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 피해자 변호사가 하는 일은 고소장을 대신 써 주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고소 전에는 증거를 골라 죄명을 특정하고, 경찰 단계에서는 조사에 함께 들어가며, 검찰 단계에서는 처분 전에 의견서를 넣고, 재판에서는 법정에 출석해 기록을 열람하고 의견을 말하며, 형사가 끝나면 민사 배상과 집행까지 맡습니다. 이 가운데 형사절차에서 하는 일은 호의나 관행이 아니라 성폭력처벌법 제27조가 정한 권한입니다.
현실에서는 변호사 없이 절차에 들어가는 피해자가 훨씬 많습니다. 피해자는 검사가 대신 싸워 준다는 통념 때문입니다. 이 통념은 틀렸습니다. 검사는 피해자의 대리인이 아니고, 피해자는 형사재판에서 당사자의 지위가 없어서 가만히 있으면 정보도 발언 기회도 주어지지 않습니다.
이 글은 먼저 피해자가 당사자가 아니라서 생기는 공백을 짚고, 고소 전·경찰·검찰·재판·민사와 집행 다섯 단계에서 변호사가 하는 일을 표와 사건으로 설명한 뒤, 국선·사선·법률구조공단 지원을 비교합니다.
'검사가 대신 싸워 준다'는 말은 왜 틀렸나요?
검사는 법률이 '공익의 대표자'라고 부르는 사람입니다(검찰청법 제4조, 공소청법 제4조도 같은 표현). 피해자가 고른 사람이 아니고, 피해자의 지시를 받지도 않으며, 피해자와 전략을 상의할 의무도 없습니다. 2026년 10월 2일에 시행되는 새 형사소송법은 한 걸음 더 나아가, 검사가 공소를 제기하고 유지하는 과정에서 객관성과 중립성을 지키고 피의자·피고인의 정당한 이익을 위해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는 조문(제246조의2)까지 새로 두었습니다(개정 내용 정리).
형사재판의 당사자는 검사와 피고인입니다. 피해자는 고소인이고 증인일 뿐 당사자가 아닙니다. 이 차이가 법정 안팎에서 어떻게 드러나는지 조문으로 나란히 놓아 보겠습니다.
| 항목 | 가해자(피고인) | 피해자 |
|---|---|---|
| 재판 일정 | 공판기일마다 소환(형사소송법 제267조) | 신청해야 통지(제259조의2) |
| 기록 열람·복사 | 권리로 보장(제35조) | 재판장의 허가 필요(제294조의4) |
| 법정 발언 | 최후진술 기회 보장(제303조) | 신청해야 증인으로 진술(제294조의2) |
| 판결 불복 | 직접 항소(제338조) | 항소권 없음, 검사에게 요청 |
헌법은 형사피해자가 재판절차에서 진술할 권리를 기본권으로 적어 두었습니다(제27조 제5항). 그러나 표에서 보듯 피해자의 권리에는 거의 전부 '신청이 있는 때'라는 조건이 붙어 있습니다. 신청할 줄 모르는 피해자에게는 없는 권리나 마찬가지입니다.
변호사를 선임하면 이 공백부터 메워집니다. 선임을 증명하는 서류가 제출되면 법원은 피해자 변호사에게 공판기일을 통지하고, 법정에서 피해자 변호사의 자리는 법관의 정면에 놓입니다(성폭력범죄 등 사건의 심리·재판 및 피해자 보호에 관한 규칙 제4조·제5조). 당사자가 아닌 피해자에게 절차 안의 자리가 생기는 것입니다.
