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 고소인 조사에는 변호사가 함께 들어갈 수 있고, 들어가서 할 수 있는 일도 법에 적혀 있습니다. 성폭력처벌법(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27조는 피해자 변호사가 경찰 조사에 참여해 의견을 진술할 수 있다고 정하고, 경찰청 훈령은 변호사가 있으면 조사 과정에 참여하게 하라고 못 박아 두었습니다. 경찰조사 변호사 동행은 수사관의 호의가 아니라 피해자의 권리입니다.
그런데도 많은 피해자가 혼자 조사실에 들어갑니다. 신고만 하면 수사관이 알아서 가해자를 잡아 줄 것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조사실의 현실은 다릅니다. 피해자의 말은 수사관의 손을 거쳐 조서라는 문서로 굳고, "왜 이제 신고했느냐"는 질문이 날아올 때 제동을 걸 사람이 없으면 위축된 답변이 그대로 기록에 남습니다.
이 글은 변호사 동행의 법적 근거, 조사 전·중·후에 변호사가 실제로 하는 일, 혼자 조사받은 뒤 문제가 생겼던 사건, 국선변호사 동행과 비용 문제를 차례로 정리했습니다.
경찰조사 변호사 동행, 법적 근거는 무엇인가요?
근거는 세 겹입니다. 법률인 성폭력처벌법 제27조, 대통령령인 수사준칙, 경찰청 훈령인 「성폭력범죄의 수사 및 피해자 보호에 관한 규칙」입니다.
성폭력처벌법 제27조 제2항 요지: 피해자가 선임한 변호사는 검사 또는 사법경찰관의 피해자 조사에 참여하여 의견을 진술할 수 있다. 다만 조사 도중에는 승인을 받아 의견을 진술할 수 있다.
조사 도중의 발언에 승인이 필요하다는 단서 때문에 '옆에 앉아만 있는 자리'로 오해하기 쉽습니다. 경찰청 훈령 제19조는 한 걸음 더 나갑니다. 피해자가 변호사를 선임했거나 국선변호사가 선정됐다면 경찰관은 변호사를 조사 과정에 참여하게 해야 하고, 조사 중 변호사가 의견 진술을 요청하면 조사를 방해하는 등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승인해야 합니다.
수사준칙(검사와 사법경찰관의 상호협력과 일반적 수사준칙에 관한 규정) 제13조도 같은 방향입니다. 변호인이 옆자리처럼 실질적으로 도울 수 있는 위치에 앉게 하고 법적 조언과 메모를 허용하라는 조항인데, 피의자신문만이 아니라 피해자를 포함한 사건관계인 조사에도 적용됩니다. 조사 앞뒤로 이어지는 고소와 송치 절차는 수사절차(경찰·검찰) 글이 순서대로 짚어 줍니다.
조사 전·조사 중·조사 후, 변호사가 하는 일
변호사는 피해자 대신 답할 수 없습니다. 겪은 일을 말하는 사람은 끝까지 피해자 본인입니다. 변호사의 일은 그 말이 빠짐없이, 정확한 문장으로 기록에 남도록 앞뒤를 받치는 것입니다.
| 시점 | 변호사가 하는 일 | 혼자 가면 비는 자리 |
|---|---|---|
| 조사 전 | 증거 선별, 시간순 진술 정리, 예상 질문 대비 | 자료 없이 기억에만 의존 |
| 조사 전 | 여성 수사관 배정·가명조서·일정 조율 요청 | 요청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모름 |
| 조사 중 | 옆자리에서 조언, 쟁점 메모, 휴식 요청 | 울음이 터진 채 문답이 이어짐 |
| 조사 중 | 사건과 무관하거나 몰아세우는 질문에 문제 제기 | 추궁을 혼자 받아냄 |
| 조사 직후 | 조서를 함께 읽고 빠진 사실·뒤바뀐 표현 지적 | 훑어보고 서명 |
| 조사 후 | 조서 사본 확보, 의견서·고소보충서 제출, 수사관과 소통 | 결과 통지만 기다림 |
오른쪽 칸은 가정이 아닙니다. 뒤에서 볼 사건들에서 실제로 확인된 모습입니다. 특히 마지막 줄이 중요합니다. 조사에 동행한 변호사는 피해자가 어떤 표현으로 무엇을 말했는지 직접 들었기 때문에 그 진술에 맞물리는 의견서를 쓸 수 있습니다. 동행 없이 쓰는 의견서는 남이 만든 기록에 기대어 쓰는 글이 됩니다.
