을 고집했습니다.
심앤이는 사안의 무게에 비춰 최소 2천만 원 이상이어야 한다고 보고, 그 금액이 되지 않으면 형사 합의 대신 민사로 배상을 받는 편이 낫다는 의견을 피해자에게 전했습니다. 협상은 결렬됐고, 선고를 앞두고 엄벌탄원서와 변호사 의견서를 신속히 제출했습니다. 법원은 징역 1년 ·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면서 성폭력 치료강의 40시간과 사회봉사 120시간을 함께 명했습니다(사건 보기). 결렬에 대비해 엄벌 자료를 미리 준비해 둔 것이 결과를 지켰습니다.
금액을 어떻게 산정하고 합의서에 어떤 조항을 넣어야 하는지는 합의금·합의대행에 단계별로 정리돼 있고, 엄벌 의사를 언제 어떻게 내는지는 엄벌탄원서에 나와 있습니다.
밀어붙이는 말에 흔들릴 때 확인할 것
합의를 권하는 말은 대체로 시간을 재촉합니다. 오늘 결정하지 않으면 손해라는 말, 재판까지 가면 더 힘들어진다는 말이 그렇습니다. 그러나 형사 절차에서 피해자가 손해를 보는 지점은 늦게 결정한 때가 아니라 준비 없이 결정한 때입니다.
결정을 미루셔도 됩니다. 그동안 필요한 것은 세 가지입니다. 합의 의사가 없다는 기록, 접촉해 온 사람과 날짜의 목록, 피해가 지금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는지에 관한 메모입니다. 이 세 가지가 있으면 합의로 가든 재판으로 가든 피해자가 유리한 자리에서 판단하게 됩니다.
합의는 사건을 끝내는 방법 가운데 하나일 뿐, 피해자가 감당해야 할 의무가 아닙니다. 주변이 조용히 끝내라고 말할 때 그 말이 누구의 편의를 위한 것인지 한 번만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자주 묻는 질문
관련 실제 사례
심앤이가 실제로 대리한, 이 주제의 사건 기록이에요. 결과는 사건마다 달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