성범죄 피해자 변호사가 단계별로 하는 일
아래 표는 사건이 흘러가는 순서대로 변호사가 하는 일과 그 단계에서 실제로 나오는 서면, 그리고 피해자 혼자 절차를 밟을 때 생기는 공백을 정리한 것입니다.
| 단계 | 변호사가 하는 일 | 이 단계에서 나오는 서면 | 피해자 혼자일 때 생기는 공백 |
|---|---|---|---|
| 고소 전 | 증거 선별, 죄명 특정, 범행 일시·장소 정리 | 고소장, 범죄일람표 | 억울함만 적힌 고소장 |
| 경찰 | 진술 정리, 조사 입회, 조서 확인, 수사관 소통 | 의견서, 추가 증거 제출서 | 조서에 남은 모호한 표현 |
| 검찰 | 처분 전 의견 제출, 보완수사 대응, 형사조정 출석 | 정식재판 요청 의견서, 항고이유서 | 벌금으로 끝나는 약식기소 |
| 재판 | 기록 열람·등사, 공판 출석과 의견 진술, 증인신문 대비 | 양형 의견서, 공탁에 관한 의견서 | 가해자 주장만 남은 법정 |
| 민사·집행 | 손해배상 청구, 형사 변호사 비용 청구, 강제집행 | 소장, 준비서면, 압류 신청서 | 받지 못한 배상 |
형사절차에 해당하는 위 네 줄의 업무는 모두 조문에서 나옵니다.
성폭력처벌법 제27조 요지 — 피해자 변호사는 피해자 조사 자리에 함께 들어가 의견을 낼 수 있고(제2항), 구속 전 피의자심문·증거보전절차·공판준비기일·공판절차에 나가 의견을 말할 수 있으며(제3항), 증거보전 뒤와 소송이 계속 중일 때 관계 서류와 증거물을 열람하거나 복사할 수 있고(제4항), 대리가 허용되는 소송행위 전부에 포괄적인 대리권을 가집니다(제5항).
선임권은 피해자 본인과 법정대리인에게 있고, 아동·청소년이 피해자인 성범죄에도 같은 특례가 준용됩니다(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제30조). 표의 마지막 칸은 겁을 주려는 것이 아닙니다. 가해자 쪽은 단계마다 서면을 내는데 피해자 쪽 칸만 비어 있을 때 기록이 어떻게 읽히는지를 적은 것입니다.
고소 전과 경찰 단계, 기록의 뼈대를 세웁니다
운동선수가 전담 코치에게 약 5년 동안 자세를 교정해 준다는 핑계로 추행을 당하다가 강간미수 피해까지 입은 사건이 있습니다. 거부하면 장난인데 예민하게 군다는 말이 돌아왔고, 소문이 빠른 업계라 선수 생활이 끝날까 봐 참아 온 사건이었습니다.
고소 전에 한 일은 자료를 고르는 것이었습니다. 녹음파일과 피해 뒤의 심경을 적은 일기, 경기장에 설치된 CCTV 영상, 정신과 진료 기록을 모두 받아 핵심만 선별했고, 녹음은 속기사무소를 거쳐 녹취록으로 만들었습니다. 5년 동안 이어진 추행은 일시·장소·행위별로 나눈 범죄일람표로 정리해 고소장과 함께 냈습니다.
조사 전에는 피해자가 일람표를 숙지해 범행마다 시기와 행위를 구분해 말할 수 있도록 준비했고, 곧바로 신고하지 못한 사정도 설명할 수 있게 도왔습니다. 조사 당일에는 입회해 진술이 오해를 살 단어로 조서에 적히지 않도록 확인했고, 그 뒤 수사관의 거듭된 추가 자료 요청은 변호사가 맡아 소통했습니다. 수사 결과 가해자는 상습강제추행과 강간미수 두 혐의 모두로 검찰에 넘겨졌습니다(사건 보기).
코치와 선수처럼 지위 자체가 위력이 되는 관계는 교수·의사·목사 성범죄 편의 주제입니다. 고소장과 첫 조사 준비의 세부는 수사절차(경찰·검찰) 가이드가 순서대로 설명합니다.
검찰 단계, 처분이 나오기 전에 움직입니다
송치는 끝이 아닙니다. 검사는 기록만 보고 사건을 벌금형 약식기소로 끝낼 수도 있고 정식재판에 넘길 수도 있습니다. 피해자 변호사 의견서는 이 갈림길에서 쓰이고, 처분이 나오기 전에 도착해야 의미가 있습니다. 경찰 단계에서는 송치 여부를 정하기 전에, 재판에서는 선고 전에 내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검찰 단계에서는 형사조정이 열리기도 합니다. 동성 친구 집에서 자다가 유사강간을 당한 사건에서 피해자는 고소 뒤 사건이 검찰로 넘어가고 가해자의 합의 요청이 이어지자 변호사를 선임했습니다. 검찰청에 선임계를 내고 기록 복사로 확인해 보니, 가해자는 행위의 일부만 시인한 채 구강성교 부분은 아니라고 버티고 있었습니다.