조서를 열람하고 정정을 요구하는 구체적인 요령은 따로 정리해 두었습니다(고소인 조사 당일 정리).
"왜 이제 신고했나"는 질문은 조사실에서 누가 막나요?
입회한 변호사가 막습니다. 늦은 신고, 사건 뒤에 이어진 연락, 술자리에 나간 이유를 캐묻는 질문은 범죄 성립과 무관한데도 조사실에서 되풀이됩니다. 이른바 '피해자다움'을 요구하는 질문입니다. 여성폭력방지기본법은 수사 과정에서 입는 정신적 피해를 '2차 피해'로 정의하고 수사기관에 방지 교육 의무까지 지웠습니다.
현실은 법을 따라오지 못합니다. 경찰청 의뢰로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수행한 '경찰에 의한 2차 피해실태 및 제도 개선방안 연구'에서, 2018년 8월부터 2021년 7월 사이 성폭력 피해로 경찰 조사를 받은 여성 59명 가운데 81.4%가 신고 접수 단계에서, 69.5%가 그 뒤 수사 단계에서 2차 피해를 겪었다고 답했습니다(조선비즈 2021년 12월 보도). 표본은 작지만 방향은 분명합니다. 아래는 같은 조사에서 피해자들이 꼽은 유형이고, 수사 단계의 비율은 그 단계에서 2차 피해를 겪었다고 답한 사람을 기준으로 한 수치입니다.
| 단계 | 피해자가 꼽은 2차 피해 유형 | 보도된 비율 |
|---|---|---|
| 신고 접수 | 피해를 사소하게 여기는 발언이나 태도 | 54.2% |
| 신고 접수 | 진술의 신빙성을 의심한다는 표현 | 50% |
| 신고 접수 | 가해자와의 합의 종용 | 43.8% |
| 수사 | 피해 과정을 지나치게 세세하게 질문 | 51.2% |
| 수사 | 피해자 정보를 과도하게 수집 | 46.3% |
같은 보도에는 추행을 거부했다고 여러 번 말했는데도 조서에는 '거부 의사표시를 하지 않았다'고 적혔고, 국선변호사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안내조차 받지 못한 피해자의 면접 사례가 실려 있습니다. "수사관은 중립이니 변호사까지 데려갈 필요는 없다"는 말이 얼마나 한가한 소리인지 보여 주는 숫자입니다. 중립을 내세운 의심은 늘 피해자 쪽으로만 향합니다.
변호사가 조사실에서 꺼내는 말은 거창하지 않습니다.
예문: “방금 질문은 고소 시점에 관한 것이라 범죄사실과 직접 관련이 없습니다. 지연 경위는 의견서로 정리해 제출하겠으니, 사건 당일의 사실관계부터 조사해 주시기 바랍니다.”
막기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지연 경위는 어차피 설명해야 할 대목이므로 조사 전에 답을 준비합니다. 대학 동기에게 추행을 당하고 졸업 뒤에야 고소한 사건에서는 공통 지인이 많아 소문이 두려웠던 사정, 부모에게 알리지 못해 변호사를 구할 여건이 안 됐던 사정, 최근에야 마음의 준비가 된 사정을 순서대로 말할 수 있게 정리했습니다. 고소 사실이 주변에 퍼지지 않도록 피해자 조사를 먼저 마친 뒤 가해자에게 통보해 달라는 요청도 함께 넣었고, 사건은 준강제추행미수로 검찰에 송치됐습니다(사건 보기).