형사조정 자리에서 변호사는 일부만 인정한 채로 하는 합의는 받을 수 없고, 전체 행위에 대한 책임 인정이 전제돼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피해자가 앓고 있는 PTSD의 정도와, 범행을 줄여 말하며 책임을 피하는 가해자의 모습을 조정 자리에서 하나씩 짚었고, 조정은 2,000만 원으로 성립됐습니다(사건 보기). 피해자 혼자였다면 가해자가 인정한 범위가 곧 합의의 범위가 됐을 자리입니다.
재판 단계, 법정에 피해자 쪽 사람이 앉습니다
기소되면 기록의 문이 열립니다. 피해자 변호사는 공소장과 증거목록, 가해자 측 의견서를 열람·등사해 상대가 무엇을 다투는지 확인하고, 그 내용으로 증인신문을 준비합니다. 가해자 측 변호인은 법정에서 피해자 진술의 빈틈을 찾는 데 시간을 씁니다. 어디를 공격받을지 미리 알고 서는 증언과 모르고 서는 증언은 전혀 다릅니다.
양형도 다툼의 대상입니다. 가해자는 반성문을 내고 공탁을 걸며 형을 낮추려 합니다. 피해자 변호사는 공판에서 피해의 정도와 처벌에 관한 의견을 진술할 수 있고(성폭력범죄 등 사건의 심리·재판 및 피해자 보호에 관한 규칙 제6조), 공탁금을 받을 뜻이 없다는 점과 엄벌을 바란다는 점을 서면으로 남깁니다. 피해자 변호사가 없는 법정에서 피해자의 이익만을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판결이 가볍거나 무죄가 나오면 선고일부터 7일 안에 검사에게 항소를 요청하는 일도 변호사가 합니다. 증인 보호 조치와 항소심 대응의 세부는 재판절차(법원)에서 기일 순서대로 설명합니다.
민사와 집행, 판결을 실제 배상으로 바꿉니다
형사판결은 가해자를 처벌할 뿐 피해자에게 돈을 주지 않습니다. 배상은 민법 제750조의 불법행위 손해배상으로 따로 구해야 하고, 여기에는 시효가 있어 피해와 가해자를 알게 된 때로부터 3년 안에 청구해야 합니다(민법 제766조). 형사 법정에서 함께 낼 수 있는 배상명령 신청은 위자료 산정이 어렵다는 이유로 각하되기 쉽고 민사에 불리한 기준점만 남기므로 권하지 않습니다.
어릴 적부터 알고 지낸 친구에게 강간 피해를 입은 사건이 형사에서 민사까지 이어진 예입니다. 가해자는 출동한 경찰 앞에서는 범행을 인정했다가 수사가 시작되자 합의된 관계였다고 말을 바꿨고, 1심은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피해자는 항소심을 앞두고 변호사를 선임했고, 항소심은 무죄를 뒤집어 징역 3년 6월을 선고했으며 대법원에서 그대로 확정됐습니다.
민사에서는 위자료와 함께 형사 절차에 쓴 변호사 선임비를 손해로 청구했습니다. 가해자가 상고심까지 범행을 부인해 심급마다 조력이 불가피했다는 점, 각 심급에서 의견서 제출과 증인신문 참여로 실제 어떤 조력이 있었는지를 소명했고, 법원은 1심뿐 아니라 항소심과 상고심 선임비까지 전액 포함해 5,650만 원을 인정했습니다(사건 보기). 어떤 사정이 있어야 선임비가 손해로 인정되는지는 변호사비용 청구 가이드에 있습니다.
판결을 받아도 가해자가 돈을 내지 않으면 급여나 예금 같은 재산에 강제집행을 해야 합니다. 판결문은 집행까지 가야 배상이 됩니다.
성범죄 피해자 국선변호사와 사선·법률구조공단 지원은 무엇이 다른가요?
피해자가 변호사의 도움을 받는 길은 세 가지입니다. 검사가 선정하는 국선변호사, 국가가 비용을 대는 무료법률지원, 피해자가 직접 선임하는 사선 변호사입니다.
국선변호사는 형사절차에 한해 무료로 지원되고 검사가 선정합니다. 무료법률지원은 민사·가사 소송대리까지 포함하지만 지원기관이 구조의 필요성을 따져 결정합니다. 사선 변호사는 피해자가 직접 골라 계약하고 형사·민사·집행 가운데 어디까지 맡길지도 계약으로 정하며, 형사 절차에 쓴 선임비는 나중에 민사에서 가해자에게 청구할 수 있습니다. 항목별로 나누면 아래와 같습니다.
| 비교 항목 | 국선변호사(검사 선정) | 무료법률지원(법률구조공단 등) | 사선 변호사 |
|---|---|---|---|
| 근거 법령 | 성폭력처벌법 제27조 제6항 | 성폭력방지법 제7조의2 | 성폭력처벌법 제27조 제1항 |
| 누가 정하나요 | 검사(신청 또는 직권) | 구조 필요성 등을 고려해 지원 | 피해자가 직접 골라 계약 |
| 비용 | 무료 | 무료(예산 범위) | 유료, 형사 선임비는 민사에서 가해자에게 청구 |
| 범위 | 형사절차 | 법률상담, 민사·가사 소송대리, 형사절차상 법률적 도움 | 계약에 따라 형사·민사·집행 |
| 신청·선임 | 검사나 경찰에 말이나 서면으로 | 피해자·법정대리인이 지원기관에 요청 | 위임계약 |
| 확인할 점 | 조사 입회와 공판 출석이 실제로 되는지 | 우선 지원 대상인지 | 피해자만 대리해 왔는지, 계약 범위 |
국선변호사는 권한에서 사선과 차이가 없습니다. 19세가 안 된 피해자, 그리고 장애 때문에 사물 변별이나 의사 결정 능력이 미약한 피해자라면 국선변호사 선정은 검사의 의무이고, 신청할 때 원하는 변호사를 명부에서 골라 그 사람으로 선정해 달라고 요청할 수도 있습니다(검사의 국선변호사 선정 등에 관한 규칙 제10조). 다만 범위가 형사절차에 한정돼 민사소송은 맡지 않습니다. 신청 절차는 (국선변호사 선임 절차)에 따로 정리했습니다.
차이는 관여의 밀도에서 납니다. 세계일보와 뉴스핌의 2026년 8~9월 보도에 따르면 법무부가 관리하는 피해자 국선변호사는 전담 47명, 비전담 582명으로 모두 629명입니다. 파이낸셜뉴스가 보도한 법무부 자료로는 2021~2025년 지원이 연평균 3만 8,174건이었습니다. 이 숫자에서 생기는 빈틈의 책임은 개별 국선변호사가 아니라, 사람 수와 예산을 그렇게 정한 국가에 있습니다.
무료법률지원은 성폭력방지법에 근거해 대한법률구조공단 등이 맡습니다. 공단은 성폭력 피해자를 민사·형사 법률구조 대상자로 안내하고 있고, 보호시설 입소자, 아동·청소년, 기초생활수급권자, 장애인은 우선 지원 대상입니다(같은 법 시행령 제4조의2). 국선이 닿지 않는 민사 소송대리를 무료로 받을 수 있는 길입니다.
성범죄 피해자 변호사가 하는 일을 한 문장으로 줄이면, 당사자가 아닌 피해자를 절차 안으로 들여보내는 일입니다. 검사가 대신 싸워 주기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가해자 쪽 서면은 쌓입니다. 지금 서 있는 단계의 줄을 표에서 찾아, 그 단계에서 피해자 쪽이 내야 할 서면이 무엇인지부터 살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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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앤이가 실제로 대리한, 이 주제의 사건 기록이에요. 결과는 사건마다 달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