변호사 없이 혼자 조사받았을 때 생기는 일
첫째, 조서가 얇아집니다. 헤어진 전 남자친구의 휴대전화에서 자신의 나체 사진이 나왔다는 경찰 연락을 받고 혼자 조사받은 피해자가 있었습니다. 촬영 사실조차 몰랐던 터라 혼란 속에서 제대로 말하지 못했고, 뒤에 정보공개청구로 받아 본 진술조서는 4장이 채 되지 않았습니다. 가해자는 합의하고 찍었다고 주장했고 보완수사요구까지 내려졌습니다. 촬영물의 구도와 시선으로 촬영을 알 수 없었다는 점을 논증한 의견서를 세 차례 낸 뒤에야 촬영과 소지 혐의 전부가 기소됐습니다(사건 보기).
둘째, 조사실의 분위기에 눌립니다. 이웃 주민의 집에서 만취해 의식을 잃은 사이 추행당한 피해자는 첫 조사를 남성 수사관 앞에서 강압적인 분위기로 받았고, 사건은 불송치됐습니다. 검사의 재수사 요구로 조사가 다시 잡히자 피해자는 조사 자체를 두려워했습니다. 이번에는 여성 수사관 배정을 요청하고 변호사가 입회해 압박성 질문에 대비했으며, 가해자의 사과 영상과 통화 녹음을 정리한 의견서를 더했습니다. 수사관은 기존 의견을 바꿔 사건을 검찰에 송치했습니다(사건 보기).
두 사건 모두 결과는 되돌렸습니다. 그러나 되돌리는 데 든 시간과 서면은 처음부터 동행이 있었다면 치르지 않아도 됐을 값입니다. 물증이 부족해 진술이 곧 증거인 사건일수록 그렇습니다. 술에 취해 기억이 끊긴 사건의 진술 준비는 준강간·준강제추행에서, 진술을 받쳐 줄 정황 자료를 고르는 방법은 증거가 없는 경우에서 따로 다룹니다.
이미 혼자 조사를 받았다면 무엇부터 하나요?
늦지 않았습니다. 순서는 이렇습니다.
1. 정보공개포털에서 내 진술조서를 청구해 무엇이 어떻게 적혔는지 확인합니다.
2. 빠진 사실과 어긋난 표현을 추려 고소보충서나 의견서로 보완합니다. 앞선 진술과 충돌하지 않게 쓰는 것이 핵심입니다.
3. 설명할 것이 많이 남았다면 추가 조사를 요청하고, 그 조사에는 변호사와 함께 들어갑니다.
국선변호사도 지금 신청할 수 있습니다. 「검사의 국선변호사 선정 등에 관한 규칙」은 선정 신청을 가해자에 대한 사실심 변론이 끝나기 전까지 할 수 있도록 정해 두었습니다.
국선변호사도 경찰조사에 동행하나요?
동행합니다. 피해자 조사 참여는 국선변호사의 보수 지급 대상 업무로 규칙에 적혀 있고, 경찰은 피해자를 조사하기 전에 그 일시와 장소를 국선변호사에게 통지해야 합니다. 조사 전에 변호사가 있는지 확인하고, 없으면 국선변호사 선정을 신청할 수 있다고 알려 주는 것 역시 경찰의 의무입니다.
문제는 이 안내가 빠지는 일이 잦다는 점입니다. 출석 요구 전화를 받았을 때 피해자가 먼저 말을 꺼내야 합니다.
예문: “국선변호사 선정을 신청합니다. 변호사가 정해지면 그분 일정에 맞춰 조사 날짜를 잡아 주십시오.”
다만 국선변호사는 한 사람이 맡는 사건이 많아 조사 전 준비 면담과 조사 뒤 의견서까지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개인의 성의 문제가 아니라 인력과 예산을 그렇게 짜 놓은 국가의 문제입니다. 신청 절차는 별도 글에 정리돼 있습니다(국선변호사 신청 절차).
경찰조사 변호사 동행 비용은 누가 부담하나요?
국선변호사는 국가가 보수를 부담하므로 피해자가 낼 돈이 없습니다. 사선 변호사의 조사 동행은 보통 수사 단계 선임 범위에 들어 있는 업무입니다. 그리고 이 비용은 나중에 가해자에게 손해로 청구할 수 있습니다.
회식 자리에서 고위 임원에게 추행당한 피해자의 민사소송에서, 가해자는 국선변호사 제도가 있는데 왜 사선 비용까지 물어야 하느냐고 다퉜습니다. 가해자 자신은 사건 초기부터 사선 변호인을 세워 혐의를 부인하던 터였습니다. 피해자 변호사가 경찰 조사에 동행하고 의견서를 내며 실제로 조력한 내용을 제시해 이 주장을 깼고, 법원은 위자료와 형사 변호사 선임 비용의 배상 책임을 인정했습니다. 피해자는 민사 판결금과 형사공탁금을 합쳐 약 3,900만 원을 회복했습니다(사건 보기).
조사 동행 기록은 그 자체로 비용 청구의 증거가 됩니다. 인정 요건과 증빙은 변호사비용 청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신뢰관계인 동석과 변호사 동행은 무엇이 다른가요?
할 수 있는 일이 다릅니다. 신뢰관계인은 곁에 앉아 마음을 붙들어 주는 사람이고, 변호사는 의견을 진술하고 기록을 챙기는 사람입니다. 가족이나 상담소 상담원이 신뢰관계인으로 동석하는 것과 변호사가 입회하는 것은 서로를 대신하지 못하며, 둘을 함께 둘 수도 있습니다.
신뢰관계인에게는 변호사처럼 조사에 참여해 의견을 진술할 권한이 법에 주어져 있지 않습니다. 조서에 빠진 사실을 짚거나 조사 뒤에 의견서를 내는 일도 신뢰관계인의 몫이 아닙니다. 그 일은 피해자 변호사만 할 수 있습니다. 조사실에 함께 들어갈 수 있는 세 부류를 아래 표로 나란히 놓으면 차이가 분명해집니다.
| 구분 | 신뢰관계인 | 국선변호사 | 사선 변호사 |
|---|---|---|---|
| 근거 | 성폭력처벌법 제34조 등 | 같은 법 제27조 제6항 | 같은 법 제27조 제1항 |
| 조사실에서의 역할 | 정서적 지지 | 조사 참여·의견 진술 | 조사 참여·의견 진술 |
| 조사 전 진술 준비 | 없음 | 사건 수 때문에 제한적 | 선임 범위에 포함 |
| 조사 후 의견서 | 없음 | 쟁점을 특정해 요청 | 단계마다 제출 |
| 비용 | 없음 | 국가 부담 | 먼저 내고 가해자에게 청구 |
표의 아래 세 줄이 실제 차이를 만듭니다. 신뢰관계인은 마음을 붙들어 주고, 변호사는 기록을 붙듭니다.
조사 날짜가 잡혔다면 그 전에 기억할 것
변호사를 데려가면 '켕기는 데가 있나' 하고 의심받지 않느냐는 걱정을 자주 듣습니다. 가해자는 입건되기도 전에 변호인부터 구합니다. 법이 피해자에게 준 권리를 쓰는 것을 의심의 근거로 삼는 수사관이 있다면 잘못은 그 수사관에게 있습니다. 피해자만 맨손으로 조사실에 들어갈 이유가 없습니다.
2026년 10월 2일 형사소송법이 바뀌면 피해자가 검사 앞에서 다시 진술할 자리가 사라지므로, 경찰 조사실에서 만든 조서 한 부의 무게는 지금보다 무거워집니다(개정 내용 정리).
조사 날짜를 통보받으셨다면 세 가지만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변호사와 함께 들어가는 것은 법이 정한 권리라는 것, 국선변호사라도 조사 전에 신청해야 쓸 수 있다는 것, 이미 혼자 다녀왔더라도 조서를 확보해 보완할 길이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첫 진술은 한 번뿐이지만, 그 진술을 혼자 감당해야 한다는 법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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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앤이가 실제로 대리한, 이 주제의 사건 기록이에요. 결과는 사건마다 달라요.